서양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 가운데 사다리와 관계되는 것이 두어 가지 있다. 그 하나는 영국 사람들이 ‘돌대가리’라고 놀리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미욱함과 미련함을 조롱하는 조크이고, 또 하나는 자식의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 주기 위해 의타심을 갖지 말라는 아버지의 교훈적인 일언이다.
첫째 이야기는 보통 사닥다리와 다르게 아일랜드 사람들이 쓰는 사다리 맨 윗막이 위에는 ‘정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고 한다. 둘째 이야기는 어린 아들이 사다리 타고 지붕 꼭대기에 오르게 한 다음 사다리를 치워놓고 아빠가 하는 말이 “앞으로 세상사는 동안 너는 절대로 아무도 믿지 마라. 너 자신밖에는”이라고 한다.
미국의 한 출판사 사장이 된 사람이 그의 할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이 할아버지가 옛날 배를 타고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올 때 심한 풍랑으로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멀미를 몹시 해 음식을 먹지 못하는데 할아버지는 혼자서 멀쩡하게 꼬박꼬박 제 끼니를 다 챙겨 먹는 것을 본 웨이터가 용하시다고 감탄하며 어떻게 뱃멀미 안 하실 수 있느냐고 묻자 할아버지는 선실에 흔들의자가 있어 요람처럼 이 의자에 앉아 파도 따라 배가 움직이는 대로 같이 몸을 움직이다 보니 괜찮더라고 대답하셨단다.
이 말을 귀담아들은 손자도 자라면서 인생의 파도 타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이 손자가 자라면서 또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 똑같은 조건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그가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이나 풀 수 없는 문제는 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생존의 비결은 자기에게 주어진 악조건을 호조건으로 역이용해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버릴 수 있는 기지와 저력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아마비로 발을 쓰지 못하는 자기 같은 불구아동도 자신에게 주어진 두뇌와 발 이외의 다른 근육의 힘을 동원하면 얼마든지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불구소년이 자라면서 발견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생존을 위해 온갖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이 신체장애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것, 세상에는 신체적인 결함은 없어도 정신적 심리적 불구로 절름발이 앉은뱅이 귀머거리 장님처럼 인생을 눈감고 귀 막고 절고 기듯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눈뜬장님, 귀 뚫린 귀머거리, 사지 멀쩡한 병신, 산송장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 소년이 점차로 깨닫게 된 것은 누구나 무엇보다 먼저 자기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 자신의 무지를 깨고, 약점을 극복, 누구의 도움도 없이 제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불구 소년이 다섯 살 때 아빠가 영화관에 데리고 갔었는데 갑자기 불이 났다. 극장 안은 수라장이 된 채 모두들 제각기 먼저 빠져나가려고 아우성인데 아빠가 아들을 번쩍 들고 이 병신자식 좀 먼저 빠져나가게 해달라고 소리소리 질렀지만 아무도 비켜주지 않자 아빠도 남들처럼 사력을 다해 남들을 밀어제치면서 실력행사로 화재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때부터 이 어린 소년 가슴엔 공포심이 생겨 힘을 기르고 실력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은 제힘으로 제 실력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것이 어디 개인에 있어서만 그러랴.
국가와 민족에 있어서도 그렇고,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우리 한반도의 통일은 결코 강대국의 힘을 빌려 이루어질 일이 절대로 아니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해야 하리라.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kind=small}
){kind=small}
){kind=small}
){kind=sma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