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배 칼럼] 나는 ‘안락사’하고 싶다

이윤배

지난달 10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네덜란드의 드리스 판아흐트 전 총리 부부가 93세를 일기로 동반 안락사를 통해 생을 마감했다”라고 보도해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2년 전에도 20세기 세계 최고의 미남 배우로 손꼽히던 올해 89세의 프랑스 알랭 들롱이 안락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 회복 가망이 없거나, 오랫동안 죽음을 소망하는 등 기본 조건이 충족될 때 한하여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2022년 8720명이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으며, 2020년을 기점으로 13쌍(26명), 2021년에는 16쌍(32명), 2022년에는 29쌍(58명)이 동반 안락사를 선택했다.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 건강하게 잘 살다가 어느 날 고통 없이 자연사(自然死)할 수 있다면 더 없는 축복이자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회복 불능의 중병이나 중증 치매에 걸려 기약 없는 기간 동안 투병하다 고통 속에 떠나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런 까닭에 요즘 눈만 뜨면 흔히 들을 수 있는 100세 시대가 축복인지, 재앙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 노인요양원이나 요양병원, 그리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한 채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노인, 중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세끼 밥만 축내며 숨만 쉬고 있는 중증 치매 환자는 또 얼마나 될는지…, 

 

그러나 현대판 유배지(流配地)나 다름없는 곳에서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데 이를 두고 온전하고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중병이나 불치병에 걸린 환자를 인공호흡기로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거나, 중증 치매로 인해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식조차도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 환자의 생명을 계속 붙들고 있다고 해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은 결코 아닌 까닭이다.

 

죽음에 대한 자의적 선택은 ‘자살’과 ‘안락사’, 두 가지 중 하나다. 자살은 천수를 무시한 채,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란 오명을 쓴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한국은 OECD 평균의 거의 세 배인 하루 40여 명(40분마다 1명)이 자살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 1년에 약 1만 5천 명이 자살하는 꼴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젊은 세대의 자살률이 높다는 사실이다. 10~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특히 20대 경우 전체 사망의 절반 이상(51.0%)을 차지하고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자살률이 이처럼 높은 까닭은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지만, 부의 불평등, 빈곤, 실직, 그리고 실업 등이 여전해 구조적으로 살기 힘든 사회 환경 탓이다. 

 

안락사는 자살이나 존엄사와 또 다른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당사자의 희망에 따라,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약물 등을 이용해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다시 말해서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불치 또는 말기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락사는 행위자에게 살인한다는 죄책감을 심어 줄 수 있어 현재 유럽의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존엄사의 요건으로 잔여 수명 6개월 미만 말기 환자가 약물 처방을 주치의에게 직접 요구하고, 주치의와 전문의는 환자의 남은 수명이 6개월 미만의 말기 환자로 판명될 때, 그리고 환자 스스로 존엄사 하겠다는 의사표시가 분명할 때 약물을 처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웃 일본은 판례를 통해 적극적 안락사의 기준으로 ‘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 죽음 시기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표시, 고통 제거의 수단이 없음’ 등의 4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방법으로 존엄사를 점점 폭넓게 인정하는 추세다.

 

이들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도덕적 관점에서 안락사 허용은 아직은 이르다는 여론과 함께 안락사에 관한 논의 또한 매우 제한적이고 소극적이다. 살인 등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료 불능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 본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적 비용 등을 고려한다면 무작정 손 놓고 방기할 일만은 아닌 듯싶다. 물론 생명은 소중하고 고귀하다. 따라서 그 누구도 인위적으로 해(害)할 수 없으며, 또 살아야 할 사람과 죽어야 할 사람을 선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수긍하고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제삼자의 전문가가 인정했을 때 허용한다면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가 불법인 까닭에 국민 약 200여 명이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스위스, 네델란드 등의 자살 조력 단체에 이미 안락사를 신청해 놓은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죽기 위해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내 나라가 아닌 타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비극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안락사 문제에 대해 진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때다. 회복 불능의 불치병 환자나 중증 치매 환자들에게 병원이나 요양원 같은 곳에서 기약 없는 ‘현대판 유배 생활’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인간으로서 고통 없이 죽을 권리마저 빼앗는, 또 다른 심각한 인권 침해이기 때문이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라지만, 고희를 넘기면서 ‘병든 채 재수 없이 오래 살면 어떡하지!’ 하는 못된 생각이 자꾸 고개를 쳐드는 것은 무슨 조화 속인지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다 자연사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은데……, 그럴 수 없다면 어느 따뜻한 봄날 안락사로 소리소문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다.

 

 

[이윤배]

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총무 부회장 

이메일 ybl1161@hanmail.net

 

작성 2024.03.07 10:04 수정 2024.03.0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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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