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 칼럼] 하루키의 복싱

신연강

글쓰기는 조심스럽다.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신 있게 글을 적어가는 한편으로는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말하기의 실수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지만, 글쓰기의 실수는 좀처럼 만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흔적이 남는 관계로 두고두고 아쉬움을 낳고, 하물며 인터넷상의 글은 더욱더 그렇다.

 

예전 문단의 통과의례(등단)를 치를 무렵 내가 애독한 글은 하루키의 에세이와 소설이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하루키의 경우 자신이 등단한 것을 ‘물 때’를 만난 것으로, 글쓰기를 ‘광맥’을 채굴하는 것으로 표현한 부분이다. 하루키는 운 좋게 그 물때를 만나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 행운을 만나지 못했다면, 재즈 카페를 열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카페를 운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인상 깊은 점은, 하루키는 글을 쓰는 작업- 즉 소설 집필을 링에 오르는 복싱에 비유한다는 것이다. 그가 실제로 복싱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헤밍웨이의 경우에는 여러 글을 볼 때 복싱과 낚시, 투우를 즐긴 것이 확실하다), 글쓰기를 복싱에 빗대는 것은 뜻하는 바가 있다. 사각의 링에서는 누구나 경기할 수 있지만 살아남는 것은 복서의 기량에 달렸듯이, 누구나 작가가 되어 글쓰기를 할 수는 있으나 글쓰기로 살아남는 것은 별개라는 의미이다.

 

얘기의 속내를 좀 더 들여다보면서, “어설픈 몸짓 몇 번 하며 우쭐대다가는 사정없이 두들겨 맞는다, 링 주위를 돌아볼 새도 없이(조금 과장해서 표현하면)”라는 경고를 내포한 것으로도 해석해본다. 그만큼 아마추어와 프로의 무대는 차이가 있음 직하다. 아마추어 무대에서 수많은 경기를 경험하고 기량을 쌓아도 프로 무대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상대의 필살기 한 방에 무너진 프로 복서들이 수두룩하며, 생전 경험해 보지 않은 비교과서적인 타법과 술수에 내로라하는 싸움꾼들이 무너진 일들이 허다하다. 야사(野史)에 나오거나 인구(人口)에 회자(膾炙)하는 주먹들이 교과서적인 무술의 대가가 아니며, 정법으로 단련한 태권도나 무술의 고수가 아닌 까닭이다.

 

오래전 즐겼던 테니스를 하면서 느꼈던 것이 있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해온 사람들을 만나서 경기를 하면, 몸동작(흔히 ‘폼’이라 일컫는)은 엉망인데 막상 게임을 해보면 근력, 지구력, 상황 판단력 등이 생각 이상인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자기만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한두 가지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중요한 순간에 서비스나 다른 게임 기술로 점수를 획득하는 기지를 보여주었다. 오랜 기간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테니스는 기술의 운동이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인드(정신력)를 갖추는 것이 더 요구되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팔로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리 근력과 스피드가 더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되는 시점이 되면 ‘테니스’라는 운동을 제법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둘 위기를 여러 번 넘어서면서 나도 기술이 향상되는 즐거움을 느꼈다. 기본이 갖추어지기까지는 여러 번의 레슨(교습)도 받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기술이 향상되고 고도의 게임 전략과 감각을 갖추게 된 것은 교과서적인 교습의 덕이 아니라, 해당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기울인 노력과 열정, 그리고 기술 연마라는 점을 생각게 된다. 그리고 욕심내지 않는 느긋한 마음과 상대에 대한 관찰 및 배려가 더욱 중요했다. 여기에는 여물지 않은 성급함으로 오랜 구력의 동호인에게 게임 한번 하시지요, 라며 호기롭게 덤볐다가 몇 번 망신을 당한 경험도 사실 한 몫 한다.

 

바로 이처럼 글쓰기 또한 치열한 훈련과 다년간의 실험, 오랜 기간의 숙성을 거친 글쓰기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젊음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라고 하지만, 시행착오는 가능하면 적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 본 몇 개의 글은 내게 생각할 거리도 제공하고, 뭉클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한 문청(文靑)의 글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열심히 매진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데, 조금 이상한 것은 “독자와의 호흡을 생각하며 자신의 문체를 형성한다”라는 부분이었다. 왜냐하면, 나로서는 그러한 것을 꿈꿔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 오래전 난해하고 기이한 소설로 외면 받던 멜빌이 독자들로부터 그토록 외면 받을 줄 알았으면 시대를 초월하는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수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야 그는 다시 재평가 받고 있지 않은가.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소세키의 경우는 어떨까. 그 또한 <더블린 사람들>을 쓴 조이스와 더불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도 당시의 자기 작품이 독자들에게 무난히 받아들여질 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고, 치밀한 분석은 전문 평론가의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문단 안에서의 관계가 순풍에 돛단 듯 온화하지만은 않고,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글을 씀에 있어서 나름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지만, 글쓰기는 늘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특히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서의 작업은 몇 배 더 노력해야 하고 치열한 장인 정신이 요구된다.

 

다행히 내게도 시대를 함께 가는 동안 사표(師表)가 되는 문학의 롤 모델이 존재함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나로서는 엄두 낼 수 없는 문학적 성과를 거둔 몇몇 문인을 떠올린다. 때때로 장석주 시인의 에세이를 보면서, 그가 시인이면서도 김영수, 최인호, 김훈, 그리고 하루키, 멜빌, 샐린저 등 여러 소설가의 다양한 문체를 분석할 정도로 폭넓은 문학적 지평을 가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한때 시인을 꿈꾸며 호기롭게 작품을 들이밀었던 문인은 최승호 시인(딱 한 번 뵈었지만, 고향 선배인 그가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 것이다)이었다. 그로부터는 박재삼, 김종삼 시인의 시집을 읽을 것을 권유받았는데, 시를 쓸 준비가 덜 된 내게 기본을 다지라는 조언을 주셨던 것 같다. 

 

아주 최근의 일이지만, 104세가 된 김형석 교수를 찾아뵌 정호승 시인은 특집기사(문학사상 3월호)로 실린 글에서 선생님의 생각을 요약해서 갈음해주었다. 당신께서 지금까지는 사회적 선을 추구하며 사셨지만, 이후 생에서는 “아름다움을 찾아 예술을 남기는 여생을 갖고 싶다”라는 선생님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글을 보며, 시의 가치는 무엇이고 시인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더불어 그동안 사장되어 있던 공간을 다시 꾸며낸 오랜 서재에서, 유한근 시인의 빛바랜 시집, <낯선 방에서의 하루>를 찾아내게 되었다. 젊은 시절 시인되기를 꿈꾸며 간직했던 그 순간이 오랜 세월을 지나 다른 인연으로 이어진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더불어 늦깎이에게 손을 내어 잡아주신 이상문 선생님께도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된다.

 

코스모스 공간은 참으로 신비하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수많은 행성이 존재하고, 그 행성들은 저마다의 거리를 유지하며 빛을 발하지 않는가. 박상우 소설가의 ‘스토리 코스모스’라는 말은 너무도 근사해서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봄 들판의 푸릇푸릇함은 그 자체만으로 좋다. 꽃을 피우고 무성한 잎을 내어 거목이 될 우리의 미래 아닌가. 욕심을 내지 않아도 비도 맞고 눈도 맞으며 자연의 일부를 이루어 갈 터이다. 다만 하루키의 복싱이 얼마나 지난한 싸움이며 혼신을 기울이는 경기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내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의 글쓰기는 진지하고도 열정 넘치는 게임인 것을. 그를 응원하면서, 링에 오를 내 마음과 자세도 다잡는다. 코스모스 공간을 살랑이며 지나는 바람. 흔들리는 꽃들이 눈부시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 박사

이메일 :imilton@naver.com

 

작성 2024.03.26 05:11 수정 2024.03.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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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