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로 칼럼] 디지털 시대 유감

임이로

1. 밀도 높은 사회

 

우리는 밀도 높은 사회에 살고 있다.

 

한정된 공간 속 입자 개수, 즉 질량을 '밀도'라 말한다. 밀도가 강해지는 순으로 기체-액체-고체로 물질 상태를 나열하는데, 이러한 물질세계 운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와도 닮아있다.

 

요즘은 더욱이 그렇다. 주차 공간을 위해 놀이터를 없애 모자랄 정도로 빼곡히 늘어선 자동차, 한정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는 청년들,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도 끝없는 볼거리. 너도 하니 나도 하기 위해 가지는 것과 갖추는 것이 곳곳에 빼곡하다. 우리가 물질세계를 사는 한,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생산한 부산물은 공간을 차지하며 복잡해진다. 그에 따라 '고립된 구조 속 무질서한 정도는 계속해서 증가한다'라는 엔트로피 법칙(entropy, 열역학 제2 법칙)을 그대로 실현하는 셈이다.

 

무언가를 계속 채우려는 욕망 때문일까? 우리는 빈 화폭 위에 끊임없이 피사체들을 그려 넣듯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은 어느덧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포화에 이른 에너지는 분출시키든 변환시키든 해야 하는데 시간도, 지구 행성의 신대륙도 인류가 모두 발견한 지금, 우리는 끊임없이 팽창하는 에너지를 디지털 세계라는 거대한 시공간으로 분출하고 있다.

 

2. 이주 정책

 

영국의 팀 버너스리가 웹(WWW, World Wide Web)이라는 또 다른 광야를 발견한다(1990). 이후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뿐만 아니라 야후, 메타(구 페이스북)와 X(구 트위터), 한국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각자 방식으로 웹을 개척하고, 플랫폼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도시 국가를 건설한다.

 

사람들은 하이퍼링크(Hyperlink)와 웹주소(URL, Uniform Resource Locator)를 통해 다른 공간으로 접속하고 유랑(Web Surfing)하며, ‘정보’라는 발자욱을 남긴다. 검색창과 포털사이트라는 유통망을 통해 정보를 취득 및 소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삽시간에 거대한 디지털 생태계를 꾸려왔다.

 

처음엔 팀 버너스리가 만든 HTML(Hyper Text Markup Language) 자체를 이용한 형식과 단순 기능을 이용해 ‘디지털 이주자’들은 간단한 움막 정도를 짓고 잠시간 머물다 떠나는 식에 간소하게 살아갔다. 그러다 그들은 좀 더 세련된 사용경험을 제시하는 검색 플랫폼 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도시국가에 정착한다.

 

이후 디지털 세계를 향한 이주 현상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이주자들은 개인정보를 여권과 세금 삼아 '나의 계정'이라는 집을 임대하고, 그곳에서 제시하는 사회문화를 학습하여 실제 경제 활동, 다양한 정보 습득을 하는 등, 변화무쌍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마침내 현실(off-line)에서도 인터넷(on-line)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두 세계는 강하게 유착된다.

 

3. 기회의 땅인가?

 

 '맨 처음 한 인간이 막대기를 휘둘렀을 때, 막대기도 그 인간을 휘두른 것이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천상의 피조물> 마디 중-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 새로운 세계는 열린다. 연필을 쥐고 종이에 마음 울림을 써 내리면 시인의 세계가 열리고, 피아노를 치는 순간 공간은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 찬 세계가 되며, 탑승한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지구의 모습을 작고 새롭게 마주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컴퓨터와 스마트폰, 나아가 인터넷이 장착된 사물(IOT, Internet of Things)을 통해 매일같이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는 인류역사상 가장 고도화되고 신박한 세계다.

 

디지털 대륙에서는 데이터(data)라는 석유가 흐른다. 사실 데이터 집합이 디지털 기술 자체를 구현하는 원자 같은 거라 석유보다는 물이나 공기에 비유가 적절해 보이나, 전 세계가 데이터가 가진 경제적 효용에 집중해 가공하고 발굴하고 있어, 마땅히 그 가치는 현대 석유 자원을 떠올리게 한다.

 

석유 자체는 의미가 없다. 가공해서 연료로 에너지를 발생시키거나 시추한 연료를 실은 배를 바다에 띄워놓고 전 세계 환율을 의식해야 그 가치가 있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이주자들은 '개인정보'라는 발자취를 남기며 유랑한다. 이 데이터 파편들을 가공 및 의미 있게 분석해 정보(information)를 만들고, 정보를 패턴으로 만들어 더 의미 있는 지식과 지혜를 통찰해 현실에도 응용할 가치를 창출한다. 또한 정보를 가지고 생산과 소비를 유발해 실물 경제에 관여한다.

 

데이터가 저변에 흐르는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은 우리에게 전에 없던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준다. OpenAPI(Open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를 예를 들어보자.

 

Open API는 기업 혹은 단체에서 제공하며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일종의 공공데이터 제공 서비스다. 위치, 날씨, 환율, 권역별 공공시설 현황 등을 가공할 수 있는 데이터 형태로 전달받아 많은 사람이 다양한 서비스 개발을 시도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시대만의 독창적인 기회 창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로는 어떤 정보든 취하여 가공하고 생성할 수 있다. 그래서 과히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 '제3의 물결'이라 불릴만하다. 그만큼 가지고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여느 '패러다임'이 그렇듯,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디지털 패러다임이 거부할 수 없는 풍랑과 같다면 그에 맞서 만만의 대비를 해야 하는 것 역시 인간의 몫이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하는 거 아니겠는가.

 

4. 새로운 모던타임즈인가?

 

어느 날 웹 사용과 앱 사용에 구분을 두고 수수료를 부과하는 결제 시스템이 발생했다. 영상 조회수는 인기 많은 콘텐츠가 무엇인지에 크게 간섭한다. 어떤 네트워킹 서비스는 ‘좋아요’와 하트 대신 다른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댓글을 쓰거나 채팅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금지 표현을 선정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사이트 홈(Home)에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실리는 정보 순서 책정 기준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개인정보 유출과 사용 범위에 대한 책임도 묘연하다. 공인인증서 폐기 이후, 플랫폼 사이트마다 본인 인증을 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사용자는 알 수 없다. 일명 ‘플랫폼 노동자’는 AI가 지시하는 서비스 평가에 시달린다. 한 사람의 과거는 그대로 인터넷에 박제되어 절대 시간에 갇히기도 하며, '알려지지 않을' 권리에 대한 인식은 소외당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 새로운 범죄 유형도 많이 등장했다.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기회의 땅인 줄만 알았던 디지털 세계는 각기 다른 생태를 이루는 플랫폼(도시국가)들의 시스템과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 규칙들이 어떻게 합의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정립되는 지는 중앙의 기밀이다.

 

5. 겁쟁이

 

인간 발전의 마지노선이 생각보다 저 멀리 있다. 인류는 부지런히 그를 증명하고 있다. 발전하는 과학 기술은 기대 이상으로 우리 인식 구조를 바꾸고 있다. 관념은 인습(因襲)이 되어 무너지고 새로운 문명과 시대정신은 생동한다. 새로운 시간과 공간으로 나아가는 것은 감개무량한 일이다. 우리가 디지털 공간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강제인지 자의인지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이 생태계의 발현은 이미 역사 속 이야기가 되었고, 나아가 일상 속 바탕을 이룬 지도 이미 오래다.

 

그런데 과연 이 지구 최상위 포식자를 자처하는 인간의 삶이, 과학과 기술만으로 이뤄지는가? 아니다.

 

이어령 선생 말씀같이, 인류는 자신보다 빠른 말을 길들여 영토 확장을 이루고 화려한 문명 발전을 이뤘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시대 ‘창세기’를 사는 우리는, 변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어떻게 나아갈지 고민해야 한다. 사람이 만든 문제는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 기술 영역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 늘 그랬듯이 인류 생존을 위해 말이다.

 

'디지털 시대 유감'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내가 겁쟁이라서다. 내가 과학자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써 내려갈 글들은 나처럼 돌다리도 두들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디지털 기술이 이뤄낸 세상을 ‘가상 세계’라 흔히 말하지만, 이제 곧 ‘가상’이란 단어가 빠질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 거부할 수 없는 세태의 흐름이다.

 

유감이다.

 

 

[임이로]

칼럼니스트

제5회 코스미안상 수상

메일: bkksg.studio@gmail.com

 

작성 2024.03.29 10:36 수정 2024.03.29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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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