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에게 주는 편지

이태상

삶과 사랑이 그렇듯이 교육도 가정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 삼위일체가 되어야 하리라. 요즘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로 학교 교육이 많이 비대면 원격 수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내 세 딸이 일곱, 여덟, 열 살 때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음악기숙학교 에 가는 바람에 나는 할 수 없이 비대면 원격 가정교육을 할 수밖에 없었다. 1979년 가을 나는 딸들을 기숙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돌이켜 보면 이 편지는 어린 딸들에게 썼다기보다 나 자신에게 다짐하는 글이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해아(海兒), 수아(秀兒), 성아(星兒)에게

 

집 떠나 낯선 환경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조금은 걱정된다. 그렇지만 곧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고 너희들이 마음먹는 만큼 즐거운 생활을 하리라 아빠는 믿는다. 모든 것이 새롭고 서툴다고 겁먹지 말고 용감하게 부딪혀 보기 바란다. 날리는 연(鳶)은 바람을 탈 때보다 거스를 때 더 하늘 높이 오르지 않니? 하늘이 깜깜할수록 별이 빛나듯이. 우리나라 옛시조에 있는 말처럼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를 명심하거라. 많은 사람들이 너무 높다고 올라 볼 생각조차 안 하는 만큼 그만큼 더 올라 볼 만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도 말이다. 아빠가 언젠가 누구한테서 들은 얘기가 있다. 어느 신발 장사꾼 두 사람이 신발 팔러 아프리카 대륙 어느 나라에 처음으로 도착해 보니 그 나라 사람들은 죄다 신발 없이 맨발로 살고 있더란다. 그래서 한 사람은 그 나라에 신발 팔기는 다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냥 돌아갔는데 또 한 사람은 “야, 이거 정말 굉장히 큰 신발 시장 찾았구나!” 좋아하며 당장 자기 회사에 전보 치기를 그 나라 인구수만큼의 신발을 어서 만들어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 실망할 수도 있나 하면, 그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좋은 얘기인 것 같다. 우리말에 ‘시작이 반’이다 하지만 ‘반이 아니고 전부’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되고 끝나게 될 테니까.

 

반신반의(半信半疑)가 아닌 전신만신(全信滿信)과 전심치지(全心致志)로 전심전력(全心全力/專心專力)할 때 말이다. 일이 꼭 성공적으로 성사되리라는 굳은 신념과 꼭 그렇게 되도록 하리라는 강한 의지 그리고 역경이나 난관에 봉착할수록 결코 절망하기는커녕 그 더욱 간절히 바라고 절절히 희망하는 절망이 있으면 안 될 일도 결국 되고야 말 것이다. 더할 수 없이 긍정적인 자세와 초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시작하고 물불 가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또 독창적으로 일을 추진시키면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이루어지는 걸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안 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안 될 가능성만 보이지만 꼭 될 것을 절대적으로 믿고 미친 듯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될 가능성만 보이고 따라서 그는 되는 방향으로 되는 방법과 길만 찾고 만들 뿐이지.

 

너희들이 꼭 염두에 둘 것은 그 누군가가 했다는 말처럼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무엇을 얼마나 보느냐가, 무엇을 얼마나 보느냐 보다 본 것에서 무엇을 얼마나 배우느냐가, 무엇을 얼마나 배우냐보다 배운 대로 얼마나 실천 실행하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하루하루 새날을 맞아 순간순간 너희들의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무엇을 하든 하려면 잘해보도록 해라. 노력을 아끼지 말고 잘해볼 수 있는 만큼 말이다. 어느 운동선수가 후배들에게 했다는 다음과 같은 충고에 아빠도 동감이다. 

 

남보다 뒤지거든 낙담하지 말고 도리어 용기백배해서 더욱 정신을 집중, 혼신의 힘을 다 써보라. 마지막 순간에 앞서 달리던 다른 선수들을 다 제치고 승리의 테이프를 끊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니? 너희들의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생각을 잘하고 마음을 잘 먹어야 한다. 수업 시간 아니면 개인레슨을 받거나 연습실에서 개인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잠시 눈을 감고 생각 좀 해 보아라. 너희들이 이처럼 좋은 학교에 와서 좋은 선생님들에게서 잘 배울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너희들의 오늘이 있도록 도와주신 선생님들께 얼마나 감사한 일이며, 우수한 다른 학생들과 어울려 너희들의 기량을 겨루어 볼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좋은 자극과 기회인지를. 최근 신문에서 보니 다른 어느 영국 여자보다 높이 등산한 진 러트란드는 높이 2만6천5백 피트의 안나푸르나 제1봉을 오르기 위해 일곱 번째 히말라야 등정에 오를 예정이란다. 

 

“난 기록 같은 것엔 관심 없어요. 산에서는 자신과 경쟁할 뿐이지요.”

 

이렇게 린은 말한다. 남자들에게는 성공이냐 실패냐, 산꼭대기 정상까지 오르느냐가 문제이지만 자기에게는 산을 오르는 기쁨과 즐거움, 그 경험 자체가 중요하단다. 이 얼마나 더 성숙하고 철든 경지이냐! ‘도토리 키재기’에 바쁜 사람들보다. 린과 남편 론은 그들의 집과 자동차 등 전 재산을 다 팔아가면서까지 산을 탄다. 영국 산악회와 에베레스트 재단으로부터 보조를 좀 받지만 자기 이름과 남편 이름의 첫 자(字)를 따서 이름 지은 ‘엘 앤 알 모험’이란 기업을 경영한다. 영국 북부 호수 지역으로 휴가오는 여행자들을 안내해 카누 타기, 동굴 탐사, 산과 골짜기 오르내리기 등을 탐상하는 일이다. 무섭고 춥고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어린애들에게서도 사람의 타고 난 가장 좋은 자질이 창출 개발되어 발휘된다고, 다시 말해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의 최선이 나타난다고 린은 말한다. 

 

한겨울 꽁꽁 얼어붙었든 지각을 뚫고 솟아나는 풀잎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노래하듯 하늘로 치솟는 신바람을 타고 뜨거운 가슴 힘차게 뛰는 싱그러운 숨결 따라 린은 사나운 바람과 눈사태도 무서워하지 않고 높이 산을 오른다. 이와 같은 삶의 열정과 신바람을 노래하는 가수가 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삶의 제자, 삶을 노래하는 가수, 사람들이 먹을 곡식을 기르는 농부, 세상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사람을 노래하는 미국의 가수 홀리 니어의 노래가 끝난 다음의 침묵을 통해서도 그 노랫말이 계속 울린다. 비록 한 방울의 물이로되 흘러 흘러 바다로 가는 물방울의 노래처럼….

 

1974년 자신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 부른 이 노랫말같이 ‘행동하는 가수’로서 사회정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홀리는 참으로 의미 있고 산 예술은 ‘행동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다. 너희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남들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들 각자 자기 자신, 다시 말해 자신의 가능성과 경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알아야 할 것은 매사에 성공이냐 실패냐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과가 어떻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데 너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너의 최선을 다한 뒤에는 후회 없이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참된 행복 아니겠니? 해아, 수아, 성아야,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이왕 할 바에는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말고, 너희들의 심혈(心血)을 쏟고 혼(魂)을 불어넣을 수 없겠거든,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무엇이든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일이거든 너희들 각자 스스로에게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썩 잘해볼 일이다. 할 수 있는 한 철저하고 완벽하게. 일찍이 아빠가 들은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참 좋은 말인 것 같다. 지금 네가 어떤 사람이고 누구인가는 네게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고, 앞으로 네가 어떤 사람, 누가 되는가는 하느님께 드리는 네 선물이다. 이 말 중에 ‘하느님’이란 너희들이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 형제, 선생님들, 그리고 친구들과 모든 이웃까지 다 포함한 것이다. 이 말을 아빠가 좀 달리 풀이해 보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옛날 그리스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지만 그보다는 “너 자신을 창조하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사람은 누구나 다 각자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고, 또 각자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노력하면 말이다. 지금의 너희들이, 너희들 각자에게 선물로 주어진 ‘악기’라면 이 ‘악기’를 통해 너희들 재주껏 너희들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너희들 자신과 너희들의 청중,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일만 남은 것이다. 

 

너희들 각자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선용해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는 너희들 각자 자신에게 달렸다.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 너희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 이 되고 기쁨을 주는 삶을 살 수 있나 하면, 그 반대로 슬픔과 고통을 주는 저주스러운 짐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해아, 수아, 성아야, 너희들은 제일 먼저 너희들 각자 제 몸과 마음과 혼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스스로를 돕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도울 수 없다.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참으로 남도 돕고 사랑하며 존중할 수 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보살필 수 있겠니? ‘자유’란 ‘책임감’을 뜻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순발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아빠는 본다. 다시 말해 선택의 자유가 있는 만큼 자신의 선택에 합당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여건을, 심지어 역경과 불행까지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소나무들 기억하니? 우리가 1972년 초 아빠의 직장 때문에 너희들이 태어난 지 석 달, 한 살 반, 세 살 때, 한국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1978년 6년 만에 한국을 방문, 두 달 동안 여러 곳으로 여행하면서 본 한국의 소나무들 말이다. 사나운 눈, 비, 바람맞으며 땅속 깊이 뿌리 내린 소나무는 어떤 날씨에도 끄떡없지만, 너희들이 하와이에서 본 야자수는 온실의 화초처럼 뿌리가 깊지 못해 폭풍이 불면 쉽게 쓰러진다. 아빠가 지어준 너희들 이름 해아(海兒), 수아(秀兒), 성아(星兒)가 말해 주듯 너희들은 바다와 하늘과 별 아이로서 바다와 하늘과 별을 노래하는 아이들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아빠의 바람이다. 사람은 밥이나 빵도 먹지만 그보다는 꿈을 먹고 산다. 너희들의 오늘이 바로 너희들의 내일이다. 농부들처럼 너희들이 오늘 뿌리는 대로 내일 거두게 될 테니까. 그러니 기회보다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겠니? 너희들은 운명의 노예도, 개척자도 될 수 있다. 

 

너희들의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고쳐먹기에 따라 너희들의 운명이 달라진다. 내적인 변화가 외적으로 일으킨 기적 같은 예를 역사나 문학작품에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너희들이 아주 어렸을 때 아빠가 해준 옛날얘기 중에 페르시아의 꼽추 공주 이야기 기억하니? 꼽추가 아닌 자기 동상(銅像) 앞에 매일같이 서서 등허리를 똑바로 펴보다가 제 동상처럼 허리가 펴진 몸이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너희들이 음악 공부를 계속하든 앞으로 다른 공부를 하든 아무리 노력해도 더 노력하고 더 발전할 여지가 있어 그 더욱 노력하는 보람이 있게 마련이다. 

 

하늘이 끝도 한도 없이 높은 것처럼 좋아하고 신이 날수록 저절로 하게 되는 노력이 또한 끝도 한도 없지 않겠니? 그래서 영어에 ‘Sky js the limit’이란 말과 The Notorious B.I.G.의 노래 ‘Sky’s the Limit’도 있나 보다. 과녁을 못 맞힌 궁수가 과녁을 나무랄 수는 없지. 잘못 겨냥하고 솜씨가 부족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과녁에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너희들 각자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너희들의 최선을 다한 다음에는 결과가 어찌 되든 걱정할 것 없다. 자기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아주 족하고 보람 있는 일이지. 사람이 할 일을 다 한 후에는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이것이 순간을 통해 영원을 사는 것이 되지 않겠니? 

 

해아, 수아, 성아야, 우리는 지금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으로는 언제나 늘 같이 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쓴맛을 본 다음에야 단맛을 알수 있듯 멀리 떨어져 봐야 그리움을 키워 만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으로 한 몸 한마음이 된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의 분신심(分身心)임을 발견하게 되고, 숨조차 서로를 위해 숨 쉬고 있음을 깨닫게 되지 않겠니? 사람은 공기로 숨 쉰다기보다 사랑으로 숨 쉰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린 모두 사랑이란 무지개 타고 이 지구별에 잠시 놀러 온 우주인 코스미안으로서 우리의 공통된 언어가 음악임을 잊지 말아라. 

 

하늘하늘

하늘에 피는 

코스모스 같은 

아이들아

하늘하늘 

하늘의 소리를 

피리 불듯 

바람 같이 

불어 다오. 

 

사랑하는 아빠가

 

해아, 수아, 성아야, 실은 이상과 같은 편지를 40여 년 전에 너희들에게 썼다기보다 아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다짐하기 위해 아빠 자신에게 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너희들이 다시 읽어보고 조금이라도 공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3.30 09:58 수정 2024.03.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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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