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죽어야 산다

고석근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橋)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 극복에 대하여』에서

 

 

요즘 신경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많다. 한 중학교 교사가 말했다. 

 

“약을 먹으면 마음이 편안해요. 수업할 때, 아이들이 떠들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아요.”

 

알약 몇 개로 무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우리 사회는 지금 멋진 신세계로 가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고뇌와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라고 말했다.

 

돈이 없어 일하게 되면 고뇌가 오고, 돈이 있어 편하게 지내려 하면 권태가 온다는 것이다. 도무지 행복하지 않은 인생,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상상한다.

 

‘멋진 신세계’의 구상은 완벽해 보인다. 인간은 공장에서 각자 계급에 맞게 대량 생산된다. 아이들의 지능과 취향, 미래의 할 일도 미리 정해진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일하게 된다.

 

그들은 불행할 틈이 없다. 쉴 때조차 지루할 틈이 없다. ‘소마’라는 마약이 누구에게나 배급되는데, 복용하면 최고의 행복감과 안정감을 만끽한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행복할까? 나는 불안 장애라는 병에 걸려 오랫동안 고생을 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당장 죽을 것 같은 불안감에 의사가 처방하는 대로 약을 먹었다. 그러다 약을 끊어버리고 요가와 명상에 집중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죽어!’ 몸에서 자연 치유력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깊은 명상 속에서 내 몸이 곧 마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과 몸은 두 개로 분리되지 않는다. 마음인 몸은 천지자연과 하나의 에너지장(場)이다. 내 몸과 마음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온 우주와 소통하는 몸과 마음, 깊은 평온. 나는 서서히 나의 실체를 만나게 되었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진화한 인간은 ‘생각’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조그마한 고통에도 약을 찾게 된다.

 

약에 의존하게 되면, 당장에는 좋을지 모르나, 몸과 마음이 점점 약해진다. 그리고 어떤 부작용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요가와 명상을 하며, 인간에게는 무한한 마음이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 마음의 힘을 항상 길러가야 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橋)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이치는 생즉사사즉생(生卽死死卽生)이다. 죽어야 산다. 인간의 자아(Ego)가 죽어야 자기(Self)가 깨어난다. 자아가 살려고 하면, 쉽게 약에 의존하게 된다. 작디작은 자아는 항상 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깊은 내면에 항상 천지자연 그 자체인 신(Self)이 살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이 신에게 맡기고 살아가야 한다. 고통이 올 때마다 이 신을 믿고 의연하게 살아가야 한다.

 

 

나를 여태까지 키운 것은 불안이었다. 

아침으로 먹고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 먹는다. 

내 몸에는 항상 불안이 소화되는 중이다. 

 

- 박찬일, <마음에 대한 보고서 · 4> 부분 

 

 

현대인들은 불안을 견딜 수 없어, 아예 무관심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웬만한 일에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느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우리의 진짜 마음은 무의식에 있다. 우리의 무의식은 언제나 공포에 떨고 있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이유다.

 

우리는 시인처럼 솔직해져야 한다. 삼시 세끼 불안을 먹고 산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올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4.18 10:49 수정 2024.04.1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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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