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 칼럼] 깨끗한 인간관계

김관식

사람은 태어나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 사례는 18세기 영국의 다니엘 디포(1660-1731)가 쓴 소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로빈슨 크루소 일행이 항해하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난파선에서 혼자 살아남아 미대륙 연해 무인도에서 28년 동안 살다가 인근 바다를 지나던 해적선에 의해 구출된 이야기다. 

 

무인도에는 식인종이 살고 있었고, 식인종의 포로로 끌려온 프라이데이와 함께 친구가 되어 살아가며 식인종을 늘 경계하여 살아가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꾸며낸 명작소설이다. 무인도에서 외롭게 신앙으로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생존하려는 의지는 신의 선물임을 시사하며, 식인종의 등장시켜 당시 제국주의 사회를 풍자한 소설로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고전으로 지금까지도 세계인들이 즐겨 읽고 있다.

 

사람을 한자어로 인간(人間)이라 한다. 이 말은 ‘人 사람인’과 ‘間 사이 간’, 즉 ‘사람 사이’라는 뜻으로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고 서로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간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람이 태어난 것 자체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혼자 생활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자라면서 이웃, 친척,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다가 생명을 다할 때는 그동안 관계를 맺고 살아온 사람들에 의해 장례를 치르고 일생을 마친다.

 

주어진 생명만큼 살아가면서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대를 이으며 생노병사(生老病死)의 순환을 하며 살아간다. 최근 들어 의학 기술이 발달하여 옛날이면 죽었을 병에 걸렸어도 병을 치료하여 생명을 연장하여 살아가게 되었다. 인간의 수명도 늘어나고 더 편리한 생활도 하며 살아가지만, 아무리 오래 살아도 대부분은 백 년을 넘기지 못한다. 식물이 나무보다 더 짧은 인생을 살다가 간다. 살아가는 동안 이웃이나 지역사회 수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살다 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관계로 남에게 고통을 주고 살다 간 사람들도 많이 있다. 

 

남보다 더 좋은 집에서 배불리 먹고 행복해지려고 모두 노력한다. 남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깨우치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기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열심히 일한다면 최소한의 의식주 생활은 가능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남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자 욕심을 부린다. 남보다 더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고 노력한다.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도 마련하고, 비싼 승용차를 몰고 다니고, 최고급 다이아몬드 장신구, 명품으로 자신의 부를 뽐내고 싶어 하고. 비싼 음식을 먹고 살기를 원한다. 한 가지를 성취하면 욕심은 점점 커져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부동산, 주식, 현금 등 재물에 대한 욕심은 눈덩이 굴리기처럼 점점 커지고 멈출 줄 모른다. 

 

정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모은 재산을 여러 사람에게 이롭게 쓴다면 모두가 존경하는 사람이 되겠지만, 욕심이 많아지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려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욕심이 눈을 멀게 한다. 욕심에 눈이 멀면 행복하지 못하고 불행해진다. 

 

다음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범법 행위를 저질러서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게 된다. 물질을 많이 소유한다고 하여 행복해지지 않는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을 물질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게 된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 사람은 가까이하고, 자신에게 이익이 안 되는 사람과는 관계를 끊는다. 그러니까 사람의 관계를 자신의 출세나 재물을 취득하는 도구로 생각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사람을 속여서라도 관계를 맺는 상대의 지위를 이용하려 들고, 상대의 재물을 빼앗으려는 속셈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 상대를 도구로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면 그 사람을 배신하고 베풀어 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 생겨난다. 이런 행동이 습관화되면 주위의 평판이 나빠지고 인간이 추악해지게 된다. 

 

그래서 옛말에 “검은 머리 짐승을 거두지 마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관계를 수단으로 보고 관계를 맺다가 배신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 주위에 서성거리다가 기회가 오면 친절하게 접근한다. 이런 사람일수록 더 말을 잘하고 예의가 밝고 친절하다. 이런 사람을 미리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잘 대해 주어도 목적이 성취하고 나서는 반드시 배신한다. 이런 사람들을 견주어 말한 속담이 바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뻔뻔하다. 그런데 이 속담이 수명이 늘어난 백 세 시대에 맞게 “세 살 버릇 백 세까지 간다.”, 또는 “세 살 버릇 화장터나 무덤까지 간다.”라고 바뀌어야 하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자란 자녀들이 문화재생산되기 때문에 “세 살 버릇 자식들에게까지 옮겨간다.”라고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행복은 물질을 많이 소유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신념이나 가치가 더 중요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 습관에 있으며, 문화생활이나 취미생활 등으로 행복감을 많은 물질을 소유할수록 자기 혼자 우쭐해지고 남이 우습게 본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이 말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응당 보답을 받는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에는 좋은 결과가 따르고, 나쁜 일에는 나쁜 결과가 따른다는 말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과 훌륭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 많아야 살기 졸은 나라가 되고, 선진 국민이 되는 것이 아닐까?

 

남이 하는 선행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으로 위장하는 위선자들이 더러 있다. 많이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 남이 가져야 할 재물을 자신이 더 갖는 것이고,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은 늘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동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어찌 보면 그런 동료들의 기회를 독차지하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여 행동에 옮겼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자신이 남보다 잘났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한다. 뻔뻔한 자신을 스스로 우월하다고 여기고 스스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신을 합리화하며 살아간다. 최승호 시인의 시 “모든 게 다 썩어도 뻔뻔한 얼굴은 썩지 않는다.”라는 시구처럼 살아간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 날마다 자신을 뒤돌아보며 나와 남과의 관계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었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관계였나? 늘 생각하며, 오늘도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았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이메일 : kks41900@naver.com

 

작성 2024.05.06 10:58 수정 2024.05.06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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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