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 (Victor Hugo, 1802~1885)
좁은 길을 가는 빨간 승용차를 천천히 뒤따라갔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멈췄다. ‘뭐지?’ 하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마주 오던 남자가 소리친다. “차가 부딪친 건 사실 아니에요?”
좁은 길이라 서로 부딪쳤나 보다. 운전사는 여자다. 적막한 오후, 낯선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여자 운전자는 차를 빨리 몰아 넓은 곳에 세웠다. 개를 데리고 가던 남자는 천천히 뒤따라갔다.
차가 워낙 천천히 갔기에, 살짝 부딪쳤을 것이다. 나도 최근에 저런 경우를 두 번 겪었다. 나는 다친 데가 없었기에 운전자의 사과를 받고 끝냈다. 이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까?
둘만이 정확하게 알 것이다. 살짝 부딪쳤더라도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마음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물질 만능주의라 서로의 마음이 다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을 것이다. 행인이 나쁜 마음을 먹고 돈을 뜯어내려고 하면 운전자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뜯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말했다.
“타자는 지옥이다.”
현대 사회는 타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다. 낯선(마음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 공동체 사회에서는 모두 같은 가치관을 갖고 살았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다양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간다.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해야 하는 사회다. 평소에 워낙 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야 하기에, 현대인들은 서로에게 무심하다. 그러다 서로 지옥이 된다. 돌멩이처럼 굳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 외롭고 불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다치지도 않은 사고를 이용해 돈을 뜯어내거나 다친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외면하게 되면, 당장에는 이익이 될지 모르나 결국에는 ‘사랑의 마음’을 잃게 된다.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작은 이익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
타자들이 모여 살아가는 세상, 서로 이익에만 몰두하게 되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된다. 모두 불행하게 된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 아담 자가예프스키,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부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행복과 구원은 타인에게서 온다.
고대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혼자 살기 위해서는 짐승이 되거나 신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