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제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이지만 한국에는 줄인 제목 ‘지킬 박사와 하이드’로만 알려진 로버트 스티븐슨(1850-1894)의 단편소설이 있다. 그 내용은 변호사인 찰스 어터슨이 그의 오랜 친구인 헨리 지킬 박사와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인 에드워드 하이드의 괴상한 관계를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의 내면적 모순을 다루면서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면서도 속으로는 욕정으로 가득한 위선을 파헤친다. 이 줄거리는 수많은 연극과 영화 작품으로도 각색되었다. 몇 년 전 한국 사회에서 크게 물의를 일으킨 보육원 아동학대 사건들이 있지만 그중 더욱 경악스런 한 실례가 신문에 보도되었었다. 믿기지 않는 애들의 친엄마에 의한 학대사건이었다.
“교사 김영미(당시 39세 가명) 씨는 누가 봐도 착하고 능력 있는 엄마였다. 공무원인 남편과 초등학교와 유치원을 다니는 예쁜 두 딸을 두었다. 겉으로 보기에 남부러운 것 없었다. 대인관계나 사교성이 좋다는 지인들의 평이었지만 김 씨의 또 다른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집에만 오면 돌변한다. 초등학생인 딸을 화장실에 가두고 자주 뺨을 때렸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겠다고 딸을 위협하고, 밤에 잠을 깨운다는 이유로 죽여버리겠다고 폭언을 일삼았다. 한 번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딸의 머리채를 잡고 추운 날씨에 맨발로 집 밖으로 쫓아냈다. 때론 분을 이기지 못해 딸을 계단 밑으로 밀치기까지 했다. 이러다간 애가 잘못될 것 같다는 생각에 김 씨는 스스로 아동보호기관에 도움을 요청, 1년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사회의 가치관이나 윤리 또는 이성이 이면의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이중성을 부추기는 요인은 유전과 성장기 경험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데 기인하지 않을까. 특히 어려서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2015년 3월 14일자 미주판 한국일보에 UC 버클리대 재학생 송지연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글을 기고했다.
“얼마 전 오스카상 시상식이 있었다. 레드 카펫을 걷는 연예인들을 보면서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화려한 옷과 멋진 장식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 봐, 나 너무 멋지지 않니?’라고 표출하는 자신감에서 그들의 매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 매력 있는 친구가 있었다. 공부도 잘했고 외모도 좋았으며 남부러울 것 없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가 행복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자기 비하를 했다. 처음에는 그를 위로해주다가 결국 듣고 있는 내가 행복해지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났다. 제일 중요한 건 나와 나와의 관계이다. 나는 나와 절대적으로 친해져야 한다. 세상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버리는 것 같아도 나 자신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실력과 외모와 능력으로 사람을 평가한다고 인정하자. 그러면 나만이라도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마이클 스트라핸(1971 - ) 하면 많은 사람들은 특히 스포츠 그중에서도 미식축구 풋볼 팬들은 ‘뉴욕 자이언츠’ 풋볼 선수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다 그가 선수 생활을 접은 후 그의 다음 행보가 경이롭다. 미국 TV 토크쇼의 일인자인 ABC ‘리지스와 켈리’가 자기 이름의 토크쇼에서 은퇴할 때 그의 자리를 대신할 방송과 연예계의 쟁쟁한 인물들이 물망에 올랐었다. 그중에 마이클도 있었다. 최종적으로 리지스의 자리는 마이클 차지가 되었다. 그가 2012년 토크쇼의 새 주인공 호스트로 등장했을 때 많은 시청자들의 눈에 그의 텅 빈 앞니가 눈에 거슬렸을 것이다. “아니 저게 뭐야. 앞니를 교정하고 나올 일이지. 돈도 많을 텐데”라고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침없이 그 텅 빈 치아를 활짝 드러내며 파안대소 웃을 때는 천진난만한 소년으로 쇼를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그의 표정, 몸짓 하나하나 모두가 인위적인 구석이 전혀 없고 아주 자연스러울 뿐이었다. 게다가 위트와 유머가 철철 넘치면서 당당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니 그의 볼썽사납던 텅 빈 앞니가 어느새 그의 매력 포인트가 되고 말았다. 그의 순수함과 자연미로 시청자를 매혹했다.
그뿐인가. 그는 토크쇼 게스트로 나온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최고의 장점을 끌어내 시청자들에게 인상 깊게 보여주었다. 하나만 그 예로 들자면 2014년 5월 30일 방영된 오바마와의 대화에서 미국 아니 세계 지도자의 자질로서 무엇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첫째는 비전, 둘째는 판단력, 셋째는 불요불굴의 집요함이라는 오바마의 답변을 이끌어 냈다. 이렇게 빛을 발하는 그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첫째는 그가 느끼는 행복감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행복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쩜 자신감에서 오지 않을까. 그럼 이 자신감은 또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언제 어디서나 가슴 뛰는 대로 행동하는 삶 그 자체에서 생기는 게 아닐까.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연구 조사한 여러 서베이 결과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 진보주의자들보다 현실에 더 만족하고 행복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런데 최근 과학 저널 ‘과학’에 발표된 글 내용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당신은 행복한가?’란 설문에 보수주의자들이나 진보주의자들이나 똑같이 ‘그렇다고’ 대답해도 보수주의자들은 말만 그렇게 하는가 하면 진보주의자들은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사는 것으로 여러 연구조사를 통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일반적으로 풍속, 습관적 전통을 중요시해 그대로 지키려는 보수-복고주의는 말하자면 뒤를 돌아보는 경우이고, 그 반대로 진보주의는 앞을 보고 나아가는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보수주의자가 안정과 현상 유지에 급급하다면 진보주의자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현재보다 더 좋은 미래를 꿈꾸며 개척해 나가기 때문이리라. 본전만 생각하는 사람은 손해 보게 될까 봐 전전긍긍 불안해하지만, 투기와 탐험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에겐 그가 겪는 모든 일이 언제나 신나고 큰 보람 있을 뿐이리.
물은 고여 있지 않고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요, 흐르노라면 나쁜 것 없고 다 아름다울 뿐이어라.
2015년 출간된 도서 ‘풍자, 자유의 언어 웃음의 정치’가 있다. 2015년 3월 16일자 중앙일보 BOOK 페이지에 게재된 “종교개혁-산업혁명-과학혁명, 그 바탕에는 풍자문화가 있었다”는 제목의 서평에서 김환영 기자는 “번역해서 해외로 수출해 도서 한류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역작”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면서 저자인 전경옥 숙명여대 정치학 교수는 풍자를 이렇게 정의한다며 인용했다.
“편견-악덕-모순-부조리-어리석음 등을 비난하거나 이를 개선하려는 기대감을 갖는 빈정거림이며,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것을 경계하는 대안으로, 대중 담론을 형성하는 방법이며 대중민주주의의 장치이다.”
이 정의는 쉽게 한 마디로 ‘웃을 일’이라는 소리가 아닐까. 안데르센 동화 ‘황제의 새 옷’에 나오는 어린애처럼 세상은 웃을 일 친지 아닌가. 우리가 입는 옷의 패션이나 쓰는 모자 또는 감투를 비롯해서 벗은 몸에 새기는 문신이며 치장하는 화장과 장신구 등 그리고 각종 의식과 행사가 모두 다 웃기는 일들 아니던가. 내가 보기에는 어린애도 울지 않고 빵긋빵긋 웃으며 태어난다. 우주 만물이 다 웃고 있다. 해와 달과 별들이 그렇고, 구름과 바람이 그러하며, 나무나 풀이, 풀꽃과 눈꽃이, 빗방울과 이슬방울이 그러하다. 내가 웃을 때 거울 속의 내가 웃고 있듯이 모두가 웃고 있지 않나.
우리는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 그래서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로 ‘웃프다’는 말도 생겼으리라. 영어에 Have the last laugh라고 최후에 웃는 자가 참으로 웃는 자란 말이 있지만, 우리가 고고(呱呱)의 소리를 내는 순간부터 숨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이란, 아니, 사랑이란 무지개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실컷 놀다가 죽음이란 무지개를 타고 우리의 고향 우주의 다른 별나라로 갈 때까지 웃을 일뿐이리. 너무너무 다행스럽고 신비로워 감사할 뿐이어라.
지난 2015년 3월 16인부터 닷새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TED(기술 Technology, 오락 Entertainment, 구상 Design의 약자) 2015년 회의의 주제는 ‘진실 혹은 대담’이었다. 이것은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 겸 배우 마돈나(1958 - )가 1991년 출연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제목으로 90년대 전 세계적인 섹시 아이콘 마돈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도발적인 표현과 선정적인 묘사로 크게 화제가 되었었다.
그해(2015년) TED 대회는 세계인의 지식 축제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가졌던 통념을 깨보자는 대담한 시도였다. 성역화됐던 진실에 도전함으로써 전 세계인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새장 같은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었다. 따라서 뜻밖의 연사도 있었다. 1997년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탄핵 위기로 몰고 갔던 장본인 모니카 르윈스키(1973 - )와 한국계 강연자도 두 명 있었다. 북한에서 6개월간 영어 강사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2014)’는 책을 쓴 재미 작가 수키 김과 프리랜서 음악가 미나 최였다. 흥미롭게도 르윈스키의 강연주제는 ‘수치라는 대가’라는 타이틀의 부적절한 저널리즘이었다.
젊은 날 내가 신문기자가 되어 받은 저널리즘의 첫 지침이 둘인데 하나는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삿거리가 못 되고, 사람이 개를 물어야 기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인간미’가 들어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 예를 하나 들어보리라. 르윈스키 스캔들 와중에 뉴욕타임스의 인기 칼럼니스트인 모린 다우드(1952 - )는 그 당시 그녀의 한 칼럼에 제목을 ‘제발 나도 좀’이라 달고 자신을 포함해 만점 매력남 클린턴에게 홀딱 반해 르윈스키의 처지를 선망하는 여성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썼다. 클린턴에게는 엄청 진지한 흡인력이 있다고 하는데 이 ‘흡인력’은 라틴어로 불알에 있는 고환이라던가.
그 후로 한 기자가 왜 그런 불장난을 했냐고 묻자 클린턴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할 수 있었기 때문에”라는 대답이었다. 당시의 르윈스키처럼 육체적으로 탐스럽고 매력적인 젊은 아가씨가 추파를 던지면서 유혹하는데 고자가 아니라면 안 넘어갈 남자가 어디 있을까. 학창 시절 교회 찬송가나 부르면서 제 구두 닦는 게 유일한 취미였었다는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같이 ‘덜떨어진 쪼다’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 더욱 흥미진진했던 것은 그 당시 가장 큰 목소리로 클린턴을 맹렬히 비난하며 탄핵을 주도했던 뉴트 깅리치, 밥 리빙스턴, 헨리 하이드, 에이사 하친슨 등 공화당의 지도자들이 클린턴보다 더 심한 외도를 한 사실이 폭로돼 만천하에 공개되었었다. 성인 잡지 ‘허슬러’ 발행인 래리 플린트가 공화당 정치인들이 외도한 물증을 제시하는 여성에게는 백만 불씩 주겠다고 하자 줄줄이 여자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양념 삼아 한때 미국에서 유행하든 우스갯소리 하나 소개해 보리라. 여성으로부터 구강성교 (Oral Sex) 서비스를 받기만 좋아하고 주기를 꺼리면서 거부하면 ‘공화당원’이고 주기를 좋아하면 ‘민주당원’이란 말이다. 그 당시 나는 혼자 추리를 좀 해봤었다. 어쩌면 힐러리의 방조로 클린턴의 일탈행위가 가능했을지 모를 일이라고. 클린턴 못지않게 똑똑하고 자존심 강한 힐러리가 클린턴의 요청을 거절하다 못해 딴 여자한테서라도 받아보라고 허락했을지 모를 일 아닌가.
벌써 남자들은 그곳에
심상치 않은 것이 있음을 안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기는 있다
가만두면 사라지는 달을 감추고
뜨겁게 불어오는 회오리 같은 것
대리석 두 기둥으로 받쳐 든 신전에
어쩌면 신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흥망의 비밀이 궁금하여
남자들은 평생 신전 주위를 맴도는 관광객이다
굳이 아니라면 신의 후손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자꾸 족보를 확인하고
후계자를 만들려고 애를 쓴다
치마 속에 확실히 무언가 있다
여자들이 감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참혹하게 아름다운 갯벌이 있고
꿈꾸는 조개들이 사는 바다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죽는
허무한 동굴
놀라운 것은
그 힘은 벗었을 때 더욱 눈부시다는 것이다
문정희 시인의 ‘치마’라는 시를 읽어보면 남자들의 심리묘사가 잘 나와 있다. 남자라는 인간은 영원히 치마 속을 궁금해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마 본능이리라. 어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서도 벗어나 무엇이 ‘진실’인가 우리 냉철히 생각 좀 해보리라. 영어에 ‘Perception is reality’란 표현이 있다. 직역하자면 ‘느낌이 현실이다’쯤 되겠지만 우리 식으로 의역한다면 ‘이현령비현령’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뜻이리라.
다시 말해 인간사에 있어 어떤 경우에라도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실이란 있을 수 없지 않을까. 비근한 예로 안중근 의사나 오사마 빈 라덴이 한국인이나 아랍인들에게는 ‘애국자’요 ‘독립투사’ 영웅이지만, 일본인이나 미국인들에게는 ‘테러리스트’ 일 뿐이다. 승자독식 하는 자연계와 인간세계에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란 법칙만 통하고 그 이외의 자비심이나 인류애는 패자의 비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동물 내지 식물 애호가들에게는 동식물의 생명과 안위도 인간의 것 못지않다. 어려서부터 ‘마음의 샘터’ 같은 책에 나오는 세계명언들을 딸딸 외우는 것을 보고 나보다 두 살 위의 작은 누이가 한 말이 있다. ‘그런 명언들을 남긴 위인들은 그들이 살아생전에는 비참했을 것이며 생존경쟁에서 패배한 약자요 낙오자들로서 자가변명의 자위를 하기 위해 독백하듯 한 소리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해방을 맞아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고 온 사회가 ‘좌익’이다 ‘우익’이다 하며 혼란할 때 당시 교편을 잡고 있든 나보다 7살 위의 큰 누이에게 ‘공산주의’가 뭐고 ‘자본주의’가 뭐냐고 물어봤다. 벌써 8년 전에 세상 떠나신 누님의 그 옛날 설명은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더할 수 없이 명쾌한 것이었다. “태상아, 넌 어떤 게 더 좋다고 생각하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으로 우등생이 되거나 게으름 피워 공부를 못하면 낙제생이 되는 것과, 네가 잘하든 못 하든 상관없이 모든 학생이 다 똑같은 점수를 받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쪽이 좋겠니?” 그때 내 즉각적인 대답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공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우리 모두 서로서로 도와 다 같이 잘살아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앞에서 언급한 수키 김의 책 제목 그대로 ‘당신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깨달아 인정하고 이를 실천궁행(實踐躬行) 해야 하는 것이 진실이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