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시집 한 줄기 바람(5편 시선)
(순서)
평행선
한 줄기 바람
소방의 넋
불조심 사생대회
처녀소화전
1. 평행선
화재 신고를 신속히 접수하여
소방차를 즉각 출동시켜야 하는
지령실 근무를 하다 보면
가끔 있어 온 일이고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신고를 받은 후
즉각 소방차를 출동시켜도
출동 지연이라는
화살이 날아오는 것은
무엇일까
신고자의 기다림과
접수자의
만나지 못할 평행선이기 때문일까
안타까워라
이러한 때에는
신고자와 접수자의 아픔만
불꽃 속에서 타고 있을 뿐이다.
2. 한 줄기 바람
화재 진압 후
땀으로 흥건히 젖은 몸을
소방차에 싣고
성급히
쳇바퀴 도는 다람쥐같이 달리다 보면
어디선가 기체의 흐름으로 갈라진 기류가
바람이 되어
피부에 와서 닿는다
무심한 담배 연기처럼
열기 섞인 연기가 희석되어
체감온도를 유지해 주는
바람은
정신을 해맑게 하는
한 줄기 바람은
오히려 꿈이다
내가 겪은 천국의 사랑이다.
3. 소방의 넋
화마에 스스로 빨려들어
허적이는 주정뱅이까지 구해 놓고
고이고이 순직한 그대여
그대 영혼의 제단에
머리 숙이고
오열과 비통에 묵념합니다
그대는
우리의 마음속 깊이 남아서
영원히 피어 있을 소방의 넋입니다
그대가 잠든 자리에는
해 하나 떨어지고
이끼 낀 풀 섶에 멍든 상처가 자랄지라도
그대를 기리는 마음만은
바위처럼 오랜 세월을 지키리다
아 거룩한 그대의 넋은 별빛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별빛입니다.
4. 불조심 사생대회
낙엽이
바람에 뒹굴고 있는
시월 마지막 날 오후지만
햇볕도 비스듬히 누운 사생대회장은
오히려 꽃밭같이 아름답기만 했다
우두커니 자리 잡고 앉아서
소방용 굴절사다리차를
그리고 있는 고사리손의
빠른 손놀림
동화 속의 세계가 펼쳐진다
피어오르는 불꽃을 향해
불을 끄는 그림 속의 사람들도
무척이나 바쁜가 보다
어느 순간에
그림을 지켜보던
모성의 표정도 빨리어 들고
그림 위에 불조심이라는
굵직한 글자를 쓰고 있는
꼬마 화가의 표정은 더 행복하다
시월의 햇살이 자꾸만 두툼해지면
대회장은 천사들만 사는 천국이다
화마도 없는 천국이다.
5. 처녀소화전
설치된 지 여러 해가 다 지나가도록
현장의 물줄기를 한 번도 빼본 일 없는
인도 후미진 곳에 설치된
처녀소화전
언제나 그대로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진단을 받아
건강한 웃음을 지으면서
화마와 싸우는 날을
기다리면서
그날이 없기를 빌면서
인도 후미진 곳에 설치된
처녀소화전
소화전은 언제나 임전 태세다.
한정찬
∙ 시인, 농부(小農)
∙ 한국문인협회원, 국제 펜 한국본부회원, 한국시조시인협회원
∙ 시집<한 줄기 바람> 외 27권, 시 전집<한정 찬 시 전집 1, 2> 2권
∙ 칼럼집<소방안전 칼럼집Ⅰ> 1권
∙ 한정찬문학 & 소방문학 갤러리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