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서 모래 놀이

블루베리 크럼블 (사진: 김정하)


안녕하세요. 맛있는 수요편지 김정하입니다.


뜨거운 날씨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더위를 피해 또는 일상으로부터 한 발 자국 멀어지기 위해 여름 휴가 다녀오셨나요? 저는 여름 휴가는 항상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납니다. 물 속에 들어가면 세상과 단절되고 저와 자연만 존재하는 느낌 좋고, 제가 느끼는 스트레스는 수용성인지 물에 들어가면 다 녹아내립니다.



계곡과 바다 중 고르라하면 바다를 더 좋아합니다. 바다에 얼굴을 넣어 헤엄치는 물고기들, 햇빛에 일렁이는 바닥, 물 살에 흔들리는 해초를 구경하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물놀이에 지치면 모래사장으로 나와서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모래찜질을 하기도 하고, 높게 모래성을 만들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멋진 성을 쌓고 싶은 마음에 모래놀이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가까워진 파도에 모래성이 부서져 버려 허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집에 돌아 와 모래 놀이가 그리울 땐 크럼블을 만듭니다. 커다란 볼에 밀가루와 잘게 자른 차가운 버터를 넣고 조물조물 하면 그 느낌이 모래같아 바닷가에 온 기분이 듭니다. 크럼블은 잘게 부수다는 뜻이 있는데 영국에선 과일에 반죽을 잘게 부숴 구운 디저트를 말합니다. 손 끝에서 뭉친 반죽을 부스며 버터와 밀가루를 느껴봅니다. 뭉치지 않은 반죽을 설탕 섞은 블루베리와 함께 틀에 넣어 구우면 모양새는 투박하지만 맛있는 블루베리 크럼블이 완성됩니다.



파도에 사라지는 모래성처럼 망가진 건만 집중하니 부서질때마다 아쉽고 슬펐습니다. 하지만 주방에서 잘게 조각난 반죽들은 크럼블로 다시 태어나 달콤한 기쁨을 줍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새로운 탄생은 항상 파괴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커다란 빅뱅으로 시작한 것 처럼요. 하물며 달걀 후라이를 먹으려면 달걀을 부숴야하잖아요.



기대와 희망으로 쌓아올린 세상에서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고 행복과 안정감을 느꼈기에 그 세상이 파괴되면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기존의 행복을 내려놓고 불확실한 미래를 생각하는건 불안하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분명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일이기에 이전과 다른 차원의 행복이나 기쁨이 있습니다.



안에서 부서지는 크럼블을 보면서 파도에 쓸려나간 모래성으로 아쉬웠던 마음은 털어내고,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다른 행복은 없었는지 생각 봅니다. 여러분은 공든 탑이 무너졌을때의 아쉬움과 허탈함을 어떻게 달래셨는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맛있는 하루 보내세요.


K People Focus 김정하 칼럼리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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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24.08.07 07:50 수정 2024.08.07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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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