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박주미] 인문학이 사라져가는 시대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문학이 힘을 잃어가는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인문학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는 문학, 철학, 역사와 같은 순수 인문학에 대한 선호도는 갈수록 저하됐다.
젊은 청년층의 경우 더욱 이러한 인문학을 접하는 것이 입시를 제외하곤 없는 듯하다. 그들은 입시를 준비할 때는 단순히 성적을 받기 위해 사용한다. 은연중에 그들은 보호자로부터 단순히 먹고살기 바쁘니까, 취업해야 하니까. 인문학이 아닌 과학을 택하게 설계되었다. 그렇게 순수학문의 가치는 차츰차츰 사라져간다.
사실 필자 또한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인문학이 배제되고 있다는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학과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저마다 취업을 위해 이동한다.
그러나 나는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인문학이라는 것을 단순히 교양 쌓기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인문학은 사고의 폭을 그 무엇보다 넓혀준다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인문학의 출발이다. 우리는 사고하는 힘이 있기에 발전할 수 있었다.
나는 믿는다. 언젠가 현대인들은 더 이상의 과학기술이 자리 잡고 나서 그 이후에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느끼리라는 것을. 사고의 깊이를 잃어가는 순간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게 된다.
인문학은 힘이 있다. 사고하는 힘. 어쩌면 그 수많은 학문 중 인문학은 사고하는 과정을 키울 수 있는 과목이다. 더구나 사람을 향해있다는 점에서 그 매력은 더욱 커진다. 인문학의 본질은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대상 그 자체의 목적을 탐구하는 바에서 시사점이 크다.
생각하는 그 본질이 ‘사람’을 향해있다는 것. 과거를 통해 지혜를 배우며 그것을 탐구해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게 한다. 사람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그것 역시 일시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인간은 인문학을 배운다는 개념보다는 스스로 인문학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은 대상 자체를 연구한다는 것에서 참으로 무기가 된다. 그것은 널리 내다볼 기회를 제공함으로 두려움을 막는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성찰, 그리고 그 외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의 토대를 인문학을 통해 알아갈 수 있다. 이을 탐구함으로 무기를 얻게 된다. 그러니 인문학을 가까이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이 사라져가는 시대다. 인간이 대상을 향한 성찰 없이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발전은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감당하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과학기술이 인간은 대체하는 시대, 인간이 수단으로 여겨질 시대가 어쩌면 이미 도래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인간이 살아남는 방법은 더 강한 기술과 발전이 아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영역을 확장하는 방법. 그것이 현대인이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아닐까.
참으로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21세기에 인문학이 뭔 말인지. 그러나 기술과 인간의 사고는 비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대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더욱 무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