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6월 2일(이하 음력) 당포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 함대는 남해 창선도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다음 날인 6월 3일 이순신 장군은 적이 도망간 개도(현재의 추도) 일대를 수색하면서 서서히 동진하여 고성땅 고둔포(古屯浦)에서 하룻밤 잤다.
당포해전에서 승리한 직후 당항포해전이 있기 이틀 전에 이순신함대는 이곳 고둔포에서 하룻밤을 유박한 것이다. 6월 4일 아침 고둔포에서 당포로 진출한 이순신함대는 증원군으로 판옥선 25척을 이끌고 달려온 이억기의 전라우수군을 만나 착량(통영대교 아래 판데목)에서 하룻 밤 자고 6월 5일 당항포로 가서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의 상황은 임진장초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에 잘 기록되어 있다.
약 20여 년 전에 <이순신이 싸운 바다> 책을 쓰기 위해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발견한 곳이 고둔포다. 고둔포는 경남 통영시 산양읍 풍화리 1678번지에 있는 경상남도수산자원연구소가 있는 북향의 포구다.
2024년 8월 11일 다시 고둔포를 답사했다. 산양읍 풍화리 수월마을의 마을회관에 들러 어르신들을 인터뷰했다. 이성선(90세) 할머니에게 이 근처에 고둔개가 있는지 물었다. 산 너머 명지 마을 왼쪽에 수산자원연구소가 있는 곳이 '곧은개(고둔개)'라고 했다. 그곳은 물이 좋아 예전에 빨래를 하러 다녔던 곳이고 개발(조개의 사투리) 캐러 갔던 장소라고 증언했다. 이 '곧은개'를 음차하여 이순신 장군은 한자로 고둔포(古屯浦)로 표기했다.
수월마을 주민 김재권 님은 고둔개는 물이 좋아 논도 있었고, 백사장에서 수영하며 놀았던 포구로 목선이 정박하기 좋은 곳이라고 증언했다. 이순신 장군이 하룻밤 자고 가는 곳은 반드시 물이 있는 곳이다. 식수를 보급하고 취사를 하려면 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주민 인터뷰를 마치고 산 너머 수산자원연구소로 향했다. 연구소 외해연구동 앞이 이순신 장군이 머물다 간 고둔포라는 표지석이 하나 있다. 얼마나 기쁘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연구원 한 명을 인터뷰하니 이 표지석은 수산자원연구소에서 약 5년 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경상남도수산자원연구소에 필자가 밝혀낸 고둔포 표지석을 설치한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봉수]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