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정유순] 우리도 모르는 친일잔재(親日殘滓)


▲ 정유순/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한국공공정책신문

 [한국공공정책신문=천양자 기자]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가 한창인 어느 날,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공원에 간다. 사육신공원(死六臣公園)은 사육신의 묘역 및 그 일대에 조성된 시립공원으로, 서울시 유형문화재(8)로 지정되었으며, 예전 이름은 사육신묘였다. 사육신(死六臣)은 계유정란(癸酉靖亂) 이후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긴 어린 단종(端宗)의 복위를 꾀하다가 목숨을 잃은 박팽년, 하위지, 성삼문, 유응부, 이개, 유성원 등 6인이었는데, 현재는 김문기도 잠정적으로 추가되어 있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김질(金礩)의 밀고로 실패하여 14566월 군기감 앞에서 거열형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매월당 김시습이 어두운 새벽을 이용해 한강을 건너서 지금의 노량진에 이들의 시신을 안장시킨 것이 시초였다. 후에 1681년 숙종 때 민절서원(愍節書院)’이 세워졌고, 정조 때에 와서 신도비를 세웠으며, 1978년 서울특별시가 묘역을 확장하였고 후에 사육신의 업적과 충성심 등을 전시해 놓은 사육신역사관이 설립되었다.


묘역에 들러 잠시 묵념으로 예를 드리고 밖으로 나와 사육신역사공원(死六臣歷史公園)’ 담길인 노량진로(鷺梁津路)를 지나다가 우연히 외벽 담장에 박힌 이상한 무늬를 발견하게 된다. 담장에 아름다운 매화(梅花)무늬를 만들어 추운 겨울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사육신 정신을 상징한 것 같은데, 가운데 꽃술 부분이 영 마음에 거슬린다. 이를 자세히 보니 영락없는 일본 왕실의 국화문양(菊花紋樣)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는 몰라도 내 개인 생각으로는 마치 일본 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草芥)같이 버린 사육신으로 둔갑시키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 왕실의 문양인 이화(李花, 자두꽃)와 일본 왕실의 문양인 국화(菊花)에 대하여 누가 가르쳐 주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글자를 모르면 문맹(文盲)이요, 컴퓨터를 모르면 컴맹이고, 역사(歷史)를 모르면 사맹(史盲)이 되는데 이중 공직자(公職者)의 사맹이 가장 심각하다.

 

언젠가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서민들이 자주 찾았던 국화빵의 문양이 일본 왕실 문양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일본 왕의 상징물이 박힌 음식이 몇 종류 있다.”국화빵이라 불리는 풀빵이 대표적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국화빵을 출시하는 모기업에서는 억지라고 주장하였으며, 특히 전통 떡살무늬 연구로 무형문화재(56)에 오른 김규석은 국화빵에 새긴 떡살 무늬는 한국의 전통 국화 모양이라고 반박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러나 혹독한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우리 민족으로서는 껄끄럽기는 매한가지다. 봄이면 전국 곳곳에서 화사하게 번지는 벚꽃을 해방 후에는 우리 스스로 일제 잔재라고 뽑아 버리기도 했지만, 5·16이 일어나고부터는 그 열기마저 시들어 버렸고, 오히려 왕벚꽃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라는 주장이 나와 세상 민심을 덮어 버렸다. 그러나 나의 눈에는 아직도 벚꽃보다는 사쿠라()’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심어진 일본의 소메이요시노 종을 두고 논란이 있다.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는 교잡종으로 그 기원 및 원산지가 제주왕벚나무라고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DNA 검사를 통해서 원산지 논란의 중심인 제주왕벚나무와 소메이요시노는 서로 별개로 자생한 잡종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벚꽃과 일본의 관계는 원산지를 떠나 역사적, 문화적, 외교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다.

 

이런 점으로 보아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것은 사실이고, 벚꽃 축제로 대표되는 벚꽃 문화도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건너왔다. 실제로 한국에서 벚꽃 축제에 사용되는 벚나무도 일본에서 교잡하여 재배한 소메이요시노가 대부분이다. 일본은 품종개량을 통해서 만들어 낸 벚꽃이 무려 300여 종에 달하며 세계 최장수 벚나무도 일본에 있는 수령 2000년 이상의 야마타카 진다이사쿠라(山高神代櫻). 역사적으로도 일본 문화에서 벚꽃을 빼놓을 수가 없고 벚꽃이 일본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이유다.

 

우리가 해방된 지 1세기가 다 되어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일제의 식민정책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일제의 식민정책은 먼저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조선 민족의 혼, 조선 민족의 문화를 상실하게 하라.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능함과 악행을 들추어내되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쳐라. 조선인의 청소년들이 그들의 부모 조상들을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이 기풍이 되게 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조선인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고,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하라. 그럴 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문화, 일본의 위대한 인물들을 소개하면 동화(同化)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 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인 것이다.(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요사에서 발췌)


이러한 일제의 식민정책으로 저지른 만행은 ‘70세 이상 생존 노인에게 벼슬을 내린 고려의 노인 우대정책을 소위 고려장(高麗葬)’으로 둔갑 시켜 효()말살 정책을 펼쳤고,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상징인 흰옷을 훼철한 행위,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 필수품인 민속주(民俗酒)를 없애기 위한 주세정책(酒稅政策) 실시, 명산대찰에 맥을 끊기 위한 쇠말뚝 박기, 우리의 말과 문자 없애기, 창씨개명(創氏改名)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특히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지금도 이조(李朝)’라는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 한다. 조선시대에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말은 본조(本朝)’였다. 그러나 일제가 대한제국을 병탄하고 조선총독부를 세우며 대한제국자체를 근본부터 부정하고, 조선은 일본이 되었으니, 조선을 가리킬 때는 본조라고 하지 말고 이조(李朝)’로 쓰게 하여, 519년을 이어온 조선 왕국을 전주이씨 씨족국가((全州李氏 氏族國家)’로 폄하(貶下)하여 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이조라는 말을 사용하면 안 된다.

 

더 소름 끼치는 것은 일본이 패망하고 퇴각하면서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 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 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며 마지막 조선총독을 지낸 아베 노부유키(阿部 信行)의 말은 소름을 돋게 한다.

 

이러한 식민정책에 가장 앞장섰던 당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은 대한민국 국립대학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일제 식민사관의 맥이 유유히 흐르고, 조선총독부의 행정과 사법을 이어받은 해당 부처들은 일제 용어의 잔재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방 후 대한민국이 수립되면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어떠한 매듭을 짓지 못한 결과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는 구정(舊正, ) 구라(거짓말) 뽀록(들통) 가라(가짜) 노가다(노동자) 후카시(폼재기) 분빠이(분배) 경례(인사) 쇼부(승부)’ 등 많은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

 

역사(歷史)는 흘러간 과거가 아니다. 바로 지금이며 미래(未來). 나쁜 역사는 꼭 반복된다고 한다. ‘국가를 다스리는 길은 선비의 정신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역사보다도 급한 것이 없다“(爲國之道 莫先於士氣 莫急於史學-위국지도 막선어사기 막급어사학)’라고 했다. 따라서 국가는 형체(形體)고 역사는 혼()이므로, 올바른 역사를 세워야 한다. 단재 신채호(丹齋 申采浩)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다.

 

프랑스의 샤를 드골대통령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 부역자 중 6,763명을 사형에 처하고 26,529명을 징역형에 처하면서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을지라도 또다시 민족 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특히 정치인, 언론인, 작가, 시인 등 사회여론 주도층은 가중처벌을 받았다. 과거 일제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일본왕실문양 (필자 정유순 제공) ⓒ한국공공정책신문




瓦也 정유순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한국공공정책신문 칼럼니스트

저서 <정유순의 세상걷기>, 

    <강 따라 물 따라>(신간) 등




작성 2024.08.13 18:56 수정 2024.08.13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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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