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와 저장성 항저우,장쑤성 쩐장 임시정부와 자싱 김구 피난처까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의 정신이 깃든 중국화동지역(상하이,저장성,장쑤성,안후이성)중 장쑤성 쩐장(江苏省 镇江)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관에서 한중수교이후 처음으로 제79주년 815광복절 기념식이 상하이,쑤저우,이우,우시,난징,옌청,예윈강,장인,장자강,쩐장등에서 계시는 교민분들 30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독립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으며
815광복은 암울했던 일제의 식민통치시기를 벗어나 독립이라는 빛을 되 찾은 날이지만 특히 이곳 중국화동지역(상하이,저장성,장쑤성,안후이성)은 임시정부의 시작이자 광복이 되기전까지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항일정신의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곳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하 사료관 리모델링이 끝나지 않아서 사료관은 볼 수 없었지만 연합회 박충훈 사무총장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여 사료관 마당 곳곳에 쩐장과 임시정부의 활동상황, 광복의 기쁨을 맞이하는 사진들을 전시하여 행사를 풍성하게 하였다.
이번 광복절행사는 국민의례와 애국가 1~4절까지 제창,묵념,김완수 중국한국상회.한국인회 화동연합회 회장의 기념사와 주상하이총영사관 방지영 교민영사의 대통령 경축사 대독,쩐장과 임시정부라는 주제의 특강, 푸단대학 박사과정의 전예슬씨의 천개의 바람과 홀로 아리랑 바이올린 기념연주,광복절노래 제창,조형무 수석부회장의 만세삼창 순으로 이루어졌다.
김완수 회장은 ‘오늘 이 뜻 깊은 장소에서 경축식을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쩐장시 정부와 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관 관계자 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제79주년 광복절입니다. 1910년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완전히 주권을 상실한 채 피 식민상태로 전락하여, 그 암울했던 35년의 세월을 극복하고, 1945년 호국영령과 순국선열들의 흘린 피로 다시금 잃어버린 빛을 찾은 그날이 바로 오늘 8.15였습니다.
저희들은 비록 몸은 멀리 타국에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광복절은 매우 의미 있는 날로서, 그날의 기쁨과 함성을 기억하며 이렇게 타국에서 경축식을 거행하게 되어 무척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정든 고국을 떠나 이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기가 녹록하지는 않지만 매 순간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힘겨운 시간들을 견뎌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노력하고 열심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다시 맞은 79주년 광복절, 그날의 숭고함과 환희가 우리 선조의 마음에서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 느껴집니다.’라고 기념사를 하였다.
이곳 대한민국 임시정부사료관은 1932년 윤봉길의사의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의 의거 이후 포악해진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1932년부터 1935년까지 저장성 항저우 임시정부를 거쳐 1935년11월부터 1937년11월까지 오늘 기념식이 열렸던 장쑤성 쩐장에서 임시정부를 꾸렸지만 중일전쟁인 7.7사변으로 상하이가 점령되고 난징이 함락되자 쩐장도 전쟁에 휩쓸리게 되어 1939년11월 추운 겨울날 임정은 쩐장을 떠나 후난성 창사로 이동하였으며 당시 쩐장은 장쑤성의 성정부였고 난징과 제일 가까운 도시이자 중국내 제일 긴 강인 창장(長江)과 베이징-항저우를 잇는 징항대운하가 교차하는 곳이라 동북에 있는 독립 단체들과 연결이 용이하고 중국내륙의로의 이동이 용이한 점도 있지만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가 난징을 국민정부 수도로 결정하자 쩐장이 장쑤성 성도가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난징에서 국민당과 일본간의 외교마찰로 인해 국민당의 적극적인 후원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쩐장으로 옮겼다.
쩐장에서의 임시정부 2년의 활동은 와해직전인 임시정부를 재정비하고 공석이 발생한 임시정부 각료들을 재선임 한 후 임시정부 여당인 한국국민당을 창당하여 임시의정원 소집과 국무회의 소집,정무활동,선전활동,간부훈련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쩐장은 초대 임시의정원(현재 국회의원) 이동녕 선생과,안창호 선생,엄항섭 선생의 부인이자 여성독립운동가인 연미당여사도 쩐장 중학교에 다닌 흔적과 함께 1937년에는 김구선생이 오늘 기념식이 열렸던 무위엔 소학교 강당에서 주민 400여명 앞에서 “조선망국의 참상”이라는 연설도 하였지만 관련 자료들은 없고 연설을 들은 주민들의 증언만 있고, 임시정부의 쩐장 활동에 대해 정확한 청사 위치와 요원들의 거주지에 대한 자료 역시 남아 있지 않아 국가보훈부의 공식적인 독립유적지로 인정이 되지 않아 관리대상 외로 취급되는 안타까움이 있다.
또한 우리는 상하이와 항저우,쩐장의 임시정부와 함께 많은 분들의 독립활동이 이곳 중국화동지역에서 있었지만 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에 가려진 이름 모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활동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글,사진/ 장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