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피우려 애면글면하기는 매한가지인데 겨울에 피는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여름철 꽃은 좀처럼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다 같은 꽃이라 예쁘지 않을 리는 없겠고 푹푹 찌는 무더위에 꽃을 보려 발길을 옮기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겠지요.
여름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니 절정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요?
만약 그러하다면 모든 절정은 짧기에 이 역대급 여름도 시나브로 시들어 갈 것이 분명합니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기나긴 여름에 지칠 즈음이면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여름의 절정을 느끼고 가을에 곁눈질을 줍니다.
바로 ‘여름꽃’이지요.
차츰 시들어 가는 싸리나무꽃이나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촌스러운 이름과는 다르게 기품이 느껴지는 은은한 분홍빛의 박주가리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저의 여름꽃은 바로 매미 소리입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지상에서의 시간을 살아가는 매미가 울부짖다시피 하는 것은 여름이 위태위태하고 이내 하릴없이 추락할 것을 직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하여 매미가 새벽부터 밤늦도록 울고, 리듬감 있는 노랫소리가 쨍쨍한 소음으로 들려올 때 여름꽃은 만개합니다.
또 다른 여름꽃은 곰팡입니다.
점점 길어지는 장마철과 푹푹 찌는 날이 이어지면 어김없이 집안 곳곳에 곰팡이가 핍니다.
저번에는 화장실 구석에서 납작 엎드려 있던 곰팡이가 올해는 함께 밥 먹을 아이들이 없어 거실 구석으로 치워 논 원목 식탁에 파르스름한 옷을 입고 버젓이 앉아 있습니다.
여름을 먹으며 기생하는 곰팡이가 성하면 여름은 하릴없이 쇠하는 법, 바람이 식으면 함께 물러나는 곰팡이 또한 여름 한 철에 피는 여름꽃이라 불러도 마땅하겠지요.
덥지 않은 여름도 없고 의미 없는 여름도 없습니다.
저는 여름나기가 슬슬 힘에 부쳐오면 여름의 절정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매미소리가 하늘을 덮고 곰팡이가 땅을 덮칠 기세로 퍼진 것을 발견하면 다시금 여름을 견딜 힘이 나고 여름을 관조할 여유까지 생깁니다.
그러면 무더위에도 관대해지고, 여름꽃의 간절한 운명을 슬그머니 응원하게도 됩니다.
절정을 지난 모든 것이 시들 듯이 여름도 그러겠지요.
K People Focus 김황종 칼럼니스트 (ueber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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