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인류학자 엘렌 디사나야케는 『미학적 인간, 호모 에스테디쿠스 』라는 저서를 통해 예술이 진화해 온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라는 ‘진화미학’을 주장했다. 예술은 원시부터 문명사회에 걸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통해 예술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과 왜 선천적으로 미적이고 예술적인가를 밝혀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인간 활동에 필수적인 자연선택의 가치물로써 인류 보편의 행동 양식이다.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보호함으로써 진화해 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행동으로서 예술적 행위는 인간의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진화 과정에서 선택된 필연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문화는 자연 선택적 가치가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보완물이며,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적응을 위해 유도된 결과로써 자연과의 대립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며 대체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놀이와 전례를 통해 ‘특별하게 만들기’라는 예술 행동의 근본적 경향성을 이끌어냈는데, 놀이는 일반적 경험의 세계와는 다른 체험을 의도하고, 전례는 정형화된 순서에 따라 형식을 갖춘다는 점에서 놀이와 전례는 비일상적이라는 것이다. ‘특별하게 만들기’는 놀이와 전례는 인류에게 유전된 보편적 경향성, 즉 자연선택 가운데 하나이며, 예술적 속성을 지닌 활동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지루함에서 벗어나 심미적인 예술 행위를 함으로써 미지의 것에 대한 지각을 대비하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면서도 좀 더 특별하게 만들기를 통해 남보다 특별한 존재임을 인정받고자 노력해 왔다.
사람은 원시시대 때부터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다르게 예술적인 행위를 통해 미적인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왔다. 신분제도가 생기게 되면서 특별하게 만들기는 의식주의 문제가 충족된 상위 계층은 자신의 위상에 걸맞은 예술 활동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고자 했고, 하류 계층은 자신이 맡은 일에서 자신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더불어 예술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자 실현의 기쁨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받음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려는 욕망을 실현해 왔다.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산업혁명은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이 오늘에 이르렀다. 그 후 지구촌의 변화는 짧은 기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하여 인간들에게 물질적인 욕망을 실현시켜 왔다. 첨단 과학기술문명의 발달로 인류는 더 편리하게 시공간을 지배함으로써 과거에 살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물질을 소비하고, 더 넓은 공간을 마음대로 왕래하면서 생활하게 되었다.
의식주 기본적인 생활이 풍족해지자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보고 싶은 욕망이 커지게 되었고, 예술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였다. 물질적인 소유욕을 과시하려는 상류층들은 자신이 남보다 우월함을 공고히 하고자 특별하게 만들기 활동으로 과시 소비, 과시 유한, 높은 신분임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높은 평가를 얻어내려고 했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유한 계급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유한계급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육체적인 행동을 꺼려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양반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했으나 양반의 체면을 중시한 결과, 하층 계급에 구걸하기 싫어서 끝내 굶어 죽는 일들은 유한계급의 극단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도예나 대장간 등 생활 도구를 만드는 사람, 그리고 춤, 풍물, 곡예 등 남사당패, 판소리꾼 등 떠돌이 예술인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천민 계급에서 담당한 활동은 직업적 활동인 반면에 서예나 시창작은 유한계급인 양반층의 문화였다.
유한계급은 천민들의 예술품을 사서 소장하고, 떠돌이 예술 활동을 불러들여 감상함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특별하게 만들었고, 이들은 자연을 찾아 시회를 여는 등 풍류를 즐기거나 기방을 찾아 기생들의 노래와 기악을 감상하거나 같이 시문을 주고받는 활동으로 비생산적인 여유 문화를 소비하며 생활하였다.
예로부터 예술 중 문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층만이 누리는 그들의 우월한 신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문화였다. 구한말 이후 외세 침략과 더불어 근대화가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는 글은 지식층들이 우리의 전통적인 민족의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거나 자신의 고뇌를 토로하는 유일한 표현 예술이었다.
19세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는 외세 침략의 수난사였다. 역사적인 질곡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으로 절대적인 빈곤에서 해방되고 경제적인 여유를 갖게 되자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고, 자아 정체성을 찾고, 정신적인 빈곤함을 메우기 위한 일환으로 예술 따라 하기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물질만능주의 가치관에 오염된 졸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척하여 경제적인 부를 남에게 과시하는 행동으로 아파트 큰 평수 이사 가기, 부유층이 살고 있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기, 소비시설의 VIP 회원 되기, 조상들의 묘지 호화롭게 꾸미기, 명품, 명화 사재기 등으로 과시 소비로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반면에 일반 서민층은 노래방의 문화로 예술 따라 하기로 그날그날 만족하며 살아간다.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따라 부름으로써 즐거움을 느끼고, 도시화로 인해 결핍된 자연을 텔레비전을 통해 드라마나 “나는 자연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대리만족하며 살아간다. 또한 자신의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문예지에서 남발하는 가짜 문인 자격증(?)를 구입하여 문학작품 향유층이 아니라 문인 행동 따라 하기로 유한계급임을 증명하려고 허세를 부린다.
우수한 문학작품을 향유하기 위해 시를 낭송하고 즐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학 향유층이 문인의 영역을 침범하여 엉터리 작품을 쓰면서 버젓이 문인인 것처럼 문학작품 따라 하기가 아니라 문인 따라 하기 행동을 하는 것은 특별하게 만들기라는 예술의 본령과는 상반된 “특별하게 속물(바보) 되기”라는 한국문학 풍토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야 어떻게 문인이 되었든 간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전문 문인으로 거듭나서 창작에 전념한다면, 문인으로서 제자리를 찾아 특별하게 만들기라는 예술 본연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가짜 문인이 아니라 진짜 문인이 재탄생되어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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