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녀, 뜨겁다. 태양보다 더 뜨거웠다. 온몸이 타들어 갔다. 영혼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견딜 수 없는 뜨거움, 그 뜨거움에 나는 타오르고 있었다. 두 눈을 감았다. 이제 뛰어내리기만 하면 모든 것은 완벽했다. 나는 그 완벽함을 위해 절벽 위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찰나였다. 허공을 날고 있는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찰나가 없는 영원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영원이 없는 찰나가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나는 모든 걸 얻기 위해 모든 걸 버렸다. 나의 불완전은 완전을 위해 불행을 담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변명이 아니다. 진심이었다. 나는 천천히 바닷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정신이 혼미해져 갔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지 않았다. 어서 빨리 정신이 몸과 함께 저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정지하기를 바랐다. 숨은 점점 멎어가고 정신은 더 혼미해져 갔다.
‘아, 나의 코스모스…….’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았다. 시간도 정지되었다. 바닷속은 우주를 열고 처음 지구로 들어온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했다. 탄생과 죽음이 한 몸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지막 숨까지 빠져나가고 나는 소멸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였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연기처럼 그녀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정신이 듭니까?”
흰 가운을 입은 늙은 의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벽, 흰 침대,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살아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죽음으로 끝내고 싶었던 인생이었는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기적입니다. 기적이 아니라면 목숨을 구할 수 없었지요.”
나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기적이라거나 운명이라거나 하는 언어유희를 듣고 있는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었다. 부드럽고 온화한 늙은 의사의 목소리가 흰 가운처럼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토록 뜨겁던 태양은 유리창 너머로 온화하게 비치고 있었다.
“이태상 씨, 척추를 크게 다쳤습니다. 수술하고 입원 생활을 오래 해야 할 겁니다. 후유증도 감수해야 하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인명은 재천이지요. 구사일생이라는 말은 이태상 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나는 의사의 말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태양이 뜨겁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녀처럼 뜨거운 태양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태양이 뜨겁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관념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나는 의사에게 어떻게 다시 살아났는지를 묻지 않고 유리창 밖의 햇살만 바라보았다.
“난 지금 쫓기고 있어요. 서울을 떠나야 합니다.”
그녀는 서울을 떠나야 하는 나에게 조용히 단테의 신곡 원서 한 권을 내밀었다. 이승만 퇴진을 외치며 선봉에 서서 했던 학생운동이 문제가 된 나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천사처럼 고운 그녀를 위해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쫓기고 있는 몸을 숨기러 떠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혼란의 격동기를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청춘이 가여웠다. 겨우 식민지를 벗어나는가 했더니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리고 전쟁의 상혼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독재정권에 항거해야 했다. 이 처절한 운명을 지닌 것이 가여워서 그녀와 나는 서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의 봄이 오기 전 꼭 만납시다. 이월에 꼭 다시 오겠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 아니던가. 나는 봄이 전에 그녀에게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다.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기억해 주세요.”
고개를 숙인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나의 그녀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두고 서울을 떠났다. 마치 단테처럼 그녀를 떠나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나는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희망이다.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희망, 희망을 주는 희망 그 자체였다. 나는 강원도 오지 고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보이는 건 바다밖에 없는 고성에서의 시간은 더디 갔다. 쫓기는 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숨어서 시간을 삭히는 일밖에 없었다.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그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했지만, 서울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기다렸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졌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못난 놈이 되어버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쫓기는 몸만 아니었어도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어지러운 시절은 내게 사랑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녀, 밤마다 그리움을 삭히면서 수 없이 불렸던 그녀였다. 그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감출 수 없던 나는 펄펄 끓는 뜨거운 피의 혈서를 써서 보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기다려 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혈서를 보내놓고 나는 그녀를 잊지 못해 시름에 잠겨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는 답장을 뜯지 못하고 며칠을 품에 안고 있었다. 어떤 내용의 답장인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란 사람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었다. 결심하고 나는 답장을 뜯었다.
저를 잊어 주세요.
이 짤막한 문장 하나만 덩그렇게 쓰여 있는 편지를 읽고 나는 스르르 무너지는 내 영혼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학생운동 때문에 쫓기는 몸이 되었어도 견딜 수 있었다.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게 마지막 희망의 불빛이었다. 그 불빛이 꺼졌다. 짤막한 한 줄의 문장으로 불빛은 사그라지고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깜깜한 절망뿐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와 함께한 행복이 떠나가고 그녀와 이별한 불행이 나를 죽음의 절벽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열다섯 살 소년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처음 만났던 코스모스처럼 그녀는 코스모스를 닮았었다. 무너진 건물 사이에 함초롬히 핀 코스모스를 바라보기 위해 거리를 굽힌 순간 쏟아지는 총알을 피할 수 있었던 그 코스모스를 닮은 그녀였다. 그녀는 내게 목숨이었다. 코스모스가 목숨이었던 것처럼 그녀도 내게 목숨이었다. 나는 나의 목숨같이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니체의 말처럼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는 말을 알 것 같았다. 삶이 사랑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은 창조적인 것을 그녀를 통해 알았다. 사랑의 의지는 삶을 사랑스럽게 해주었다. 그녀는 내게 사랑 그 자체였다.
“아, 더 이상 살 희망이 없구나.”
나는 그날 바닷가 언덕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나를 뜨겁게 태우고 있었다. 태양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나의 기억장치엔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극적으로 구조된 나는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를 크게 다쳐 불구가 될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아난 것에 대한 괴로움이 날로 더해갔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이건 반칙이었다. 사랑에 대한 반칙이었고 운명에 대한 반칙이었다. 생명은 운명을 이기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긴긴 투병 생활로 지쳐가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펴든 신문에 4·19 의연금 기부자 명단이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보다가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다. 나는 직감으로 그녀가 나를 위해 의연금을 기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4·19 혁명에 동참했다가 희생된 것이라고 생각해 기부했을 것이다. 아, 나의 그녀는 나를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목이 메었다. 눈물이 났다. 그리고 행복했다. 사랑의 힘이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사랑의 힘 앞에 나는 만세를 불렀다. 오, 인간의 간사함이여. 나약한 인간인 나는 죽음과 삶이라는 두 줄기 강에서 간사하게도 삶의 강을 찬미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구원자였다. 나를 구원하는 사랑의 메시아,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였다. 나는 그 후 몇 차례의 척추 수술받으면서도 행복했다. 일 년 넘게 병원 생활하면서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다 낫게 되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그녀를 찾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긴 병상 생활을 거의 마칠 무렵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변함없는 사랑을 실천하겠노라는 편지를 그녀가 다니는 학교로 편지를 보내고 행복한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기다렸다. 이제 몸도 회복되어 가고 마음도 다 치유되었다. 나는 기다리는 마음을 즐겁게 즐겼다. 그러나 답신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다니는 학교를 찾아갔다. 내가 보낸 편지는 학과 우편함에 그대로 있었다. 그 편지를 다시 꺼내서 그녀의 집 주소를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녀는 초췌한 얼굴로 나와 마주했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 심장을 휘돌아 파고들었다. 듣고 싶었던 목소리, 나를 살게 해준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히 멈추길 바랐다.
“미안합니다. 걱정 많이 했죠?”
“네,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이제 걱정 같은 것은 다 날려 보내고 우리 결혼합시다”
겁도 없이 나는 결혼이라는 말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그녀를 다시 잃는다면 내 인생의 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결혼이 사랑의 종착은 아니지만, 이토록 애절한 내 마음을 그녀가 알아주길 바랐다.
“저…….”
그녀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망설였다. 망설이는 저 몸짓, 흔들리는 저 눈빛, 무언가 불안이 엄습해왔다. 저 아름다운 입술을 열고 뛰쳐나올 말을 나는 슬프게도 예감해야 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빌었다. 그녀의 입술이 붙어서 열리지 않았으면 했다.
“미, 미안해요. 저 곧 결혼해요.”
“아…….”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터져 나왔다. 그녀가 곧 결혼한다고 망설였던 것이다. 사랑은 내 편이 아니었다. 운명도 내 편이 아니었다. 이 빌어먹을 사랑은 도대체 나를 고통의 바다에 빠트려 놓고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나는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마음을 다잡고 코리아헤럴드에 시험을 봐서 수석으로 입사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녀의 남자친구가 코리아헤럴드에 있다가 막 창간한 중앙일보로 간 사람이었다.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그녀의 남자친구가 나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다. 사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잘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말투는 투박하고 좀 신경질적이었다.
“두 분이 예전에 사귀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지만, 마음속에서는 그녀를 빼앗아 간 사내를 경멸하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은 결혼할 사이입니다. 정식으로 부탁드립니다. 단념해 주십시오.”
“그녀가 노예라도 된다면 우리가 결투해서 승자가 차지하면 되겠지만 그녀는 노예가 아니라 뛰어난 지성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그녀가 선택할 일입니다.”
“정 그녀의 의사를 듣고 싶으시다면 제가 따로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사내는 정중하면서도 자신만만했다. 가진 자의 오만함이 묻어났다. 인생을 결핍 없이 살아온 금수저의 치졸함을 감춘 말투를 응징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것도 사내의 복이라면 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서 알아보겠습니다.”
나를 떠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한 그녀를 만나서 확인한들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지만, 그녀에게 직접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결혼 결심이 그녀의 선택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거실로 들였다. 도도함이 그녀 어머니의 온몸에 흘렀다. 그녀의 어머니는 유명한 문인이자 사회의 리더였다. 아버지도 유명한 작가였는데 육이오 때 월북했다. 그녀의 어머니에게선 선민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자네, 어느 대학 출신인가?”
“네, 서울대 종교학과 출신입니다.”
“가족은?”
“홀어머니에 열두 남매입니다. 누나는 외국 유학 중이고 동생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고 있습니다.”
“음…….”
깊은 한숨을 내 쉬는 그녀 어머니의 속마음을 나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가난한 집안에 홀어미에 많은 형제자매들…….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나에게 그녀와 결혼을 시킬 것이란 생각은 어불성설이었다.
“자네가 내 딸의 결혼 상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나? 밥벌이도 안 되는 종교학과 출신에 거기다가 홀어미, 열두남매, 대학도 안 간 남동생……. 이런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내 딸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용서가 안 돼. 깨끗이 단념하고 그만 돌아가 다시는 내 딸 앞에 얼씬도 하지 말게”
“네 알겠습니다.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그동안의 무례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행복을 빌겠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선택이었다 해도 그녀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녀는 나의 코스모스였고 나의 목숨이었기에 사랑은 변함없었다. 변하는 건 사람이지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랑을 사랑했는지 모른다. 다만 최고의 지성인이면서 문인이며 사회지도급 인사인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일자무식자라도 인간의 본성은 선한 법인데 돈과 권력 앞에 비굴하게 자신의 딸을 넘겨 버리는 처사를 용서할 수 없었다. 가진 것은 없지만 순수하게 사랑하는 젊은 남녀를 잔인하게 떼어 놓을 수 있는지 나쁜 사람 같았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다 모르듯 나도 그녀의 어머니를 모른다. 그녀의 어머니도 나를 다 모른다.
“미안해요, 태상 씨”
어두운 골목 끝에서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겨우 꺼내 놓았다. 나를 죽겠고 다시 나를 살게 했던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로밖에 나를 위로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안하다는 것이 그녀의 진심이던 진심이 아니던 그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두운 골목길 끝처럼 남녀는 늘 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던가. 그 끝에는 시작이 있고 시작은 또 끝이 있다.
“사랑했던 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마음의 짐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사랑해서 행복했던 시간을 어떻게 물질로 계산할 수 있단 말인가. 고개를 숙이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악수를 청했다.
“고마웠어요, 나의 코스모스”
전정 그녀는 코스모스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간절히 염원했던 그녀였기에 나는 코스모스를 원망하지 않고 보낼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사랑은 내게 저절로 완성되는 마음이었다. 마음은 사랑이라는 대상을 향해 뻗어 나가는 시간 같은 것이었다. 골목 끝에서 다시 돌아서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모든 뒷모습에는 인생이 있다. 그녀의 뒷모습에도 인생이 있었다. 감정의 오감을 열고 그녀는 이제 집으로 돌아가 그녀가 선택한 남자의 여자로 살아갈 것이다. 인생이라는 플랫폼에서 그녀의 기차는 나를 남겨 두고 떠났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나라는 작은 창으로 보는 세상이 결코 전부일 리 없다. 그렇다고 마음의 창으로 아는 세상이 결코 전부일리도 없다.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 별 하나, 사람 하나도 존재를 다 알 수 없다. 깊이를 측정할 수 없는 것이 존재다. 나는 이제 그녀에게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녀를 놓고 보니 내가 보였다. 나의 코스모스, 그녀는 내게서 영원하다.
이슬 맺혀 이승이던가.
저슬 맺혀 저승이던가.
기쁨의 이슬은 이승이요
슬픔의 저슬은 저승이네
이슬은 백년의 기쁨이던가.
저슬은 천년의 슬픔이던가.
이승의 이슬이 저승되고
저슬의 저승이 이승되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