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시드니의 낮과 밤

여계봉 선임기자

사흘간 호주 퀸즐랜드주 여행을 마친 후 골드코스트 공항에서 시드니행 국내선을 타고 1시간 반 만에 아름다운 보타니만 인근에 위치한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다. 호주는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휴양지를 찾는 한국인 여행객에게 적합한 겨울 여행지다.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 청정 대자연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고 자연 친화적이고 지속 가능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시드니의 12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로, 긴 일조량 덕분에 야외 활동과 관광을 즐기기에 최적기다. 

 

아름다운 보타니만에 위치한 시드니 국제공항

 

대항해시대를 맞아 1644년 이 대륙의 북쪽에 처음 상륙한 네덜란드 탐험대는 ′새로운 네덜란드(New Holland)′라고 나라 이름까지 붙이지만 혹독한 더위 때문에 식민지 개척을 포기해버린다. 한편 영국 탐험가 제임스 쿡은 아시아와 유럽 대륙이 북반구에 위치해 있으므로 남쪽에도 대륙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1770년 4월 타히티, 뉴질랜드를 거쳐 호주 동남부의 보타니 만에 상륙하여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라고 명명하지만 황무지가 많아 다시 해안선을 따라 북으로 이동하여 이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시드니(Sydney)′의 이름을 붙이게 된다.

 

시드니 도심의 하이드 파크와 성 메리 성당

 

시드니는 나폴리,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도시로 손꼽힌다. 자연과 도시의 조화, 다양한 문화와 역사, 풍부한 음식과 쇼핑 등 다양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도시다. 도심에는 도시의 상징인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 하버, 하버 브리지, 퀸 빅토리아 빌딩, 시드니 타워 전망대 등 유명한 시내 관광지들이 여행자들로 하여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도심을 벗어나면 수영, 서핑,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본다이 비치와 맨리 같은 아름다운 해변을 갖추고 있다. 

 

시드니에서 살짝 벗어나면 청정 대자연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도 많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울릉공은 평화로운 바다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해안 도로인 그랜드 퍼시픽 드라이브를 따라 울릉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편안하고 가슴을 열어주는 감동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에서 산책길을 따라 산림욕을 즐기고 케이블카를 타고 블루마운틴의 절경을 감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다.

 

하버 크루즈 선상에서 바라본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하우스

 

대부분의 시드니 여행은 오페라하우스에서부터 시작된다. 오페라하우스-로열 보타닉가든-미세스 맥쿼리 포인트-뉴사우스 웨일즈 미술관-시드니 하이드 파크-성 메리 성당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따라가면 시드니의 알짜배기 여행지를 두루두루 살펴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의 하나인 오페라하우스는 음악과 예술, 각종 공연과 사람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범선의 돛이나 오렌지 껍질을 닮은 독특한 디자인과 예술미로 시드니의 상징적인 건축물로 유명하다. 하얗다고 생각했던 오페라하우스는 사실 아이보리색이다. 100만 개가 넘는 유광의 흰색 타일, 무광의 아이보리 타일이 어우러져 구름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빛나는 지붕은 파란 바다와 너무 잘 어우러진다. 근처 바닷가 노천카페에는 많은 여행자들이 황금빛 햇살이 내리쬐는 투명하고 파란 하늘 아래 하버 브리지를 바라보며 시드니의 낭만을 즐기고 있다.

 

 여행자들로 가득 찬 오페라하우스의 노천카페

 

오페라하우스 정면에 있는 시드니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항구 위로 시드니 남부와 북부를 잇는 하버 브리지는 그 아름다움과 기하학적인 아치로 유명하며, 해 질 무렵에는 황금빛으로 물들여져 멋진 야경을 선사한다. 브리지 중간에 있는 철탑 위로 호주 국기와 원주민 기가 나란히 펄럭인다. 

 

4만 년 전부터 이 대륙에서 살던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는 영국 이주민에 의해 살해되거나 이들과 같이 들어온 질병으로 인해 인구의 50%가 병사하고, 원주민을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유아 시절부터 백인가정에 강제로 입양시키거나 집단기숙시설로 보내져 ′인종세탁′까지 당하게 된다. 오늘날 호주는 반성과 개선을 거듭하면서 가장 성공한 다문화국가로 탈바꿈하지만 초창기는 이처럼 악명 높은 인종차별국가였던 것이다.

 

2008년 노동당 당수인 케빈 러드 총리는 국회의사당에 원주민인 에버레지니를 초대하고 자신들의 선대에서 자행된 원주민에 대한 인종차별 행위를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는데, 이날 원주민 대표들을 포옹하면서 6차례나 ″sorry″를 반복한다. 이후 원주민을 배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드디어 2022년 양측 간의 화해와 치유의 의미로 시드니의 상징인 하버 브리지에 호주 국기와 원주민 기가 영구 게양하게 된다. 

 

호주 국기와 원주민 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하버 브리지

 

하버 브리지는 1932년 미국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미국의 뉴딜 정책같이 일자리를 만들어 많은 호주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한 경제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는데, 그래서인지 호주인들은 시드니의 랜드마크는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하버 브리지라고 말한다. 노천카페에 앉아 브리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높이 134m의 철탑에 올라 로프에 의지해 둥근 아치를 따라 걷는 ′브리지 클라임(Bridge Climb)′의 짜릿함을 즐기는 한 무리의 여행자들 모습이 눈에 띈다.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에 있는 왕립식물원인 로열 보타닉가든은 전체 면적이 30㏊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개방헝 식물원이자 호주 내에서 가장 오래된 정원이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시드니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지만 보타닉가든에 들어오는 순간 자연에서 뿜어져 나오는 녹색의 기운을 받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로열 보타닉가든은 18세기 이주민들의 농장이었으나 땅이 비옥하지 않아 식물원으로 조성함으로써 도심 공원이 되었다. 정원 곳곳에 있는 벤치나 의자, 테이블 등에서 가족 또는 친지, 연인, 직장동료 등이 삼삼오오 모여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심 속에서 녹색 에너지를 뿜어내는 로열 보타닉가든

 

로열 보타닉가든 끝에 있는 미세스 맥쿼리 포인트는 5대 총독 맥쿼리의 부인 미세스 맥쿼리가 이곳에 앉아 고향인 영국을 그리워하거나 항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곳이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한눈에 보이는 미세스 맥쿼리 체어는 로맨틱한 시드니의 밤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작은 섬은 과거 독방 전용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근처에는 해군기지가 있다.

 

미세스 맥쿼리 포인트에서 바라본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호주를 혁신적으로 개혁한 맥쿼리는 ′호주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데 그는 형기를 마쳐 자유인이 된 죄수들에게 농지를 무상으로 지급하여 호주에 그대로 머물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도록 했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데도 노력했으며, 1813년에 통화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스페인에서 4만 개의 은화를 수입해서 중앙에 원형으로 구멍을 내 유통시키는데 호주 최초의 독자 주화를 사용하여 금융위기를 극복한다. 맥쿼리의 로고는 호주 최초의 금융혁신이었던 그 주화 모양을 본뜬 것이다. 그래서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맥쾨리자산운용그룹과 시드니의 맥쿼리대학교도 그 이름을 가져다 쓴다. 이렇듯 맥쿼리 총독은 호주를 근대 호주로 변모시킨 사회변화를 이끌었던 인물로 호주의 국부로까지 불린다. 

 

항해를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미세스 맥쿼리 체어 

 

로열 보타닉가든 옆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스주 최대 규모의 주립미술관은 세계 미술사의 한 축인 피카소, 고흐, 모네, 세잔느 등의 작품들을 무려 무료로 볼 수 있던 곳이다. 호주에서 2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이 미술관의 외관은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을 방불케 하는데, 웅장한 내부에는 그림뿐 아니라 조각상, 조형물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외관이 그리스 신전을 닮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미술관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 피카소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누드′ 앞에는 역시 사람들이 모여 있다. 20세기 초현실주의 작가 피카소의 후기 작품으로, 인체의 모양을 해체하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원색으로 표현한 혁신적인 추상화다. 우리에게 귀 잘린 자화상으로 유명한 고흐는 농촌을 사랑하는 화가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출생인 그는 농촌 생활의 고된 삶을 그림에 담으려고 노력한 화가인데, 인물화인 ′농부의 얼굴′은 노동으로 인한 삶의 역경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인내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한편으로 농부의 얼굴에서 매일 같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우리의 삶도 엿볼 수 있는 것 같다. 이어서 모네, 세잔느 등 거장들의 그림을 눈앞에서 가까이에서 보니 신기하고 그저 부럽기 짝이 없다.

 

주립미술관에서 만난 빈센트 반 고흐의 ′농부의 얼굴′

 

시드니 록스(The Rocks)는 식민지 시대 죄수를 수용하던 곳으로 시드니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최초 영국 이민자 정착한 부두 근처의 건축물과 집터를 통해 시드니의 개척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암벽을 폭약으로 발파하고 일일이 손으로 집터를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어 그들의 고단했던 삶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로 자갈로 된 예쁜 골목길을 걸어 다니면 마치 초창기 호주 시드니의 개척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든다. 시드니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한 곳인 퀴(Quay)는 세프의 현란한 손길로 맛과 질감, 성분을 조화시켜 접시 위에서 예술을 만들어낸다. 이 식당의 창문 너머로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록스 거리에 있는 초기 시드니 이주민 주거시설 

 

도시마다 특색 있는 야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또 화려한 밤의 풍경 속에서 여행의 즐거운 감정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사진이든 영상으로든 누구나 한번은 봤을 오페라하우스와 부근 도심의 야경은 정말 매력적이다. 도심의 고층빌딩과 하버 브리지의 불빛이 오페라하우스와 어우러져 최고의 야경을 만들어낸다. 시드니의 명물 오페라하우스는 한 폭의 도화지로 대변신하고 오색빛깔 조명이 만들어내는 화려한 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밀슨스 포인트에서 바라본 시드니 하버의 환상적인 야경

 

밀슨스 포인트는 미세스 맥쿼리 체어와 더불어 시드니 야경명소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오페라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그리고 반짝이는 불빛으로 가득한 도시의 전망이 한 눈에 들어와 야경 감상에 최고 명소다. 밤에 하버 브리지를 건너며 오페라하우스와 시드니항을 내려다보는 야경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노천카페에서 하버 브리지의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

 

더 고요한 야경을 보고 싶다면 근처에 있는 달링하버로 가면 된다. 달링하버는 이름처럼 로맨틱하다. 부두를 따라 늘어선 노천카페, 레스토랑, 바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맥주 한 잔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부둣가를 걷다가 오가다가 맘에 드는 펍(pub)에 자리를 잡고 물 위로 흐르는 야경을 보면서 탭 비어 한 잔을 들이키니 시드니의 밤은 낭만과 함께 더욱 깊어만 간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4.12.09 11:29 수정 2024.12.1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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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