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뉴욕의 골방을 벗어나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가발 장사를 그만두고 뉴욕주 법원행정처 법정통역관으로 취직했다. 밥벌이 걱정을 덜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며 코스미안 사상을 완성시켜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나의 삶은 간결해졌고 명료해졌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사유하는 단순명쾌한 삶으로 세상에 폐를 끼치지 않아도 될 만큼 명쾌해졌다. 욕심을 경계하고 마음을 비우니 단순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열정에 휘둘리지 않아도 될 나이에 접어든 지금, 나는 인내를 인내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숙해지고 있었다. 나의 삶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졌고 사유와 오랜 친구가 되어 앎에 이르는 길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과 삶과 사유가 하나의 몸처럼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자유로운 사유의 여행자가 되었다. 실체가 없는 관념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무한긍정의 에너지가 내 의식의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무한긍정의 에너지로 사유한 나의 사상이 바로 우주적 존재인 코스미안이다. 코스미안은 우주 만물이다. 우주 만물이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코스미안은 우주에게 묻지 않고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다. 하느님에게 묻지 않고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다. 자연에게 묻지 않고 자신에게 묻는 사람이다. 자신이 곧 우주이고 하느님이고 자연이기 때문이다. 코스미안은 우주의 아바타가 아니다. 코스미안은 하느님의 아바타가 아니다. 코스미안은 자연의 아바타가 아니다. 오직 나 자신일 뿐이다. 무지개를 타고 코스모스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코스미안 그 자체일 뿐이다. 코스미안은 살아있는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만물은 사랑이라는 세포로 이루어졌고 사랑이라는 분자로 이루어졌다. 꽃이 피는 것도 사랑이다. 별이 반짝이는 것도 사랑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다. 모든 사랑의 동의어가 코스미안이다. 생명이 코스미안이고 삶이 코스미안이고 인생이 코스미안이다. 코스미안은 저 너머의 영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코스미안은 영원이라는 것에 스스로 발목을 묶지 않는다. 착각과 망상을 제거하는 것이 코스미안이다.
코스미안은 괴로움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코스미안은 즐거움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이다. 즐거움에 치우치면 즐거움이라는 집착에 물들고 괴로움에 빠지면 괴로움이라는 분노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코스미안은 긍정의 마음을 최대치로 만드는 사람이다. 삶도 긍정하고 죽음도 긍정하는 자는 모두 코스미안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우주적 존재가 바로 코스미안이다. 나는 내 인생의 완성을 도와준 그녀들을 불러 한바탕 축제를 열기로 했다.
그녀들은 나의 코스미안들이다. 그녀들은 나의 메시아들이며 사랑으로 수고하는 삶의 고수들이다. 나는 그들에게 ‘코스미안 무차無遮토론’의 초청장을 띄웠다. 코스미안 무차토론장으로 그녀들이 하나둘 속속 도착했다. 첫 번째 그녀, 그리운 어머니가 도착했다. 두 번째 그녀, 아테나도 도착했다. 세 번째 그녀, 진선미도 왔다. 네 번째 그녀, 코스모스도 도착했다. 다섯 번째 그녀, 해심이 오고 여섯 번째 그녀, 유나이티드 킹덤도 도착했으며 일곱 번째 그녀, 세 개의 별도 왔다. 여덟 번째 그녀, 어레인보우도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아홉 번째 그녀 코스미안도 왔다. 그녀들은 둥근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초록별 지구의 아름다움을 감탄하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인 코스미안 그녀들과 이제부터 펼쳐질 우리들의 이야기는 별처럼 영롱하고 해처럼 따뜻한 등불처럼 깜깜한 우주를 비추는 불빛이 되어 우주 구석구석을 비출 것이다.
-나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당신들과 재밌고 신나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아무런 규칙이나 규제 없이 자연스럽게 펼쳐 보기로 합시다.
-아테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
-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어딘가에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은 그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 채 달려가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그렇지요. 목적지가 어딘지 아는 사람은 깨어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깨어있기 위해 코스미안이 되려는 것이지요.
-해심
방향을 잘못 잡았다면 속도는 의미를 가질 수 없지요.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고 강도를 칭찬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코스모스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보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삶은 지옥입니다. 지긋지긋한 지옥이지요. 매일매일이 전투이며 전쟁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지독하게 살 떨리는 도박판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요.
-진선미
코스모스, 당신도 알잖습니까. 돈의 대왕에게 아부하기 위해서지요. 너도나도 돈의 대왕에게 영혼을 팝니다.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습니다. 사는 게 지옥이 아니라 지옥에 살고 있는 겁니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둥근 식탁 위호 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창문의 커튼이 바람을 타고 춤을 추고 그녀들은 때로는 진지한 얼굴로 때로는 재밌는 표정으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도 그녀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재촉하지도 않았다.
-어머니
세상은 싸움터지요. 배가 고파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배가 아파서 싸우는 싸움터지요.
-어레인보우
하하하 배가 아픈 걸 보니 사촌이 땅을 샀군요. 질투는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저급하지만, 질투가 없다면 인간은 발전할 수 없지요. 질투는 욕망의 다른 이름입니다.
-코스미안
사람들은 참 바보입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풉니다. 삶이라는 것을 괜히 무겁게 만듭니다. 끝도 없이 질문을 하고 대답을 찾으려고 안달합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아, 정말 사람들은 바보인가 봅니다.
코스미안 그녀는 사람들이 안 됐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그녀들도 코스미안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머니 그녀는 고요하게 듣고만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안 풀어도 될 문제를 억지로 푸니까 문제입니다. 애초에 문제는 존재하지 않았지요. 삶은 잔치처럼 즐기면 됩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잔치입니다. 자연에는 문제도 없고 답도 없지요. 우리도 자연처럼 자연스럽게 살면 만사가 즐거울 것입니다.
-아테나
자연처럼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항상 일이 일어나는 곳이 인간사입니다. 전쟁의 신인 나를 보면 알지요. 내가 왜 전쟁의 신이 되었을까요. 인간들이 일으키는 전쟁이 없었다면 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쟁과 인간은 쌍둥이처럼 닮은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
인간에게 있어 공존을 대체할 유일한 대안은 공멸뿐이라고 네루는 말했습니다. 힘이 약한 동물이 힘센 동물의 밥이듯이 전쟁도 무질서가 질서로 가는 한 과정일지 모릅니다.
-해심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전쟁 이야기는 그만하고 재밌는 이야기해 봅시다. 우리 한번 솔직해져 봅시다.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왕자로 태어나는 것이지요. 힘들고 고통스럽게 일궈낸 왕 보다 태어나보니 왕자인 것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요.
-어레인보우
왕 보다 왕자……. 창업주 재벌보다 재벌 2세가 훨씬 좋다는 것과 다름없네요. 왕자나 재벌 2세를 싫어할 사람은 없지요. 모두의 로망일지 모릅니다. 자진해서 권력의 노예, 돈의 노예가 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슬프지만 현실입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요.
-유나이티드 킹덤
당신들도 알고 있지요? 영국은 지구 권력의 정점에 서 봤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압니다. 권력과 돈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가를 알지요. 대영제국이 가지고 있는 재산의 많은 부분은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빼앗을 것입니다. 영혼은 순결하길 원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제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이루어져 있지요.
-진선미
약육강식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라 해도 진리는 있습니다.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진리를 찾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지요.
-코스모스
천대받는 창녀도 진리의 다른 모습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의 벗이죠. 창녀는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몸 보시를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남성들을 엄마처럼 품어주는 창녀의 몸 보시는 다른 직업보다 솔직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하지 않지요. 자선적이고 자비롭기까지 합니다. 날강도 같은 정치인이나 부도덕한 종교인들보다 못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코스모스 그녀는 찻잔을 입에 대고 재스민향기를 맡았다. 같은 여성으로서 창녀에 대한 연민이 일어나 그녀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그녀들도 코스모스 그녀의 말에 동조하며 차를 마셨다.
-세 개의 별
저는 사랑은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창녀의 사랑도 생명이고 수녀의 사랑도 생명이지요. 사랑은 지속적이고 완전성을 지닌 유기체지요.
-코스미안
맞습니다. 사랑은 밥입니다. 정신적 밥이지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밥입니다. 나는 이 밥을 배고픈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싶습니다.
-어머니
밥 한 톨에는 땅의 기운과 물의 기운과 불의 기운과 바람의 기운이 다 들어 있지요. 그 기운들을 모아서 농부는 자신의 땀을 보태 키워냅니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우주의 질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다른 생명체들이 나에게 자신의 생명을 보시하는 것이지요. 먹는 자가 있으면 먹히는 자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무한 질서에 대한 깨달음이자 은유입니다.
-나
어머니는 나를 그렇게 키우셨지요. 밥 한 톨의 사랑으로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를 키우셨지요. 이 세상 모든 어머니께 경배드립니다.
-아테나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이 다 경배받을 자격이 있을까요. 당연한 모성은 없습니다. 감성으로 모성을 강요하거나 남용되는 것은 여성에 대한 테러입니다.
-어레인보우
당연한 모성은 없다는 것이 충격적입니다. 모성은 본능인데 본능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전쟁의 신 아테나 여신이여
-아테나
모성이라는 본능으로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하고 또 그 어떤 악조건도 감수하라고 하는 것은 여성들을 미치게 하는 시대에 도달했습니다. 본능적 모성에서 주체적 모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죠.
-해심
모성이 발현되는 것조차 아예 싹을 잘라버리는 여성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결혼을 포기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 시대죠. 여성이라면 모성이라는 본성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요.
-세 개의 별
맞아요. 정말 한 번뿐인 인생을 모성애에 집중할 수 없는 사람도 있죠. 나도 그런 생각입니다. 싱글라이프의 명쾌한 삶을 지향합니다. 그보다는 내 유전자를 끝없이 복사하는 것을 나 스스로 끊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사랑이죠.
-코스모스
모성이 당연하다는 논리는 파시즘입니다. 그런 모성을 벗어나는 순간 내가 감당하고 지킬 수 있는 사회적인 모성이 아닌 주체적인 모성이 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
모성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재밌고 끝이 없네요.
-세 개의 별
아이를 낳지는 않았지만 나는 인간의 번식을 환영하지는 않아요. 나는 무엇일까요? 생각해 보면 나는 조상들이 뿌려 댄 정보 덩어리일 뿐이죠. 정자와 난자의 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서 난 번식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나까지 이어온 유전자 라인을 깔끔하게 끝내고 소풍 나온 지구에서 신나게 재밌게 즐겁게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하하하
-어머니
와,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나요?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당연한 것으로 여긴 여성의 삶이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군요. 무섭기도 하고 새롭기도 합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모성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똑같은 본성입니다. 모성의 당사자는 여성이지만 모성을 받는 주체는 자식이지요. 모성이 없었다면 인류의 진화를 멈춰 섰을 것입니다. 영국왕실의 모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다이애나는 어릴 적 자신을 두고 떠난 어머니로부터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했지요. 그녀의 내면에는 모성의 결핍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코스모스
가엽군요. 그토록 아름답고 성스러운 영국의 자랑인 다이애나에게도 그런 불행이 있었군요.
-유나이티드 킹덤
그뿐인가요. 다이애나보다 12살이나 많은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못했지요. 어린아이처럼 끝없이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갈구했던 찰스는 결국 연상의 여인과 불륜관계를 유지하며 다이애나를 힘들게 했지요.
-진선미
모든 그리움은 어머니로부터 출발하고 어머니에게로 귀의하는 법이죠. 다이애나도 그렇고 찰스 황태자도 그랬을 겁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자식의 가장 안전한 귀의처는 어머니입니다. 다이애나도 그리움도 어머니였고 찰스 황태자의 그리움도 결국은 어머니였습니다. 카밀라 파커볼스는 늘 모성을 그리워한 찰스 황태자에게 엄마와 같은 모성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겠죠. 다이애나의 아들 해리왕자는 단 하루라도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모성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을 내비치고 있지요.
그녀들의 저녁 식탁은 끝없는 대화로 이어졌다. 물론 내가 초대한 그녀들은 실체가 아니라 내가 만든 나의 분신이지만 나는 그녀들이 실존으로 느껴질 만큼 애정이 깊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정신적 동반자였고 그녀들은 나를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나의 내면에서 나와 함께 살아오면서 축적된 정신의 일부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그녀들을 초대해 마지막 이야기에 관한 파티를 하고 싶었다.
-코스모스
어머니,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우리 슬픈 이야기는 그만 접고 다른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해요. 이별은 무엇일까요.
-해심
죽음과 이별은 쌍둥이입니다. 쌍둥이는 늘 항상 붙어 다니지요.
-어머니
때가 되면 꽃이 지듯이 사람도 때가 되면 지게 되어있지요. 하지만 이별은 슬픔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심이 슬픔으로 만든 것이죠. 생각해 보세요. 이별 없이 우주가 돌아갈까요. 태어나기만 하고 죽지 않는다면 우주는 멈추고 말 것입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죽음이라는 이별 때문에 신이 생긴 건 아닐까요.
-세 개의 별
이별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슬픈 감정입니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이별의 슬픔이 얼마나 아픈지 느꼈지요.
-아테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랑할 때 느끼지 못했던 기쁨의 기억을 맛보게 해주니까요.
-진선미
인간은 이별 앞에 가장 순수하게 빛나는 법입니다. 왜냐면 그 어떤 악한 감정도 개입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해심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어레인보우
죽음 앞에선 누구나 평등합니다. 죽음을 비껴갈 사람은 없으니까요.
-어머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나쁜 삶을 두려워하는 것이 낫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삶이란 영혼까지 파괴하는 것이니까요.
-나
젊은 시절 나는 죽음 앞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인위적은 죽음은 정말 나쁜 것이지만 자연적인 죽음은 축복이지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닐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이 전제되면 삶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인간에게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삶이라는 모험을 할 수 있지요.
-유나이티드 킹덤
탄생이 행복이라면 죽음도 행복입니다. 처음과 끝은 같은 것이니까요.
-코스미안
우주가 나고 내가 우주라는 생각 하나만 바꾸면 탄생이 축제이듯이 죽음도 축제입니다. 내가 죽은들 우주인데 무슨 걱정일까요. 내가 산들 그 또한 우주인데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지요. 하하하
나는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왔다. 뉴욕 한인타운 마트에서 사 온 막걸리다. 아주 알맞게 잘 익은 막걸리를 땄다. 시큼한 냄새가 떠나온 고향의 향기 같았다. 오래전에 술을 끊은 나는 오늘만큼은 좀 마시고 싶었다. 나의 그녀들이 둘러앉은 이 저녁 식탁은 내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저녁이던가. 그녀들과 이야기 나누는 이 저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유나이드 킹덤
이번에는 제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인간은 제도 없이 살 수 없을까요?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인간이 만들어 낸 최선의 제도일까요? 인간에게 더 좋은 제도는 없을까요?
-어레인보우
이 지구에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애초에 완벽이란 것은 자연밖에 없지요. 자연만이 완벽한 제도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는 조금 잘 맞는 옷과 같지요.
-해심
인간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은 사실 알몸입니다. 알몸의 상태가 가장 최적화된 옷이지요. 동물이 옷 입는 것 봤습니까? 자연 그대로 사는 생물체들은 모두 태어난 상태로 살아가지요. 그것이 생물체에 부여된 제도지요. 하하하
-코스모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옷이라는 것으로 인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되었지요. 그러니까 옷에 맞는 제도도 필요하게 되었고요. 그 제도가 지금은 민주주의지만 앞으로는 어떤 제도가 나와서 인간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들지 궁금해집니다.
-나
인간은 세 명만 있어도 지도자가 생깁니다. 인간의 본성이지요. 제도는 모여 살기 위한 방편입니다. 모여 살지 않고 혼자 살면 제도가 필요 없습니다. 모여 사는 동물이 인간이기 때문에 도덕이 나오고 윤리가 나오고 질서가 나왔지요. 집단이 공멸하지 않고 생멸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간이 신처럼 완벽하지 않은 한 어떤 제도도 완벽하게 인간을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수명을 다해가는 공산주의를 보면서 민주주의는 안전한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어머니
자연발생적인 그 어떤 제도가 나올지 모릅니다. 이것이 지면 저것이 피고 저것이 지면 이것이 피듯이 말입니다.
-세 개의 별
만약 내가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면 인간의 자유를 완벽하게 보장하는 그런 제도를 만들고 싶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는 존재와도 같은 것이니까요.
-코스미안
인간이 완벽하게 정신적 성숙을 이루는 날이 오면 제도는 필요 없게 될 것입니다. 완벽한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면 도덕이나 윤리가 필요 없게 되지요. 전쟁도 없어질 것이고 분쟁도 당연히 없어지겠지요. 인간이 신이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이런 힘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이지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사랑이 완전하게 발현되면 아무런 제도 없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제도를 구속하는 것이지 제도가 인간을 구속하는 것은 아닙니다.
-코스모스
사랑 이야기를 해볼게요. 남녀 간의 사랑은 순결한 것일까요. 불결한 것일까요.
-해심
사랑을 순결과 불결로 나눌 수 없습니다. 사랑, 그냥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입니다.
-아테나
사랑은 통속적일수록 아름답고 상투적일수록 매력적인 법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머니
남녀 간의 사랑은 몸의 유희지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순결한 놀이입니다.
-코스모스
나도 운명 같은 사랑을 했었지요.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법이지요. 그러나 나는 주는 사랑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어리석은 사랑을 했나 봅니다. 사랑에 눈이 멀어야 그 사람밖에 보이지 않는 법인데…….
-진선미
당신은 사랑에 눈이 멀지 않았군요. 그렇다면 감성보다 이성이 앞섰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사랑은 하나 마나 한 사랑입니다. 하하하 적어도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불같은 사랑을 해야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레인보우
우리들의 로망인 사랑과 영혼의 샘 휘트와 데미 무어처럼 이승과 저승을 잇는 사랑을 해본다면 인간에 관한 지극함을 알 수 있을지 모릅니다. 사랑이란 인간에 대한 앎의 다른 방식이니까요.
-아테나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나는 전쟁의 여신입니다. 전쟁은 사랑을 극대화시킵니다. 전쟁은 인간의 추악성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반면에 사랑이라는 감정의 정점에 이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죠. 목숨과 바꾸는 사랑이 가능한 곳이 전쟁입니다.
-나
인류의 반은 여자고 반은 남자입니다. 반과 반이 만나면 무얼 하겠어요. 바로 사랑놀이로 존재를 확인합니다. 물론 은밀하게 혹은 대담하게…….
-해심
사랑이라는 속성은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 끝에 무지개를 보는 것이 아닐까요.
-나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황홀경이지요. 남자의 몸이 여자의 몸속으로 깊이 들어가 신나는 춤을 추지요. 그 황홀한 춤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아이가 생기게 됩니다. 그 아이는 엄마의 바다에서 열 달을 신나게 놀다가 엄마의 문을 열고 나옵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황홀한 순간에 인간의 탄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존엄한 일인가요.
-진선미
맞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경이로운 존엄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나누는 사랑은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한 여인을 위해 왕위를 버린 윈저공과 두 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 미국 유부녀 심프슨 부인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은 커플입니다. 그들의 사랑은 모든 이들의 로망이죠. 우리는 사랑 앞에 윈저공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아테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장사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는 사랑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코스모스
나는 이제 다시 사랑이 찾아온다면 망설이지 않겠습니다. 예전에 사랑 앞에 망설이다가 사랑했던 사람을 놓친 경험이 있지요.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후에 깨달았습니다.
-유나이티드 킹덤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윈저공이 만인의 로망이라면 왕관의 노예로 구십 평생을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 여왕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권력의 로망일까요?
-나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라는 노예가 되기보다 사랑의 노예가 되는 게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값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왕위까지 버린 윈저공이 나올 수 없지요. 왕위를 버린 사람이 열 명 중 하나라면 왕위를 빼앗으려고 한 사람은 열 명 중 아홉일 것입니다. 아홉보다 하나가 귀하게 마련이지요.
-어레인보우
사랑을 좇는 사람은 사랑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없습니다. 사랑은 무지개와 같습니다. 좇으면 좇을수록 멀리 달아나지요. 무지개를 올라타야 합니다. 무지개를 올라탄 사람만이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세 개의 별
옳습니다. 무지개를 올라타는 사람은 사랑의 승리자가 됩니다. 나는 그 사랑을 실천했지요. 죽음을 앞둔 고든을 사랑한 순간 무지개를 올라탄 것입니다. 그를 보내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었던 것은 영원한 사랑을 완성하는 진실함에 대한 실천이었습니다. 그 실천은 사실 나 자신과 마주하는 혹독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그 순례의 여정이 주는 그 자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사랑은 기적입니다. 우리는 늘 기적을 만나고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다 주는 것이 기적입니다. 따지지 않는 것, 계산하지 않는 것, 비교하지 않는 것, 불신하지 않는 것, 오로지 그 남자를 그 여자를 전부로 여기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 말고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인생 기껏 살아봐야 백 년도 안 됩니다. 천년의 이기심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코스모스
사랑은 무조건입니다. 하하하
-나
태어나지 마라, 죽는 것이 괴롭다. 죽지 마라, 태어나는 것이 괴롭다고 원효가 말했지만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태어나라, 사는 것이 즐겁다. 죽으라, 태어나는 것이 놀랍다. 부처는 희로애락 때문에 괴롭다고 했는데 나는 삶은 희로애락이 있어서 재밌습니다.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있지요.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습니다. 고독을 모르면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내가 평생을 노래한 것이지요.
-코스미안
살아있는 삶 자체가 진정성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먹고 냄새 맡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삶의 노래입니다. 그것 말고는 다 허상입니다. 그래서 무지개를 올라타야 합니다. 무지개를 좇기만 하면 평생 무지개를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 우주도 내가 오감을 가지고 살아서 느끼는 것입니다. 나의 육신이 소멸되고 난 후의 우주는 그냥 우주일 뿐입니다. 삶이 우주고 사랑이 우주고 인생이 우주입니다. 이 아름다운 우주 여행자 코스미안이 되는 것은 살아 있는 이 순간에 가능한 일입니다. 코스미안의 노래처럼 말입니다
소년은 코스모스가 좋았다.
이유도 없이 그냥 좋았다.
소녀의 순정을 뜻하는
꽃인 줄 알게 되면서
청년은 코스모스를
사랑하게 되었다.
철이 들면서 나그네는
코스미안의 길에 올랐다.
카오스의 우주에서
코스모스를 찾아.
그리움에 지쳐
쓰러진 노인은
무심히 뒤를 돌아보고
빙그레 한 번 웃으리라.
걸어 온 발자국마다
무수히 피어난
코스모스를 발견하고.
무지개를 올라탄 코스미안은
더할 수 없이 황홀하리라.
하늘하늘 하늘에서 춤추는
코스모스바다 위로 날아가리라.
더없이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그녀들은 자유의지로 빛나는 완성된 인격체로 내게 와서 끝없는 대화를 이어 주었다. 나는 지구에 와서 행복했고 참 잘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렇다. 그녀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인생은 크고 작은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신나고 짜릿한 롤러코스터 같은 모험이었다. 나는 이 모험을 충분히 즐겼다. 그녀들 덕분이었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들은 시공을 넘어 자신에게로 돌아갔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