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고향은 가곡 가고파의 무대, 어항(漁港) 마산이다. 1980년대 전국 7대 도시 중 하나였던 마산이 창원시에 흡수 통합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건만, 고향을 찾을 때마다 도로 안내판에 적혀있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원시 마산회원구'라는 글자가 아직도 입에 붙지 않은 탓인지 잠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낯선 기분이 든다.
필자가 고향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들리는 곳이 마산 어시장이다. 조선 중기 이후 낙동강 하류 유역의 조공미를 서울로 실어나르는 격납고인 조창(漕倉)이 마산포에 설치되어 항구의 기반이 이루어지면서 어항으로도 발전하기 시작했다. 250년 역사를 지닌 조선의 3대 어시장 중 하나였던 마산은 남해안에서 잡아 온 다양하고 싱싱한 수산물이 넘쳐났다. 지금도 매년 8월 말 ′마산 어시장 축제′가 열리는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처럼 싱싱한 수산물이 흔했던 마산에서 탄생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요리가 바로 마산 아귀찜이다. 따라서 진짜 아귀찜 맛을 보려면 바로 그 맛을 탄생시킨 '아귀찜의 메카' 마산 오동동 아귀찜 거리를 찾아야 한다. 어린 시절, 어시장 근처 오동동 아귀찜 식당 골목에서 사온 아귀찜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려가며 맛있게 먹었던 추억은 겨울날의 흔한 일상이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귀로 만든 매콤달콤한 찜은 입맛을 돋구는 겨울 별미였다. 그래서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이빨밖에는 버릴 것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아귀는 향토 음식으로 서민들에게 사랑받아온 물고기였다.

생선가게 얼음 상자 속에 널브러진 아귀 한 마리
쓸데없이 입만 커서 온몸이 주둥이인
그래, 사람들은 너를 아귀라 부른다
주둥이뿐이라 하지만
작은 지느러미 하나 버릴 것 없어
술안주에 그만인 아귀찜과 물텀벙이 아구탕
- 복효근, '아귀는 나를 아귀라 부른다' 중에서
원래 '아귀(餓鬼)'는 불교에서 나온 용어다. 살아서 탐욕이 많았던 사람이 사후에 굶주림의 형벌을 받아서 되는 귀신을 가리키는데, 입이 크고 흉하게 생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우리말에 음식을 탐하는 사람을 ″걸신(乞神)들렸다″라고 하는데, 이 아귀 귀신은 입이 커 음식을 항상 탐하지만 목구멍이 바늘귀처럼 작아 막상 소화기관에 들어가는 양은 적기 때문에 항상 굶주림에 허덕여 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다고 한다. 쭉 찢어진 큰 입, 어두운 몸 색 때문에 수많은 어류 중에서도 못생긴 물고기로 유명한 데다 자신만큼 큰 물고기도 삼켜버리는 포식성 때문에 그다지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을 지니게 된 것이다.

아귀는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마산과 남도에서는 '아구', 부산에서는 '물곰'의 센 발음인 '물꽁', 인천은 어부들이 못생기고 돈도 안 되는 아귀를 잡자마자 바다에 ″텀벙″ 던져 버렸다고 '물텀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의하면 아귀는 '조사어(釣絲魚)'로 불린다. '조사(釣絲)'는 낚싯줄을 말하는데, 즉, '낚시하는 물고기(Angler Fish)'라는 뜻이다. 아귀 주둥이 끝에는 두 개의 실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작은 물고기가 아귀의 낚싯줄을 무는 순간, 아귀는 줄을 당겨 통째로 삼켜버린다. 아귀는 입이 함지박만큼 커서 어지간한 물고기는 모두 삼킬 수 있다. 세상에 '아구'라는 생선은 없다. 현재 널리 불리는 '아구'라는 말은 이중 모음을 절 구사하지 않는 남도 지방 특유의 사투리로 추측된다.

아귀찜에는 마산 지역의 고단한 삶이 배어 있다. 일제 시절에 일본인 상권이 강했던 이 지역에서는 어획물의 대부분을 일본인에게 수탈당한 후 상품성 없는 남은 생선 중에 아귀가 많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귀를 잡아 온 어부들이 장어국을 끓여 팔던 할머니에게 이 물고기로 안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점액이 끈끈한 아귀를 보고 이런 물고기를 어떻게 먹냐고 하며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버려진 아귀는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제대로 말려지자 할머니는 이 아귀를 북어찜 만드는 방법으로 조리했다. 육질이 쫄깃하고 화끈하게 매운맛의 아귀찜은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고, 오랜 세월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국적으로 명성을 지닌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마산은 '아귀찜의 메카'가 된 것이다.

말린 아귀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비린내가 없다.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난다. 콩나물도 대가리는 따내고 줄기만 넣는다. 마른 아귀의 쫄깃쫄깃한 맛을 죽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생아귀를 쓰는 방식은 인천이 원조라고 한다. 부산의 물꽁찜도 생아귀를 이용해서 찜을 만든다. 생아귀는 물컹하고 약간 푸석하다. 비린내가 많아 온갖 양념으로 이를 없앤다. 생아귀찜의 최대 장점은 아귀 내장의 쫀득쫀득한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른 아귀를 쓰는 마산 아귀찜에서는 기본적으로 내장 맛을 볼 수 없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생아귀찜이 대세인지라 아귀찜 식당들은 거의 다 생아귀로 전환하는 추세인데, 건아귀찜만 팔던 마산 아귀찜 식당들도 소비자 취향에 맞추어 말린 아귀와 생아귀를 거의 반반씩 취급하고 있다.

영양학적으로 아귀는 남녀노소 모든 이들에게 알맞은 식재료다. 단백질이 풍부해 성장 발육에 도움이 되고 비타민A·D·E가 다량 함유돼 눈 건강 관리와 노화 방지에 좋다. 지방과 콜레스테롤은 적고 칼로리가 낮기 때문에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아귀의 간은 진미로 꼽히며 '바다의 푸아그라'로 불린다. 아귀의 간에는 오메가3 지방산인 EPA와 DHA가 일일 권장량의 20배 이상 함유되어 있다. 또한 껍질의 비타민B2와 콜라겐 성분은 피부 미용에도 도움이 된다. 아귀찜에 들어가는 콩나물, 무, 미나리 등의 채소들은 아귀에 부족한 비타민C를 보충해주고 입맛을 돋우어준다.
그런데 요즘은 제대로 된 아귀찜 먹기가 쉽지 않다. 제주도 서귀포와 부산 앞 먼바다에서 잡히는 국내산 아귀는 찾아보기 힘들고 거의 중국산 냉동 아귀로 조리한다. 그나마 아귀는 별로 보이지 않고 콩나물과 미나리로 무친 양념만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비린내 잡으려고 매운 양념을 엄청 넣었는데도 맵기만 하고 비린 맛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눈높이를 낮추어 먹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 먹었던 고향의 소울 푸드, 마산 아귀찜이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前 한국생선회협회 이사
이메일 : yeogb@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