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복잡다단해지다 보니 이런저런 특이한 사회적 이슈들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멍때리기’다. 멍때리기란 한 마디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다.”를 의미하는 속어다. 즉 “정신이 나간 것처럼 한눈을 팔거나, 넋을 놓은 상태”로 ‘멍청이 있기’, ‘넋 놓기’ 등으로 달리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종잡을 수 없는 빠른 변화와 경쟁 사회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체험을 목적으로, 2014년부터 매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정기적으로 멍때리기 대회가 개최되고 있어 이채롭다. 이 같은 멍때리기도 ‘ 좋은 멍때리기’와 ‘나쁜 멍때리기’가 있다. 멍때리기의 좋은 점은 바로 뇌를 쉴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뇌에게 잠시 잠깐의 휴식 시간을 주는 것이다. 멍때리기 시간을 갖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되면서 안 풀리던 일들의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멍때리기는 잠깐 멍청히 있는 까닭에 짧고 단순하며, 교감 신경을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효과도 있다.
반면 나쁜 멍때리기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울, 불안 등의 생각에서 헤어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예를 들어, 누워있는데 갑작스럽게 '흑(黑) 역사'가 떠오르는 경우 등이다. 이 흑 역사 또는 과거의 수치심을 느낀 경험, 안 좋은 기억들이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이다.
나쁜 멍때리기는 계속해서 나쁜 것들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만 계속 소모될 뿐이다. 그 결과 마침내는 자기 연민, 자기 부정 등등, 정신 질환으로까지 발전하기도 한다. 일부 정신과 의사들은 끊임없는 자극이 뇌에 밀려들어 뇌를 피곤하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 ‘멍때리기’는 효과적인 뇌의 휴식 방법이라고 멍때리기를 예찬하기도 한다.
『멍 때려라』의 저자인 신동원 교수는 멍때리기는 효율적인 뇌의 재정비 수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뇌는 휴식을 통해 정보와 경험을 정리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하게 삭제하여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데, 현대인의 머리는 휴식할 시간이 없다.” “신경증적인 불안감이 24시간 SNS에 접속하게 하는 등,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만들고 있지만 정작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데 필수적인 재정비의 시간을 희생시키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현대인들의 뇌는 잠시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정보는 물론 쓸데없는 고민, 걱정거리를 뇌에 한가득 채우게 된다. 그 결과 뇌는 늘 과부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 같은 뇌의 상태를 멍때리기를 통해 필요에 맞게 재정리하고, 불필요한 정보들을 과감히 삭제해, 새로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멍때리기 예찬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스웨덴의 인지신경과학자인 토르켈 클링베리 교수는 사람의 뇌가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정보를 저장하려고 하면 인간의 뇌는 그냥 멍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과잉 정보, 역할 과부하 상태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뇌는 늘 멍해지기 쉬운 조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멍때리기는 여전히 정보를 처리하고자 애쓰는 상태로, “푹 자고 싶다고 했더니, 잠깐 졸아도 된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멍때리기를 예찬하든, 부정하든 현대인들의 뇌가 혹사당하고 있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매일 매일 그 양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자료나 정보, 그리고 이제는 괴물(?)로 변해버린 인터넷, 스마트 폰, SNS 등등…… 이래저래 멍때리기는 과부하로 늘 피곤한 뇌를 쉬게 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특히 요즘처럼 어리석은 한 사람의 불장난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럽고 복잡한 시대에서는 더더욱……
[이윤배]
(현)조선대 컴퓨터공학과 명예교수
조선대학교 정보과학대학 학장
국무총리 청소년위원회 자문위원
호주 태즈메이니아대학교 초청 교수
한국정보처리학회 부회장
이메일 : ybl77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