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이름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코스미안

이태상

미국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대해 ‘구제할 길 없는 야만인들’이라고 하는 다른 백인들과 달리 인종청소 대량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극소수 인디언 어린이들에 대한 자비심과 동정심에서 이들을 서구인화 하려고 애썼던 한 백인이 있었다. 

 

남북전쟁에 참전했던 재향군인 리처드 프라트는 펜실베니아주 카라일에 ‘인디언 아이들을 위한 프라트의 카라일 학교’를 설립, 미국 각지의 인디언 부락에서 아이들을 데려다가 입학시켰다. 이들의 머리를 자르고 서양식 교복을 입혀 세례를 받게 해주었는데 이 가운데 한 아이가 이러한 경험을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난 이제 더 이상 인디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백인의 모조품 같다.”

 

몇 년 전 미국 병원에서 해산한 처조카 며느리를 다른 가족들과 같이 방문했다. 신생아실에 있는 갓난아기를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면서 아이 이름을 지었느냐고 아기 아빠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뜸 ‘조지’라고 한다. 아기 이름은 물론 부모나 조부모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 사는 한인 동포 자녀들과 한국 아이돌이 서양 이름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그런데도 동양인들이 서양 이름을 가지면 어쩐지 타고 난 얼굴 생김새와 이름이 맞지 않아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어색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만 같다. 하긴 해외동포 1.5세나 2세 그리고 서양의 세례명을 가진 한국인은 서양 이름 갖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자연스럽게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일제 강점기 때 태어나 강제로 창씨개명까지 해야 했던 세대는 과잉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겠지만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중국 화교 출신으로 첫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게리 로크(64) 씨가 지난 2014년 3월 1일 퇴임에 앞서 중국 관영 매체의 원색적인 비난을 받았다. 중국 신문은 ‘잘 가시오, 게리 로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그를 ‘썩은 바나나’로 지칭했다. 겉은 노랗고 속이 하얀 바나나는 생김새와 달리 자신을 서양인으로 생각하며 사는 아시아인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이 사설은 ‘바나나는 오랫동안 놔두면 껍질은 썩고 하얀 속살도 까맣게 변한다’며 ‘화교 3세인 로크 대사가 미국 입장만 대변했다’고 비난했다. 

 

이를 같은 동양인의 관점에서 풀이해보자면 인(仁)과 덕(德)을 으뜸으로 삼는 동양의 왕도(王道) 대신 인의(仁義)를 경시하고 무력과 금력을 중시하는 서양의 패도(覇道) 패권주의의 앞잡이 광대라고 조롱한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 아베 총리가 자신을 서양식으로 성을 이름 다음에 넣지 말고 일본식으로 앞에 넣어 달라고 세계 매체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한편 세계적인 음악가로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활약해온 정명화, 정경화, 정명훈 남매들과 방탄소년단 BTS 멤버들처럼 한국인으로서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면 그 얼마나 더 떳떳하고 당당하며 자연스럽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자중자애할 때 비로소 남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으며 존경도 받을 수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답고 자기 자신을 제대로 지킬 때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다.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나 내지 말아야 한다. 자기 고유의 개성과 인격을 버리고 나면 그런 나라나 민족 또는 개인에게는 참다운 ‘외교’나 정정당당하고 대등한 대외관계를 맺을 주권이 없는 셈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남한에 살고 있든 북한에 살고 있든, 아니면 미국에 살고 있던 누구나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옛 페르시아 동화가 생각난다. 곱사등이 꼽추로 태어난 공주가 매일 등이 똑바르게 펴진 자신의 동상 앞에 서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다 보니 동상처럼 똑바로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몽을 꾸고 태교한다. 그리고 태어나서 이름을 짓는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해바라기처럼 평생 해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코스미안이다. 

 

1950년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영국의 석학이며 세계평화주의자 버트런드 러셀이 1966년 설립한 ‘러셀법정’이란 것이 있다. 1980년 11월 로테르담에서 열린 이 러셀법정에선 피해자인 미 대륙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증언을 듣고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인류역사상 가장 심한 박해를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받아왔다. 대량 학살을 비롯해 저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고 저들의 인종적, 경제적, 사회적, 정신적인 인권을 모두 말살당해 왔다.”

 

러셀법정은 정식 법정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 집행력은 없지만, 인간의 양심과 양식에 호소한다. 미국, 캐나다, 브라질, 파나마 등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들이 다 원주민들의 최소한의 생존권과 저들 고유의 신앙을 존중하여 저들을 기독교인으로 강제로 개종시키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1855년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피어스(1804-1869)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디언 추장 씨애틀(1786-1866)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생물은 같은 숨을 쉰다. 짐승, 나무와 풀, 그리고 사람들 자신도 말이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자기들이 들이쉬는 공기를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여러 날을 두고 자리에 누워 앓다 죽는 사람 같이 자신들의 고약한 냄새를 맡지 못하고 있다. 백인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멸종하리라. 어쩌면 다른 인종들보다 앞서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미 대륙의 원주민인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우리 한민족과 같은 몽골족이라고 하지 않나. 이와 비슷하게도 수천 년 동안 터전으로 살아온 땅을 유태인들에게 빼앗긴 중동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억울한 사정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은 물론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을 지지해온 서방 각국을 규탄할 러셀법정이 하루속히 열렸으면 좋으련만…. 

 

실효성은 없지만 러셀법정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는 피부 색깔이 다르고 믿는 종교가 다르다 해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 같은 ‘인간가족’이라는 것이다. 소위 청교도라 불리는 유럽의 앵글로색슨족인 백인 기독교 신자들은 미 대륙으로 건너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땅이라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들의 땅을 뺏어 차지하듯이 유태인들은 중동 팔레스타인에서 살아온 아랍인들을 내쫓고 그곳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도 자칭 기독교인들이 도덕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볼 때 ‘기도교인들만 아니면 우리 모두가 기독교인이 될 텐데’라고 한 간디의 말이 생각난다. 

 

더욱 목불인견인 것은 2차대전 때 독일 나치에게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그들이 지금은 중동에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을 박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이란 선민사상에서 오는 자부심이 처음에는 유태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는지 몰라도 종국에 가서는 다른 민족으로부터 미움을 사서 따돌림을 받게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유태인들이 우리 한국인들에게 좋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리라. 타민족 가운데는 한국인을 동양의 유대인이라 한다지 않나. 우리 자신을 잠시 돌아보자. 한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 떠오른다. 서울평화시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나이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인간선언’이라 부른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세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박탈당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시대, 나는 절대로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어떤 불의도 묵과하지 않고 시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그는 싸웠고 그는 죽어 갔다. 

 

그야말로 2천 년 전 예수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그는 죽기 얼마 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 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그는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주었고, 죽음으로써 참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 나이에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구두닦이를 비롯해 신문팔이, 껌팔이, 우산장사 등등 평화시장 재단사가 되기까지 숱한 밑바닥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스물두 해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하루도 쉬어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성실히 일했건만 일당은 14시간 노동에 그 당시 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되는 50원이었다. 평회시장의 다락방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어린 여공들을 지켜보며,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달한다. 전태일, 그는 온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

 

영원의 축소판이 순간이고 우주만물의 결정체가 모래 한 알,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구름 한 점, 별 하나, 나 하나이듯 그의 이름 그대로 우리 모두 전부 다 크게 보아 같은 하나임을 그의 삶을 불사른 죽음의 불꽃으로 밝혀 보여준 우리 모두의 ‘나’ 전태일의 명복을 빌면서 그의 부활과 재림 환생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노동운동이 필요 없어 사라지는 날까지….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5.05.10 10:38 수정 2025.05.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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