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칼럼, "최고 지도자의 덕목 -최고 지도자론(最高 指導者論)(Ⅳ)-"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범법자도 대통령 출마를 할 수 있는 참 특이한 나라다. 어느 당은 대통령 지명전에서 압도적 선출을 받은 후보를 한밤중에 뒤에서 공작해 짓뭉개 버렸는데, 당원들의 투표로 다시 극적으로 부활해서 후보자가 되었다. 말 그대로 막장 드라마였다. 참으로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 곧 대통령이 될 분이 누구인지를 국민들 모두가 헷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어떠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옛날 희랍 철학자들은 최고 지도자란, 우월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추종자들로부터 차원 높은 사고를 한다고 인정받는 자였다. 하지만 예수님은 지도자를 규정할 때 <섬기는 사람>이라 하였다. 즉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오늘날 <탐욕>과 <명예>를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권>하여 스스로 지도자인 척하는 자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면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일까?


1)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자>이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봉사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했다. 최고 지도자는 집단을 보아야 하지만, 동시에 이웃도 보여야 한다. 특히 소외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해야 된다. 예수님께서 <네 몸처럼>이라 했을 때, 앞의 말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과 연관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웃 사랑을 위선으로 하는 것이 요즘 정치가들 중에 흔하게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 목회자 중에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지만, <김두영> 목사님을 소개하련다. 그는 일제 강점기 때 조병옥 박사와 함께 일본 와세다 대학 법문학과 출신이었다. 그는 일본의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펼쳤으나, 총회의 신사참배 결정에 좌절하고 정치보다는 목회자가 되어 소록도 애양원 교회에서 시무하면서 평생을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더 낮은 곳으로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짜면서 복음을 전한 <사랑의 사도>였다. 이처럼 정치는 구호가 아니고 삶이며, 이웃 사랑의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2) 최고 지도자의 방법은 봉사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기려고 왔다」고 했다. 그는 하늘의 권세를 가졌으나 땅끝까지 낮아지셨다. 봉사란 노예근성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었으나 위엄을 잃지는 않았다. 그는 종이 되었으나 품위가 손상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겸손했으나 비굴하지는 않았다. 예수가 요구하는 봉사는 보통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봉사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는 모범을 보이셨다. 그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그들에게 항상 기억되도록 하셨다. 그의 봉사는 자기희생으로 집약되었다.


똑같은 삶의 태도가 사도 바울에게도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을 종으로 만들었다. 바울은 지도자였으나 스스로 또한 기쁘게 종이 되었다. 그는 자기의 권리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자신을 주기로 선택한 것이다. 위대함은 소유물과도 무관하다. 예수는 몸 둘 장소도 없었다. 또 위대함은 권력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전제주의 곧 공산 독재주의는 강력하기는 하나 독재적인 속박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초월적 지도자는 예속이 아닌 자유를 가져오는 것이다. 위대하게 된다는 것은 섬기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는 것이고, 그의 목적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또 특이한 것은 제자 훈련이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대단하다. 그는 수많은 시간을 제자들과 같이 보내면서 모두가 대표자들이 될 수 있도록 노력했고, 증인이 될 수 있게 했고, 그들의 생애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기초를 건설하려 했다. 그의 가르침에는 항상 일관성이 있었고, 간절히 호소하며, 선포하고, 청하며, 약속하였다. 그의 섬김은 순종을 뜻했지만, 수동적인 것은 아니었다.


3)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인간을 자유케 해야 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좌우명은 갈라디아서 5:1의 말씀이었다.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말씀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박해 속에 있음을 원통하게 생각하고, 평생을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일생을 보내었다. 최고 지도자의 덕목은 사람을 옥죄고 불안하게 하는 지도자가 아닌, 자유와 평안을 주는 지도자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시 대 지도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여 해방과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참 자유를 주신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최고 지도자를 통하여 일하신다. 최고의 민족적 지도자는 구속적(救贖的)인 사람으로서 자기의 이기적 목적을 이루려고 집단을 이용해 먹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해방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 후에 하나님께 백성을 위해 기도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반역의 백성을 멸하고 모세에게 다른 백성을 주시마고 약속했지만, 모세는 배신한 그 백성의 편을 들어 대속(代贖)의 기도를 올렸다. 즉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으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주옵소서!」라고 했다. 즉 모세 자신은 완전히 망가질지라도 민족은 살려야겠다는 것이다.


얼마 후면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모세 같은 지도자, 바울 같은 지도자, 예수님 같은 지도자는 없을까? 이승만의 마지막 기도는 「이 민족을 주께 맡기고 갑니다」였다.

작성 2025.05.14 21:21 수정 2025.05.14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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