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단순한 퍼스트레이디가 아니었다. 재클린, 혹은 '재키'라는 애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 여인은 오늘날까지도 미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대통령 영부인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시대를 상징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내이자, 세계적인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인. 하지만 우리가 이 기사에서 주목하려는 것은 그녀의 우아함이 아닌, 그녀가 발휘한 '유혹의 기술'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로버트 그린의 『유혹의 기술』에 등장하는 유혹자 유형 중 이상형 유혹자(Ideal Lover)에 가장 부합한다. 이상형 유혹자는 상대방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갈망을 감지하고, 그 결핍을 채워주는 방식으로 유혹한다. 재클린은 그 누구보다 상대의 결핍을 채워주는 데 능했고, 그것이 그녀의 전략적 무기였다. 단순한 매력이나 감성이 아니라, 결핍을 파고드는 감정 설계자이자 고요한 판타지를 연기한 유혹자였다.
우아함의 뿌리, 상류층의 영민한 딸
1929년, 뉴욕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재클린은 어린 시절부터 말타기, 프랑스어, 문학, 예술 등 정통 엘리트 교양을 흡수하며 자랐다. 하지만 11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내면을 다지는 시기를 보낸다. 그 시기 그녀는 독서광이 되었고, 똑똑하고 차분한 여성으로 성장한다.
4개 국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보그의 주니어 편집장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그녀는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여성의 전형이었다. 단순히 아름다운 여성이 아니라, '생각하는 여성'으로서 주변을 사로잡았다.
케네디의 마음을 빼앗은 건 미모가 아니었다
워싱턴 타임즈 헤럴드에서 기자로 일하던 재클린은 상원의원이던 존 F. 케네디를 사교파티에서 만나게 된다. 당시 케네디는 수많은 금발미녀들과 어울리던 '플레이보이 정치인'으로 유명했지만, 재클린은 여느 여성들과 달랐다.

그녀는 지적인 대화와 세련된 응대, 그리고 전략적인 거리두기로 케네디에게 자신이 단순한 연인이 아닌, 동반자이자 조력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시킨다. 특히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취재를 핑계로 유럽으로 떠난 '빈자리 전략'은 케네디의 갈망을 극대화시켰고, 결국 그는 전화로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그의 욕망을 정확히 읽고, 그가 원하는 이상형을 완벽히 연기했다.
영부인이 된 유혹자, '재키 스타일'의 탄생
케네디 대통령의 바람기는 여전했지만, 재클린은 무너지는 대신 백악관 복원이라는 역사적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그녀는 미국 디자이너를 고용해 심플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스타일을 창조했고, 바로 그 유명한 '재키 스타일'이 탄생한다.

단순한 미적 감각이 아니었다. 그녀의 장갑은 큰 손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고, 선글라스는 넓은 미간을 가리기 위한 전략적 장식물이었다. 심플한 드레스는 검소한 대통령 부부의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연출이었다.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이미지 전략으로 대중을 유혹했던 것이다.
국가의 상징에서 다시 사적인 여인으로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미국은 충격에 빠졌지만, 재클린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장례를 주도하며 국민적 트라우마를 '의식'으로 승화시킨다. 그녀는 국가적 상실의 순간에도 감정을 절제하며, 존엄을 유지했다. 이 차분함과 강인함 역시, 그녀가 대중을 사로잡는 유혹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삶은 철저히 '사적 선택'의 연속이었다. 로버트 케네디와의 염문설, 배우 폴 뉴먼과의 열애, 그리고 결국 오나시스와의 결혼. 부와 권력을 쥔 남자들과의 관계는 계산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녀는 로맨스마저 전략화할 줄 아는 유혹의 대가였다.
진짜 유혹의 정점은 '회복력'
오나시스 사망 후 소송을 통해 2,600만 달러의 유산을 확보한 그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출판계에 뛰어든다. 'Viking Press'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뉴욕의 문화유산 보호운동에 참여하고, 다이아몬드 상인 모리스 템펠스만과 말년을 함께 보낸다. 이 남자는 그녀의 자산을 네 배로 불려준 조력자이기도 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통제한 여성, 재클린. 그녀의 진짜 유혹은 단지 아름다움이나 지성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갱신하는 회복력에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재클린이 '세기의 유혹자'로 불려야 하는 이유다.
정리하며: 우아함, 그 너머의 전략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전형적인 이상형 유혹자(Ideal Lover)였다. 남성의 욕망을 채우되 자신을 잃지 않고, 대중을 감동시키되 감정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녀의 우아함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되고 다듬어진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지금까지도, 세기를 넘어 많은 이들의 가슴에 잔상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