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 780만 시대, 고독사 급증이 낳은 새로운 직업
2023년, 우리나라 1인 가구 수가 사상 처음으로 780만을 넘어섰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5.5%에 해당하는 782만 9천 가구가 1인 가구로 살고 있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급격한 증가세다.
이러한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또 다른 현실이 우리 사회에 드리워지고 있다. 바로 고독사의 증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독사로 사망한 사람은 2021년 3,378명에서 2022년 3,559명, 2023년 3,661명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숫자 뒤에 감춰진 현실은 더욱 무겁다.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난 이들의 집에는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오래된 사진, 일기장, 작은 물건들... 이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손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품정리사'다.
현재 국내에는 40여 개의 유품정리업체가 운영되고 있으며, 건당 30만원에서 300만원의 비용을 받고 고인의 유품을 수습해 유족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업무량은 1인 가구와 고독사 증가에 비례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단순 청소가 아닌 '마음 정리'까지 책임지는 전문직
"유품정리사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단순한 청소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유품정리사의 업무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전문성을 요구한다. 고독사나 자살, 범죄 현장에서 시신이 수습된 후 그 자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고인이 남긴 수많은 물품들 중에서 유족에게 전달할 소중한 유품을 선별하고, 필요한 경우 폐기물을 적절히 처리해야 한다.
특히 특수청소는 일반적인 청소와는 차원이 다르다. 현장의 상태에 따라 전문적인 약품과 장비를 사용해야 하고, 보건 및 안전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유품정리사와 사건현장 특수청소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민간자격증이 등록되었다. 200건이 넘는 유품정리 현장을 경험한 전문가가 국내 최초로 유품정리사 민간자격증을 등록하면서, 이 직업이 단순한 청소업이 아닌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갖추어가고 있다.
현재 유품정리사들은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현장 청소 기술뿐만 아니라 유족과의 소통 방법, 상담 기법, 심리적 지원 방법 등을 배운다. 고인의 존엄성을 지키면서도 유족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유족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특별한 손길
유품정리사들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마음 정리'일 것이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대부분 큰 충격과 슬픔에 빠져있다. 특히 고독사의 경우 죄책감과 자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왜 더 자주 연락하지 않았을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런 감정들 속에서 유족들은 고인의 방을 정리하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이때 유품정리사들이 단순히 물건을 치우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삶을 존중하고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품정리사들은 고인의 물건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살펴본다. 작은 메모지에 적힌 글씨, 서랍 깊숙이 숨겨둔 편지, 지갑 속 낡은 사진... 이런 것들이 유족에게는 마지막 추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고인이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이 담긴 물건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실제로 한 유품정리사는 "고인의 책상 서랍에서 가족들에게 보내려다 미뤄둔 편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는데, 그 편지를 받은 가족들이 큰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유족들과의 대화를 통해 고인의 마지막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전문적인 상담사는 아니지만,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인 공감 능력으로 유족들의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한다.
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할 미래
1인 가구 780만 시대, 이는 더 이상 개인의 선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의 변화이자 우리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속에서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생겨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단순히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유품정리사들은 말한다.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면서 가장 마음 아픈 것은 고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그들의 일은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외로움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 1인 가구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고독사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직업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로를 돌보고, 외로움을 나누며, 마지막까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말이다.
홀로 떠나는 시대, 마지막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삶과 죽음, 그리고 함께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작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마무리가 필요하다." - 어느 유품정리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