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으로 키워낸 매실과 매화, 그리고 잃어버린 ‘나’를 되찾은 이야기

광양매화 농장에 깃든 아버지의 숨결… 수도매화농장의 기적

아버지의 마지막 흔적 위에 피어난 새 삶, 수도매화농장의 부활

도시를 버리고 광양으로… 번아웃에서 치유자로 변한 한 여성의 여정

“슬픔은 한 사람을 쓰러뜨리지만, 사랑은 그를 다시 일으킨다.”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봄이면 온 마을이 매화로 뒤덮이는 이 고장, 그 중심에 조용히 피어난 한 기적의 농장이 있다. 수도매화농장. 이름만큼이나 단단한 결심과 맑은 철학으로 일구어진 이곳은, 단순한 농장을 넘어 한 여성의 ‘회복’과 ‘재생’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이 농장의 주인(조명정 농부)은 과거 어린이집 원장이었던 여성이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했던 도시 한복판의 어린이집을 정리하고, 아버지가 남기신 땅을 지키기 위해 홀로 광양으로 내려온 그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딱 1년째 되는 날, 그녀는 지막길 81번지, 버려진 매화나무들 사이로 첫발을 들였다.

 

“아버지의 손길이 남아 있는 집… 나를 부르는 듯했어요”
“정말 무작정 내려왔어요. 처음엔 슬픔 때문이었고, 그 다음엔 책임감이었죠.”

그녀는 수도매화농장의 현재 주인. 하지만 이 농장은 원래 그녀의 아버지가 직접 설계하고 짓고, 손수 가꾼 곳이었다. 정원처럼 정돈된 매화나무, 돌 하나, 벽돌 하나에도 아버지의 손길이 스며 있었다.

 

“살아계실 때 많이 외로우셨을 거예요. 돌아가시고도, 그 외로움 속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녀는 어린이집 원장으로서의 커리어를 내려놓았다. 번아웃에 지친 상태였지만, 1년 동안은 매주 왕복 700km가 넘는 거리를 오르내리기를 반복, 가끔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버지를 만나러 온다는 생각으로 그녀는 즐거웠고, 아버지의 흔적이 있는 이 땅이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강렬한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매실수확 경험 하나로 시작한 농장 생활, 매일이 전쟁 같았죠”
“도시에서의 삶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여자의 몸으로 혼자서 농장에서 산다는 것, 그건 상상 이상이었어요.”

밤이 되면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산속의 고요는 때론 위로가 아니라 공포였다.


비는 가렸지만, 새가 날아드는 지붕, 군데군데 벌레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이 집, 아버지가 집을 지으면서 남겨놓은 자잘한 공구부터 농기계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녀가 아는 농사는 겨우 매실수확이 전부였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를 저버리는 일이기도 했고, 동시에 자신을 버리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힘들기만 했지만… 하나하나 스스로 해나가니까 ‘재밌다’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게 저를 살렸어요.

 

“수도매화농장만의 향기… 정직함이 만든 진짜 맛”
그녀의 농장은 광양에서도 매실 맛으로 유명한 곳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광양매실이 원래 좋지만, 저희 매실은 특별히 향이 깊어요. 정직하게 키워서 그래요. 아버지처럼요.”

 

매실뿐만 아니다. 봄이면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몇 그루 안되는 매화나무이지만, 아버지께서 예쁘게 가꾸어 놓은 매화나무가 아치형으로 농장을 정원처럼 감싸고, 매화축제 시즌이 되면 사진작가들과 여행객들이 발길을 멈추는 명소가 되었다. 게다가 ‘시골살이 체험’과 ‘시골민박’, ‘매실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하면서 농촌형 6차산업 모델로 확장 중이다.

 

“누군가 여기에 와서 쉼을 얻고, 나처럼 살아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기쁠 것 같아요.”
“이 농장이 저를 살렸어요. 이제는 제가 이 농장으로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요”

 

어느 날, 도시에서 함께하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지인들이 농장 체험을 신청했다. 처음에는 그녀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인가 보러왔다가 섬진강뷰와 수도매화농장의 매화를 보면서 무엇인지 모르지만, 정말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꼈다고 했다.

 

또 한번은 도시에서 한 부부가 농장 체험을 통하여, 고된 일상에 지쳐 서로의 대화도 줄었던 그들은, 수도매화농장에서 함께 땀 흘리고 매실 따며 ‘웃는 법’을 다시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울었다.

 

“그게 제가 여기에 있는 이유예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여기에 와서 다시 살아나면 좋겠어요. 이곳은 치유의 공간이에요.”

“정직하고 청렴하게, 자식 키우듯 농사를 짓자”


아버지에게 배운 단 한 가지 철학. “정직하라, 그리고 성실하라.”
조명정 농부는 이 철학을 매실나무에게도, 민박 손님에게도, 체험학습을 오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실천하고 있다. 매실 하나, 대봉감 하나에도 정성과 사려가 깃들어야 진짜 건강한 먹거리가 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던 마음으로 땅을 돌보고 있어요. 그게 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이에요.”

 

수도매화농장, 그곳은 단순한 ‘농장’이 아니다
광양의 한 귀퉁이에서 벌어진 이 조용한 기적은, 누군가에게는 단지 농장의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사랑과 치유, 그리고 인간의 회복력에 대한 찬사이다. 이곳은 아버지의 철학과 사랑이 살아 있는 땅, 동시에 한 여성의 삶이 되살아난 치유의 장이다.

 

“당신도 지쳤다면, 수도매화농장으로 오세요. 여긴 누군가의 인생이 다시 시작된 곳이에요.”

 

 

작성 2025.06.05 15:12 수정 2025.06.05 15:14

RSS피드 기사제공처 : 농업경영교육신문 / 등록기자: 김선주 수석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