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끝났다고 말하지 마라. 아직 전쟁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 사회를 향한 일침 같다. 현충일은 전사자들을 기리는 날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희생 위에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는 하루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날을 기억하는 방식은 여전히 우리의 현재 태도를 비춘다.
우리는 매년 6월 6일, 정오에 사이렌 소리와 함께 잠시 묵념을 한다. 그 몇 분간의 정적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역사와 희생을 어떻게 대면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러나 그 정적 이후, 일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했던 기억의 방식일까?
현충일은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기억하는 날이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 누군가가 총탄 앞에 서지 않도록, 공동체가 매년 그 상처를 쓰다듬고 되새겨야 하는 날이다.
기억되지 않는 전쟁, 반복되는 침묵
한국전쟁은 끝난 전쟁이 아니다. 정전(停戰)일 뿐, 종전(終戰)이 아니다. 이는 법률적 사실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 전쟁을 ‘미완의 기억’으로 남겨두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학생들은 교과서에서 한국전쟁을 배우지만, 그 전쟁이 어떤 참상을 낳았고, 누가 왜 목숨을 잃었는지는 모르고 자란다. 그 결과, 전쟁은 단지 기억 속의 사건이 아닌 배제된 기억, 무의식적인 망각의 상징이 되고 만다.
기억되지 않은 전쟁은, 대중에게 잊히고, 대중에게 잊힌 전쟁은 그 참혹함을 경계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매년 현충일을 기념해야 하는 이유이자, ‘기억의 침묵’이 가장 위험한 이유다.
기억의 윤리와 공동체의 책임
누군가의 죽음을 기리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의 윤리이자, 책임의 이행이다. 이 윤리를 잊을 때, 사회는 쉽게 과거를 무시하고, 과거를 무시하는 사회는 자신도 쉽게 잊힌다.
현충일은 국가가 시민에게 묻는 날이다. “당신은 이 사회가 무엇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이다. 우리는 답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공휴일'로 소모하고 있는가?
독일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기억의 문화(Kultur des Erinnerns)'를 사회적으로 실천한다. 광장의 이름을 바꾸고, 거리 곳곳에 추모비를 세우며 기억의 윤리를 실천하는 법을 끊임없이 찾는다. 우리에겐 그런 모습이 있는가? 아니면 현충일을 한낱 ‘묵념 이벤트’로 전락시키고 있는가?
현충일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이 날은 우리의 태도와 정체성을 확인받는 날이다. 우리가 얼마나 집단적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 기억을 통해 어떤 행동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묻는다.
‘기념’은 과거를 고정된 형태로 남기는 것이지만, ‘경고’는 현재를 바꾸는 힘이다. 현충일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아닌, 그런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하는 데 너희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국가도, 사회도, 결국 그 이름에 합당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충분히 기억하고 있는가?
현충일은 이제 우리에게 묻는다. “그날을 정말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점점 더 빠르게 일상을 소비하고, 더 자주 과거를 망각한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다수인 시대에, 전쟁을 기억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중요해진다.
기억은 의무이고, 망각은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너무 쉽게 다음 전쟁의 문을 열 수 있다.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잠깐의 묵념이 아니라, 매일의 기억을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