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공정책신문=김유리 기자] 최근 우리 사회는 경제적 성장과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생명경시 풍조'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는 우리 모두의 아픔이자 반드시 극복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약칭: 생명윤리법) 제1조가 명시하듯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생명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고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여전히 자살과 생명 경시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공약
이재명 대통령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자살예방과 생명존중을 국가적 의제로 삼는 강력한 정책을 제시했다. 대통령실 내 자살예방수석비서관 신설과 대통령 직속 자살예방부서 설치를 공약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총력 대응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특히 지자체별로 자살 고위험군을 집중 관리하고, 자살예방심리상담사를 통한 지역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은 현장 중심의 실효적 접근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와 더불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사회적 재난·범죄로부터의 보호, 필수의료 강화, 정신건강검진 주기 단축 등 생명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공약에 포함되었다. 2025년부터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정신건강검진을 2년 주기로 확대하고, 생명존중안심마을 조성, 자살유발정보 24시간 모니터링, 자살시도자 및 유족 지원 강화 등 구체적 실행방안도 마련되었다.
생명경시 풍조의 원인과 생명윤리법의 한계
전통사회에서는 생명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존중되었으나, 현대사회에서는 가족·공동체의 해체, 경쟁과 소외, 정신적 고립 등으로 인해 생명의 의미가 약화되고 있다. 이는 청소년, 노인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은 인간대상연구, 배아연구, 유전자치료 등 생명과학 분야의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작 일반 국민의 생명존중 의식 함양이나 자살예방에 대한 직접적 규정은 미흡한 상황이다. 법률 제3조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하여서는 아니 되며, 연구대상자등의 인권과 복지는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주로 연구윤리에 국한되어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우울감과 고립감이 심화되었고,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어 생명 경시 풍조가 더욱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의 경우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극단적 선택을 고려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현행 생명 관련 정책의 문제점과 법제적 공백
정부는 자살예방기본계획을 통해 생명안전망 강화, 정신건강 조기진단, 자살유발환경 관리, 자살시도자 및 유족 지원 등 5대 전략과 92개 세부과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책 집행의 현장에서는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먼저 법제적 측면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별도로 운영되면서 생명존중 정책의 통합성이 부족하다. 특히 생명윤리법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제7조)는 주로 생명과학 연구의 윤리성 심의에 집중되어 있어, 일반 국민의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
둘째, 부처 간 역할 중복 및 소통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여러 부처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생명윤리법 제5조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부처별 분산 추진으로 시너지 효과가 미흡하다.
셋째, 예산의 한계와 일회성 사업 위주 편성으로 인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지역 간 서비스 격차가 크고, 현장 전문가 및 상담 인력이 부족하여 실제 위기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위기군 발굴 및 사후관리의 미흡함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자살시도자의 재시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사후관리 시스템이 부재하고,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굴할 수 있는 시스템도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
정책 대안과 법제 개선 방향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대통령 직속 자살예방부서 설치와 함께,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통해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명문화해야 한다. 현재 생명윤리법 제6조의 생명윤리정책연구센터의 기능을 확대하여 일반 국민 대상의 생명존중 교육과 문화 확산 업무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적 생명존중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생명윤리법 제10조에 따른 기관생명윤리위원회의 역할을 확대하여 의료기관, 교육기관, 복지시설, 종교단체,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지역 단위의 협력체계를 마련하여 위기 상황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AI·빅데이터를 활용한 위기군 조기발굴 및 맞춤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생명윤리법 제46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유전정보에 의한 차별을 방지하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전제로 한 통합적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살 고위험군을 사전에 파악하고 맞춤형 지원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넷째, 정신건강, 복지, 교육, 노동 등 유관 부처 협업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생명윤리법 제9조에 따른 국가위원회에 자살예방 관련 전문위원회를 신설하여 부처별로 단편적으로 추진되던 사업들을 연계하고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지속가능한 예산 확보와 현장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생명윤리법 제60조에 따른 국고 보조 규정을 활용하여 생명존중 정책에 대한 안정적인 예산 지원과 전문 인력 양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섯째, 자살예방 교육을 학교·직장·지역사회 전면으로 확대해야 한다. 생명윤리법 제5조제3항에서 규정한 "각급 교육기관 등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대한 교육"을 자살예방 교육으로 확대하여 생명존중 의식이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과 제언
필자는 서울특별시의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서울특별시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조례」의 제정과 심사에 직접 참여해왔다. 이를 통해 현장 정책의 한계와 개선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조례 제정 과정에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과의 정합성을 검토하면서, 현행 법률이 주로 연구윤리에 집중되어 있어 일반 국민의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또한 서울특별시 출산양육후원협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생명 탄생의 소중함과 출산·양육 지원 정책의 중요성을 실감한 바 있다. 생명윤리법 제23조에서 "임신 외의 목적으로 배아를 생성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듯이, 정책도 생명의 탄생부터 임종까지 전 생애에 걸친 존엄성 보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명존중 정책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엇보다 현행 생명윤리법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일반 국민의 삶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맺음말
생명존중 사회는 단순히 자살예방 정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서로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 전체가 안전망이 되어주는 문화적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지속성과 일관성이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제시하는 생명윤리의 기본 원칙을 자살예방 정책에도 적용하여, 정권이 바뀌어도 생명존중 정책은 계속 추진되어야 하며, 단기적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현행 생명윤리법이 주로 연구윤리에 집중되어 있는 한계를 넘어, 일반 국민의 생명존중 문화 확산을 위한 법제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주도의 하향식 정책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상향식 접근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 실질적 변화로 이어져, 대한민국이 더 이상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진정한 생명존중 공동체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생명윤리법 제1조가 추구하는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이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구현되기를 바란다.
박동명 / 법학박사
∙ 한국공공정책학회 상임이사
∙ 전)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 전문위원
∙ 전)국민대학교 행정대학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