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이와 숙제는 지난날의 나빴던 일을 생각하지 않았고, 원망하는 일이 드물었다(不念舊惡, 怨是用希).” 이는 『논어』 공야장 편에서 공자가 언급한 말로, ‘불념구악’이라는 정신으로 요약됩니다. 쉽게 말하면, 과거의 잘못이나 원한에 집착하지 않고 용서와 관용의 마음으로 관계를 이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상은 비단 인간관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조직 경영과 기업 문화에 적용될 때, 놀라운 전환과 성장이 가능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기업들은 이 고대의 철학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실패를 자산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 미국 '버퍼(Buffer)'
미국의 스타트업 버퍼(Buffer)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소셜미디어 계정을 한 번에 관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회사는 직원의 실수나 프로젝트 실패에 대해 징계보다는 대화를 선택합니다.
실제로 버퍼는 사내에서 발생한 실수, 인사평가, 심지어 급여 정보까지도 외부에 공개합니다. 버퍼의 CEO 조엘 가스코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회사를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실수와 그 과정을 공유하며 배우는 문화를 만듭니다.”
실수를 ‘비밀’로 다루지 않고 ‘공공의 학습 자산’으로 승화시킨 버퍼는, 직원 충성도와 고객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며 스타트업의 롤모델로 성장했습니다. 이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 경영’이 어떻게 경쟁력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고객 신뢰는 정직에서 – 덴마크 ‘콜루플랜트(Koloplast)’
덴마크의 콜루플랜트(Koloplast)는 요루 및 장루 환자들을 위한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입니다. 이 회사는 한때 제품 결함으로 인해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으며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 상황에서 침묵하거나 책임을 축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콜루플랜트는 자발적으로 문제를 공개하고, 고객에게 사과하며 철저한 보상 절차를 운영했습니다. 심지어 해당 사례를 내부 교육자료로 만들어 신입 직원에게 공유하며, 과거의 실수를 감추지 않고 기억하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현재 콜루플랜트는 유럽에서 가장 신뢰받는 의료기기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힙니다.
실수도 콘텐츠가 된다 – 국내 스타트업 ‘아티젠(ArtiZen)’
서울에 본사를 둔 문화기술 스타트업 ‘아티젠(ArtiZen)’은 디자인 콘텐츠와 디지털 아카이빙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입니다. 창업 초기,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계약 해석 문제로 인해 취소되며 심각한 이미지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아티젠은 사건의 경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피해를 본 파트너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직접 사과와 보상 절차를 주도했습니다.
이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계약의 함정’이라는 주제로 내부 교육 콘텐츠를 제작했고, 해당 콘텐츠는 오히려 신뢰 기반 교육 서비스로 발전해 수익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티젠의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공유함으로써, 우리는 신뢰를 얻었고, 그 경험이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리더, 사람이 남는 조직
불념구악은 단순히 과거를 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수나 갈등을 인정하되, 그것을 관계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기업들은 과거의 실수를 끌어안고, 사람을 중심에 둔 경영으로 전환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실수를 저지른 구성원을 용서하고, 실패를 숨기지 않으며, 정직하게 사과하고 나아가는 용기. 그것이 오늘날 기업이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과 신뢰(Trust) 를 동시에 확보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