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은 있는데, 배울 곳이 없다: 사각지대의 디지털 교육 현실

1. 디지털 문명의 진입 장벽, 어디서부터 무너져야 할까
“와이파이도 터지는데, 왜 배우질 못하죠?”
한 시골 마을 회관에서 들은 이 한마디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디지털 교육 현실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지만, ‘디지털 역량’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기술 인프라는 확충됐지만,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 기회는 지역이나 연령에 따라 극명한 격차를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문제를 한층 부각시켰다. 온라인 수업과 재택 근무, 비대면 행정 처리가 일상이 되었지만, ‘디지털 기기 앞에서 멈춰 선 사람들’도 함께 늘어났다.
특히 고령층과 정보 취약계층은 온라인 정보를 접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교육조차 받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내몰렸다. 단순한 기기 사용법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디지털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기술 문명의 주변에만 머무르고 있다.
디지털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도구다. 하지만 이 생존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인터넷이 있다’는 것은 도로가 뚫렸다는 의미일 뿐, 거기에 차를 운전할 수 있는 면허와 지식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로는 있는데 차를 몰 줄 모르는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2. 지역 간 정보 격차,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전국적으로 기가 인터넷망을 구축하고, 디지털 전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디지털 교육을 제공하는 실질적 거점은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편중돼 있다. 읍면 단위에서 운영되는 ‘정보화교육장’은 많아야 주 1회, 그것도 강사가 부족해 수시로 취소되기 일쑤다.
특히 고령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이러한 디지털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공공 서비스의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주민등록등본 발급조차 무인 발급기나 모바일 정부24 앱을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등 고립이 현실화되고 있다. ‘기계를 대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행정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점점 더 늘고 있다.
한편 청소년 역시 예외는 아니다. 도시의 학생들이 코딩 교육과 스마트러닝 환경을 통해 미래형 역량을 키우고 있을 때, 농어촌 학교의 학생들은 여전히 노후화된 컴퓨터 교실과 느린 인터넷 속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회 불균형이 아니라, 세대 간·지역 간 ‘디지털 격차’라는 구조적 불균형을 의미한다.
지역 간 정보격차는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의 문제이며, 기회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교육 인프라의 문제다. ‘디지털 사회’는 모두를 향해야 하며, 특정 계층만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비대면 교육’이 품지 못한 사람들
비대면 교육은 혁신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배제를 양산하고 있다. 줌(Zoom), 구글 클래스룸, 유튜브 강의 등은 교육의 문턱을 낮췄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턱’을 만들었다.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다.
많은 노년층은 스마트폰 사용에는 익숙해졌지만, 앱 설치나 계정 로그인, 수업자료 다운로드와 같은 기본적인 디지털 활용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교육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가 있어도, 그것을 검색하고 찾아보는 법을 모르면 무용지물이다.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하드웨어의 소유 유무가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다.
뿐만 아니다. 장애인, 다문화 가정, 저소득층 등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계층은 교육 플랫폼 자체에 진입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시스템이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 등 보조 기술이 미비한 경우도 여전하다.
디지털 시대의 교육은 단지 ‘디지털로 하는 교육’이 아니라, ‘디지털을 배워야 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육은,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지금의 비대면 교육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며, 교육은 점점 더 ‘디지털이 낯선 사람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4. 디지털 교육 불균형, 구조적 처방이 필요하다
디지털 교육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강좌 개설이나 단발성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맞춤형 교육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 배움’ 사업은 출발점일 수 있지만, 아직은 확산 속도와 실효성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첫째, 디지털 교육은 단순한 기초 교육을 넘어서야 한다. 워드, 엑셀, 스마트폰 사용법을 넘어서, 일상 생활에서 디지털을 활용하는 다양한 사례 중심의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바일로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 공공기관 앱을 활용해 민원 서비스를 이용하는 법 등을 실생활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
둘째, 교육 전달 방식에서도 혁신이 필요하다.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능 강화, 다국어 콘텐츠 제공, 문자 대신 이미지 중심의 가이드 개발 등 다양한 계층의 접근성을 고려한 콘텐츠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
셋째, 교육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운영되는 마을 단위 순회 교육, 실버 세대를 위한 디지털 멘토링 프로그램, 학교와 지역사회가 연계된 청소년 디지털 교육 등이 제도화 되어야 한다. 특히 청년층이 고령층에게 디지털을 가르치는 ‘세대 연계형 교육 모델’은 양측의 인식 개선과 세대 간 소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누구를 위한 디지털 사회인가
디지털은 중립적이다. 하지만 그 디지털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디지털 사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인터넷이 있다”는 사실은 가능성의 시작일 뿐,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힘은 ‘교육’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 가능성 앞에서 멈춰 서 있다.
디지털 시대를 진정한 ‘모두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 중심의 교육과 정책이 필요하다. ‘인터넷은 있는데, 배울 곳이 없다’는 절망이 아니라, ‘인터넷이 있으니, 언제든 배울 수 있다’는 희망의 말이 들려오길 바란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변화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