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서 칼럼] 잃어버린 우리 교육의 이름

이진서

“선생님, 한자 좋아하세요? 친중파세요?”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나요.”

“돈 많이 버는 게 인생 목표인데, 왜요?”

“10억만 주면 감옥 가도 돼요.”

 

아이들은 이제 교실에서도 서슴지 않고 이런 말들을 내뱉는다. 물론 이것이 모든 학생들의 보편적 태도는 아니다. 그러나 더 이상 ‘소수의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세계관의 분화가 아이들 속에서 분명히 감지되고 있다. 그 일부는 ‘극우화된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벌 서열주의, 인종 및 젠더 혐오, 반공 정서의 무비판적 수용, 물신주의와 정치혐오가 결합된 세계관은 더 이상 사소하거나 일시적 일탈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러한 세계관은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존재론적 태도이다. 시험능력주의, 가짜뉴스, 유튜브 알고리즘, 물신주의, 재미지상주의 등 우리 사회가 청소년에게 심어준 감정의 프레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진 결과다. 

 

‘불법체류자는 내쫓아야 한다’, ‘공산주의는 악마다’, ‘여성 인권은 너무 올라갔다’, ‘정치적 올바름은 위선이다’라고 말하는 아이들, 이들은 의도된 선동의 피해자라기 보다는 감응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서 냉소와 우월감으로 무장한 존재로 어른들에 의해 길러졌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는 위험한 수준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학교는 침묵하고, 교사들은 체념하며, 부모들은 회피한다. "요란한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를 지배한다"는 말은 지금 한국의 교실 풍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진단일지 모른다.

 

공교육은 이미 오래전부터 ‘윤리 없는 교육’에 길들어 왔다. 공부의 목적은 인격의 완성이 아니라 입시이며 삶의 목표는 오로지 연봉이었다. 인간보다 경쟁이, 성찰보다 성적이 우선인 교육 시스템 속에서 비윤리적 성공주의는 청소년의 감정까지 오염시키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실패는, 윤리를 삶의 언어로 경험시키지 못한 것이다.

 

 

1. 공교육의 과제 – 감응과 윤리의 교육

 

무엇보다 공교육은 이제 ‘지식의 수단화’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왜 나는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가",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교육의 목적 자체가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윤리·문학 수업의 대개편이 시급하다. 단순히 정답을 맞히기 위한 암기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이 흔들리는 경험, 즉 자기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수업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교사가 있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의 감정과 윤리를 조율하고 사회적 감수성을 확장시켜주는 안내자여야 한다. 따라서 교사들을 위한 시민교육 강화와 재교육 제도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교사 스스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언어 감수성, 감정에 대한 윤리적 태도를 점검하고 갱신할 수 있어야만 교실이라는 공간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

 

 

2. 제도 밖 교육의 가능성 – 감응의 인문교육

 

공교육이 담지 못하는 삶의 결은 제도 밖 교육에서 보완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학교 밖에서 더욱 날것의 감정과 정보를 접하며 세계관을 구성하고 있다. 그렇기에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감응적 인문교육이 필요하다. 예컨대 ‘청소년비평학교’나 ‘청소년이순신학교’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혐오와 분노의 뿌리를 탐색하고 자기감정을 성찰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디지털 환경 속에서 유튜브 알고리즘과 자극적 콘텐츠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적 콘텐츠 제작 역시 절실하다. ‘감응의 언어’로 무장된 문화 콘텐츠는 단지 정보 제공을 넘어서 청소년이 자기감정과 사회 현실을 연결 짓는 훈련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단발성 강의나 계몽적 캠페인을 넘어 감응적 글쓰기와 토론 중심의 프로그램이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다룰 때도 ‘정답’이나 ‘논쟁’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에서 접근하고 서로의 감각을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다른 생각’이 ‘적대’가 아닌 ‘공존’을 위한 재료가 될 수 있다.

 

 

3. 비제도권의 장기 전략 – 생애 시민교육

 

이러한 교육은 일회적이어서는 안 된다. 청소년기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시민교육 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교사, 부모, 청년, 시민 모두가 함께 감응의 윤리를 배우고 실천하는 교육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대 간에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윤리 언어가 필요하다. ‘분노보다 성찰’, ‘혐오보다 감응’이라는 원칙은 단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위기 사회에서 생존을 가능케 하는 감정적 방역체계가 되어야 한다. 세대와 이념, 지역과 계층을 넘어 감정의 언어를 훈련하고 윤리의 감각을 확장하는 생애 시민교육,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다음 시대의 교육이다.

 

“아이들은 모두의 스승”이라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허용해 온 사회적 가치가 지금 청소년의 말투와 욕망, 혐오와 냉소로 되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는 묻고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사회를 보여주었는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말해왔는가.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교육의 지각변동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단지 교과목을 줄이거나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의 존재 이유 자체를 다시 묻는 혁신이 필요하다. 교육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사회개혁도 무용지물일 수 있다. 새로운 교육은 정보보다 감응을, 정답보다 성찰을, 경쟁보다 공동체를 이야기해야 한다.

 

더 이상 미뤄져선 안 된다. 감응하는 시민을 길러내는 윤리적 상상력의 교육 혁명이 절실하다.

 

 

[이진서]

고석규비평문학관 관장

제6회 코스미안상 수상

lsblyb@naver.com

 

작성 2025.07.08 10:30 수정 2025.07.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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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