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이란 무엇이고 또 ‘우주’란 무엇일까? 이런 의문 자체가 하릴없는 백일몽 잠꼬대이겠지만 그래도 이 영원한 수수께끼에 대한 궁금증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생물학자들은 생물과 무생물의 차이를 세 가지 특징으로 구분한다. 그 첫째는 성장과 발육이고 둘째는 생식과 번식이며 셋째는 에너지 소모와 소비다. 그렇다면 동, 식물은 생명체로 구분되겠지만 광물질은 어떤가. 예를 들어 크리스탈 수정도 성장하고 번식하며 에너지를 소모한다지 않나.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원소는 탄소인데 디옥시리보 핵산 DNA과 리보 핵산 RNA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반세기 간 자연과학의 상대적인 두 분야가 역사적인 과도기를 거친 후 ‘표준 모델’이라 불리는 이론을 같이 수용,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상대적인 두 분야란 ‘우주론’과 ‘소립자 물리학’으로서 우주의 최대거리와 최소거리를 각기 측정해 왔다. 우주론자들은 우주가 100억 광년에 걸쳐 투명해진 이래 빛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거리인 우주평행선을 바라보는가 하면 소립자 물리학자들은 원자핵보다 훨씬 작고 짧은 거리를 탐구하는 동안, 불가사의하게도 이 상반되는 거시적 관찰과 미시적 관찰 내용이 결과적으로 융합,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이 거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무리 연구를 하고 과학이 발달해도 하면 할수록 과학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양자론에서 무위가 되듯 말이다. 따라서 천체생물학자와 천체물리학자, 천문학자들이 계속 경탄의 장탄식을 금치 못하고 아이작 뉴턴(1643-1727)의 고백을 반복할 뿐이란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좀 더 예쁘고 매끄러운
조약돌과 조가비를
줍고 노는 어린애일 뿐
진리의 대양은 내게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I don’t know what I may seem
to the world.
But as to myself,
I seem to have been only like a boy
Playing on the seashore and
diverting myself
In now and then
Finding a smoother pebble
or prettier shell than ordinary,
Whilst the great ocean of truth
lay all undiscovered before me.”
아, 그래서 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이렇게 말했으리. “당신의 삶을 사는 두 가지 방식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다.” 아인슈타인은 또 이런 말도 했다. “진지하게 과학적인 탐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우주법칙을 통해 그 어떤 하나의 신적(神的) 영(靈)이 명백하게 나타난다고 확신하게 되리라” 그가 말한 우주법칙이란 우리 동양의 ‘도’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럼 이런 ‘도’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윤회전생(輪廻轉生)을 믿어야 하나?
청소년 시절 나는 한때 내세가 있다고 가정해서 ‘천당’은 없어도 ‘지옥’보다 억만 배 더 무섭고 끔찍한 곳이 반드시 꼭 있어야 한다고 울부짖은 적이 있다. 세상의 못된 짓 다 하고도 벌 받기는커녕 호의호식하면서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 다 누리는 자들을 위해서 말이다. 최근에 와서는 서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윤회’를 꼭 믿지는 않아도 그 가능성만큼은 인정하게 된 것 같다. 꿈속에서 또는 최면 상태에서 전생 삶에 대한 기억을 술회하는 것을 녹음해 과학자들과 인류역사학자들이 추적해본 결과 많은 경우 ‘사실’로 판명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 삶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볼 수 있을까?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에서 20대에 요절한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이렇게 읊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열심히 살았느냐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었느냐고,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그가 마치 새벽이슬이 아침 햇살을 받기도 전에 증발해 샛별이 되어 우리 모두에게 영원한 사표가 된 것처럼 우리 각자의 삶 그 자체가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를 하나로 아우르는 도정(道程)’이 되리라.
흥미롭게도 세 편의 기록영화가 오버랩 된다. 그 하나는 2012년 개봉된 스위스계 캐나다인 감독 피터 메틀러의 ‘시간의 끝’으로 이 실험적 다큐는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감지하는가를 다루는데 최면술을 기록한 녹음을 경청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세계 각국 여러 사람들에게 ‘시간이 뭐냐?’는 질문을 던져 답변을 듣는데 한 여인은 시간을 선형(線形)보다는 원형(圓形)으로 느낀단다. 그 이유는 “나 자신도 별처럼 되고 싶어서”라고 한다. 한 사람이 “누가 알랴?”고 하자 또 한 사람이 “그 누가 알리오?”라고 반문한다. 그렇지만 질문의 대상은 사람이라기보다 은하계, 힌두교와 불교의 상징적인 표상(表象) 원형(圓形), 입자가속기, 그리고 시뻘건 용암이다. 음악과 소리로 시간의 속도를 조절하고 늦추면서 마치 명상을 유도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영상을 사용한다.
또 하나는 ‘힐링’을 주제로 세계적인 명상가이자 뇌교육자인 이승헌 국제뇌교육대학교 총장이 제작한 것으로 현대 물리학의 과학적 접근을 통해 삶의 참 의미를 전달하고 변화의 주제로 인간 뇌의 중요성과 명상 등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뇌 활용법을 알려주고 있다. 나아가서 현재 인류가 안고 있는 폭력, 빈부격차, 정신건강, 지구환경 등 다양한 환경과 사회문제의 해결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이 다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영성, 종교, 미래 비전 국제영화제(2013)에서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2013년 개봉한 청춘 로드 대한민국의 다큐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이다. 돈 없이 유럽에 가서 일 년 동안을 지내다 온 네 명의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의 여정을 기록한 영화이다. 일 년 동안 조각조각 촬영한 60시간 분량을 편집해서 시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따라가게 해준다. 이 다큐 영화가 시사하는 대답은 하고 싶은 일을 한껏 해보라는, 말하자면 ‘가슴 뛰는 대로’ 살아보라는 것 같다. 그 대표적인 한 예를 들어보리라.
세계여행의 선구자 김찬삼 씨는 2003년 78세로 타계할 때까지 30여 년 동안 1년 이상의 세계 일주만 3번, 지역별 테마여행을 20여 차례, 여행한 나라는 1백 60여 개국, 시간으로 따지면 14년, 거리로는 지구 둘레의 32배나 된다. ‘세계 일주 무전여행기’를 시작으로 모두 10권에 이르는 ‘김찬삼의 세계여행’, ‘끝없는 여로’, ‘세계의 나그네’, ‘실크로드를 건너 히말라야를 넘다’ 등을 펴냈으며 2001년에는 인천 영종도에 6천 평 규모의 여행문화원을 열고 후배 여행객들을 위해 평생 모은 자료들을 집대성했다. 현대과학은 옛날 고대인들이 믿었던 바와 같이 심장이 지혜의 중심으로 두뇌처럼 작용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심장 속에 두뇌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 가슴이 머리를, 우리 마음이 몸은 물론 우주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 칼릴 지브란(1883-1931)이 그의 ‘예언자(1923)에서 시간에 대해 하는 말 좀 들어보자.
시간이란 무엇이죠?
한 천문학자가 묻자
알무스타파 대답하길
어림짐작할 수 없는
하늘 숨결 재려하고
시간이란 강가에 앉아
강물 보듯 하지만
처음도 끝도 없는
우리 삶이 그렇고
오늘 기억 어제고
오늘 꿈 내일이며
시간은 영원하리.
한 계절에 모든 계절
다 함께 같이 있듯이
한 날에 모든 날 있고
돌이켜 보는 추억과
기다리는 그리움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영원토록 오늘뿐인
이 순간에 있으리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