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외할머니의 기일

김태식

오늘 오전 피부과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발목 주위가 가려워 긁었더니 진물이 나고 시렸다. 오래전부터 이러한 치료를 반복했지만, 근본적인 치료는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일 년 내내 그렇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피부병은 외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주로 외가에서 보냈던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약 8년 정도를 꼬박 그랬으니 그것을 곁에서 지켜만 보셔야 했던 외할머니는 꽤나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그때가 60년대 중반쯤이었고, 고향도 시골이었던지라 병원도 아주 드물게 있었다. 게다가 요즈음같이 피부과 전문의원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까지 가기에는 교통편이 꽤나 불편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외할머니의 정성은 남달랐다. 다른 외손자들에 비해 나에게 쏟는 정성이 지극하셨다. 나의 어머니가 맏딸이었고 그 아래로 큰 터울이 있었던 터라 아이들이 귀했던 탓도 있었겠지만 제게 유달리 많은 신경을 써 주셨던 것은 나의 피부병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근대식 병원이 흔하지 않았던 탓에 나의 피부병은 주로 민간요법에 맡겨졌다. 그러면 할머니는 여러 사람의 입을 통해 피부병을 잘 고친다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가셨다. 저를 업고 20리 정도는 보통으로 걸어가셨던 것 같다. 그 먼 길을 갔어도 상처 부위에 약간의 약을 발라 주는 게 고작이었으며 한약 몇 첩을 지어 주는 게 전부였다. 

 

그랬어도 할머니는 대단한 인내력으로 나를 따뜻하게 해 주셨다. 오히려 외할머니는 가려워 손자국만 생겨도 진물이 나고 아파하는 외손자를 측은해 하셨다. 철이 아직 없었던 나로서는 외할머니의 등에 업혀 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오전에 가면 해가 서산으로 질 때쯤에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언제나 “내 새끼 춥지 않나. 배는 안 고프나.” 하셨다. 오는 길에는 유난히도 감이 많이 열린 감나무들이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감을 따서는 껍질을 곱게 벗겨 입에 넣어주시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가려워하는 부분에 바람이 잘 통하게 해주시고 솜으로 진물을 닦아주고 부채로 통풍을 시켜 주시고 그야말로 지극 정성 그것이었다. 

 

병은 자랑을 하라 했던가. 외할머니는 나의 피부병을 엄청난 자랑거리로 여기셨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들 거의 나의 피부병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소문을 하다 보면 좋은 처방이라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그러셨는가 보다. 채식을 주로 시켜라, 상처 부위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할머니는 많은 신경을 쓰셨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나는 어머니의 손이 아닌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엘 갔다. 외할머니는 담임선생님께 간곡한 당부를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 애는 타고난 피부병으로 인해 공부하는 태도가 나쁠지도 모르니 이해해 주시고 특별히 보살펴 달라”

 

학교에서 가까운 나의 집을 두고 더 먼 거리에 있는 외할머니댁에 가는 것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희망이 되어 있었다. 아무리 가려운 상처라도 외할머니의 손길이 닿으면 괜찮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어 더욱 그랬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나에게 할머니는 언제나 “오늘은 가렵지 않았느냐고.”는 것이 첫 물음이었다. 발목 주위를 꼭꼭 살펴보는 것이 습관인 듯했다. 그야말로 할머니께서는 자나 깨나 외손자 피부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법만을 생각하시는 듯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때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던 늦여름과 가을사이 외할머니가 먼 길을 떠나셨다. 회갑을 갓 지내시고 평소의 지병이던 위장병으로 이승을 떠나신 것이었다. 외할머니가 남긴 몇 마디의 유언 속에 외손자 녀석 피부병도 못 고치고 떠난다고 미안해 하셨단다. 

 

손주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이 울었다고 한다. 나의 어린 생각에 외할머니가 안 계시면 내 몸이 가렵고 진물이 날 때 누가 나를 병원엘 데리고 가지. 입관을 하는 동안 손주 중에서 나만 유일하게 방으로 불려 갔다. 나의 몸 전체를 씻김해서 이승을 떠나시는 외할머니가 가져갈 수 있도록 그 피부병을 주자는 것이 장의사의 제안이었다.

 

그것이 미신이었든지 아니면 효험이 있고 없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나에 대한 바람을 지고 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뿐이니까. 나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지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의 피부병은 계속되고 있다. 그때에 비해 고도의 의학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특별한 효험은 없다. 어느 피부과 전문의의 말씀에 따르면 타고난 피부 체질은 도리가 없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며 그때마다 치료를 받는 방법 외에는 달리 취할 조치가 없다고 한다. 

 

내게 있어 외할머니의 기일은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그 기일이 언제쯤이지 하고 생각한다. 

 

 

[김태식]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온마음재가센터 사회복지사(현)

울산신문 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해양문학상 논픽션 소설 당선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이메일 : wavekts@hanmail.net

 

작성 2025.07.22 10:32 수정 2025.07.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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