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충청권이 집중호우로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충남·충북지사, 대전·세종시장 등 충청지역 광역단체장 전원이 2~3일 사이 유럽으로 출국했다. 그들의 여권에는 ‘세계대학경기대회 공식 일정’과 ‘투자 유치’라는 명분이 적혀 있지만, 주민들의 눈에는 수해 현장을 비운 권력자들의 무책임한 출장으로 비친다.
▶ U대회? 투자유치? 국민은 ‘현장’을 원한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23일 프랑스로 출국해 독일 등지를 방문하며 충남 스타트업의 수출 계약과 유럽 기업들과의 투자협약을 진행 중이다. 이어 충북의 김영환 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 최민호 세종시장도 줄줄이 유럽으로 향했다. 이들의 공통된 명분은 2027년 충청권이 공동 개최하는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U대회)’ 관련 공식 일정이다. 대회기 인수와 폐회식 참석은 주최지역 단체장에게 주어진 외교적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동시 출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역의 컨트롤타워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실제로 충남·충북 일대는 7월 중순부터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여전히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 단체장 공백, 대체 가능한가?
김 지사 측은 “재난 대응 시스템은 해외에서도 충분히 작동된다”며 출장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재난 대응에서 ‘현장의 리더십’은 단순한 시스템 운영이 아닌, 정치적·심리적 안정을 주는 핵심적 요소다. 주민들은 단체장의 부재 속에서 “누가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지휘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이장우 대전시장 역시 “국제행사 유치와 유럽 기업과의 협력은 대전의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다”고 항변하지만, 시의회와 시민사회는 한목소리로 출장 시기의 부적절성을 지적하고 있다. “수해 현장에서 장화 신은 시장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라는 비판은 단지 정치 공세가 아니다.
▶ 정치적 행보인가, 행정적 실수인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은 비를 맞고 있는데, 단체장들은 양복 입고 유럽 순방 중”이라며 “즉각 귀국하고 복구 현장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했다. 이에 김태흠 지사는 “지역경제를 위한 필수 출장에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민들 사이에서는 “공식일정이면 더더욱 분산해서 다녀왔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크다.
▶ 맺으며: 명분만 있고 ‘민심’은 없는 출장
대회기 인수식도, 투자 유치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 곁에 있는 정치”**다. 재난은 바로 그 정치의 진정성과 우선순위를 시험하는 시금석이다. 충청권 단체장들의 이번 집단 해외 출장은 행정의 명분은 있을지 몰라도 정치적 감수성과 공감 능력은 실종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유럽행 비행기 안에서 충청의 장마 소식을 들은 단체장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가”를 스스로 물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