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감정을 숨기는 일상이 우리를 병들게 한다
“요즘 어때?”라는 질문에 우리는 습관처럼 대답한다. “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서일까? 아니면 괜찮지 않다는 말을 하기엔 너무 피곤해서일까?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감정을 억누른다. 상사의 무례함에 속이 끓어도 웃어야 하고, 친구의 서운한 말에도 “괜찮아”를 되뇌며 넘긴다. 이런 습관은 결국 스스로의 감정을 묵살하는 습관이 되며, ‘나도 내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는 상태에 이르게 만든다. 감정의 억제는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면 아래 깊이 가라앉은 불안과 우울이 자리 잡는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약하다는 신호’처럼 여겨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많은 이들이 감정 표현을 ‘사치’로 여긴다. 하지만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뚜껑 닫힌 냄비 속 수증기처럼 쌓이다 보면 결국 폭발하거나 내부를 침식시킨다. 억눌린 감정은 마음의 고갈로 이어지며, 자존감과 활력을 앗아간다.
2. '괜찮다'는 말의 사회적 압력과 무의식적 자동반응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하면 민폐 아닌가요?”
이 질문에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와 정서적 억제 문화가 응축되어 있다.
‘괜찮다’는 말은 단지 안부를 묻는 사람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사회가 기대하는 자기절제의 언어다. 특히 직장, 학교, 가족과 같은 공동체 내에서는 개인의 감정보다는 집단의 조화가 우선시된다. 감정을 표현하면 ‘예민하다’거나 ‘프로답지 못하다’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괜찮다’는 말은 방어 기제가 된다. 말하는 나 자신을 보호하는 동시에, 상대방과의 불편한 갈등을 피할 수 있는 가장 무해한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복은 곧 자신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모르게 만든다. 감정을 인지하지 못하면, 치유도 일어날 수 없다.
3. 억눌린 감정이 불러오는 정신적·신체적 후유증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오래 반복되면, 몸과 마음은 반드시 신호를 보낸다. 불면증, 만성 피로, 소화불량 같은 증상은 종종 ‘말하지 못한 감정’의 신체화된 결과다.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은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뇌의 스트레스 회로를 과도하게 자극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감정 억제는 교감신경계를 과활성화시키고,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이 호르몬은 면역력을 약화시키고, 기억력 저하와 우울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억눌린 감정은 대인관계에 균열을 만든다. 늘 괜찮은 척하는 사람은 감정의 깊은 교류가 어렵고, 타인과의 진정한 유대가 불가능해진다. “쌓이고 쌓인 감정은 언젠가 무너진다.” 감정 억제의 끝은 흔히 ‘번아웃’이나 ‘감정 폭발’이라는 형태로 찾아온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파괴하는 감정의 루프 안에 갇히게 된다.
4.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한 이유
감정은 드러낼수록 건강해진다. “힘들다”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스스로에겐 회복의 첫걸음이 된다. 감정을 표현한다고 해서 삶이 망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감정 표현은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서툴고 낯설 수 있지만, 반복할수록 자기 인식의 수준이 높아지고 자존감이 회복된다. 특히 감정을 말로 풀어내는 행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진솔하게 만든다.
우리는 강해지기 위해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함을 인정할 줄 알기에 더 강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더 괜찮은 척’이 아니라, ‘괜찮지 않음을 말할 용기’다.
5. 결론: 당신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모두 감정을 느끼는 존재다. 슬프고, 외롭고, 지치고, 화나는 감정들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니 괜찮지 않다면 괜찮지 않다고 말하자.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가는 일상이 익숙해진 지금, 우리의 마음은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그 고갈의 끝에서 ‘왜 이렇게 삶이 무기력할까’ 자문하게 된다면,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지키는 첫걸음은 진짜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