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초롬한 오후, 마음이 따뜻한 지인으로부터 유기농 뾰족감 몇 개를 선물로 받았다. 단풍 들 듯 곱다랗게 익어가는 감을 보는 것은 실바람 탄 나비가 됨이다. 발갛게 풍기는 달보드레한 내음으로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聽鶯> 화폭 속 꾀꼬리가 되어본다.
이월 가자미 놀던 뻘 맛이 도미맛보다 좋다는 말이 있지만, 나무에서 몰캉할 때까지 잘 익힌 뾰족감은 가자미도 울고 갈 만큼 달콤하다. 꿀맛 나는 감을 은퇴한 목사님과 조금 나누고 나도 새들에게 주고자 창 밖에 몇 개 놓아두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공생미덕의 마음으로 겨울 나뭇가지에 까치밥을 남겨두지 않았던가.
혹시 새가 와서 먹고 있지는 않을까. 설렘의 아침을 열던 어느 날, 봄볕의 꽃망울마냥 작은 새들이 찾아왔다. 어머니와 남편을 호들갑스럽게 불러 청포도빛 미소 가득 담고 베란다 앞에 오종종 모여 섰다.
동영상을 찍으려하는데, 자세히 보니 한 마리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히뜩히뜩 곁눈질만 하는 것으로 보아 새들에게도 서슬 퍼런 서열이 있는 게다. 잠시 후, 먼저 먹던 새가 제 배를 다 채우고는 아쉬움 한 점 없이 휙 날아가는 것이 영락없는 객이다. 그런데 남은 감을 물고 가지 않고 기다리던 새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둔다. 멀리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춤추는 휘파람 이다.
머리가 조그마한 새들도 양보와 나눔을 아는 것인가. 아차, 귀한 감을 내게 주었던 선한 지인이 그러하였지. 그뿐인가. 삼십칠 년 전, 맨손으로 지하교회를 개척하였던 은퇴한 목사님도 그러하다. 만 오천여 명의 성도가 출석하는 대형교회를 일구었음에도 모든 것을 후임 목사에게 마뜩하니 넘겨주지 않았나. 은퇴식 때 교회를 부탁한다며 지켜보는 모든 성도를 향해 큰 절을 올리던 모습은 오롯한 연꽃으로 가슴에서 지지 않는다.
이들은 진정 살아있다. 생동하는 날숨의 삶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은 숨을 들이쉬고 몸에 숨이 가득 찼을 때 그것을 다시 밖으로 내쉰다 하였다. 숨을 들이쉬고 더는 내쉬지 못할 때, 그는 죽었다고 말한다지.
바닷물의 밀도도 배려의 날숨을 안다. 염분이 높아진 적도 부근의 물이 염분이 부족한 극지방으로 달빛이 흐르듯 은연하게 자신을 밀어 넣는다. 이는 생명을 살리는 심층순환 이다. 이처럼 부족한 이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줄 때, 세상은 소르르 감미로운 날숨으로 눈을 뜬다. 경이로운 삶의 연주가 시작됨이다.
무지근하게 현기증이 난다. 머리 작은 새만도 못한 삶을 살았다니. 나는 손이 커서 장을 볼 때마다 바구니를 욕심껏 채우곤 하였다.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있던 음식은 썩어서 버려야 하는 일이 태반이다. 들숨만 가득 찬 우리 집은 겨우 목사님만 챙기고 생색내듯 새들에게 몇 개의 인심을 나누었을 뿐이다. 정작 이웃을 위한 날숨은 모르는 척 하였는지도...
배려를 알고 있는 작은 새가 눈 나리 듯, 여러 생각의 씨앗을 우리 집 창가에 흩뿌려 둔다. 휘주근히 냉수 한 사발이 단숨에 들이켜진다. 밖을 보니, 가지 사이로 온 몸을 내어준 겨울 산이 보인다. 앙상한 매무시로도 세상을 먹이고 있지 않은가. 산은 아무것도 제 것이라며 움켜쥐지 않았다.
산은 깊이 숨겨두어야 할 적은 물줄기마저도 세상을 향해 쉼 없이 나누어주지 않는가. 겨울이면 ‘나목’(裸木)이 되어 비를 맞고, 눈을 맞는다. 무소유로 있는 듯하나, 다시 봄이면 산보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이 누구일까. 제 것을 아끼지 않았기에 다보록함이다.
때마침 남편이 켜 놓은 페이스북에서 아프리카의 세 살쯤 되는 어린아이가 알몸을 굼적이며 걸어간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흙먼지가 휘지러진 그릇 하나, 가슴에 꽃잎처럼 고이도 품고 있다.
파리 떼가 아이 주변을 빙빙 돌다가 코끝에도, 입술에도, 유난히 커다랗고 하얗지만, 붉게 충혈 되어 겨우 꿈벅이는 눈가에도 달라붙는다. 힘없이 눈을 비비는 새까만 손짓도, 걸음걸이도 기력을 잃고 부러진 그리움이다.
눈물이 아이 얼굴에 오래 매달려 있던 흙먼지를 무겁게 쓸어내리는 바로 그때, 금발의 한 여인이 조심스레 다가선다. 물병의 뚜껑을 열어 아이의 쪼그라들고 말라 갈라진 입술에 다소곳이 대어주고 있다.
시든 코스모스 꽃대가 되어버린 아이의 심장이 조그맣게 입을 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의 심장도 물을 흘릴세라 까치발을 든다. 여인이 양보해 주었던 물줄기가 꿈처럼 흐르고 있다. 차갑던 세상과 뜨겁게 포옹 함이다. 하얀 너그러움이 풍성한 여인도 춤추는 휘파람과 손을 잡는다. 아이는 날숨의 열매가 되어 행복하게 익어가겠지.
내게 들어온 것은 나누어주라고 잠시 맡겨진 것이라 하였다. 더는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김치냉장고를 없애야겠다. 우리 세 식구는 냉장고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숨바꼭질 중이던 우리 집 날숨을 큰 소리로 찾아 불러본다. 여기저기 쌓여 있던 음식도 필요한 이에게 나누어주어야지. 날숨을 쉬니 임 옆에 선 듯 사는 맛이 난다.
화폭 속에서 꾀꼬리 한 쌍이 봄 강을 짜내고, 긴 밤을 들이마신 새벽은 숨을 몰아 내쉴 준비로 분주하다. 창을 활짝 열어본다. 내일의 마중물 한 사발도 숲을 지나는 바람의 인사를 만지작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