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의 표제 시 「진달래꽃」은 일반적으로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버림받은 여자의 한의 정서가 녹아 흐른다는 해석을 통설로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애니미즘 화소가 녹아 흐른다는 주장도 있다. 식물 환생 화소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꽃 환생 화소, 진달래꽃 환생 화소이다. 시 「진달래꽃」의 전문을 읽어 본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전문
인용 시는 식물 환생 화소가 내재한 약산동대의 ‘진달래꽃’ 설화를 변용했다. 즉, 약산동대의 ‘진달래꽃’ 설화를 외적 소재로 차용하여 변용한 시이다. 비서술체(非敍述體, non-narrative), 즉 운문(verse) 표현 기법을 채택했다. 이는 자기 독백 형식의 묘사체 기법이다. 압축으로 인해 설화를 바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배경 설화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시 「진달래꽃」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용 시를 무당 굿의 구조와 흐름에 대입하여 송신(送神)의 단계라는 주장도 있다. 이를 먼저 읽어 본 후, 배경 설화를 읽어 보고자 한다.
이 시에서 ‘당신’은 나를 두고 먼저 죽은 존재로 읽힌다. 그런데 ‘나’는 ‘당신’이 “나 보기가 역겨워서” 먼저 이승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다음 “나 보기가 역겨워” 죽었기에 이제 ‘나’는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 여기에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대하는 이중의 감정이 개입한다. 산 자가 이승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자를 저승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증(愛憎)의 감정이 필요한 것이다(김만수, 『진달래꽃 다시 읽기』, 강, 2017, 233쪽.).
무당 굿의 구조와 흐름에 대입하여 읽어 보면, 영신(迎神)과 접신(接神)의 단계를 지나 마지막 송신(送神)의 단계로 읽을 수도 있다. 영락없이 사령(死靈)을 다시 떠나보내는 의식처럼 읽히기도 한다. 시를 읽는 수많은 독법(讀法)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김학동은 『김소월 평전』(2013)에서 시 「진달래꽃」과 약산동대의 ‘진달래꽃’ 설화와의 연관성 문제를 다루었다. 그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2연의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에서 굳이 영변의 약산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님의 가시는 길에 뿌리겠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변의 약산동대는 그의 고향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의 고향에는 진달래가 많이 피는 남산에 ‘진달래봉’ 이 있다고 한다. 그러함에도 소월은 그의 고향 산이 아닌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을 뿌리겠다는 것은 의도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소월이 영변의 약산동대의 진달래꽃에 얽힌 설화를 어려서 누군가를 통해서 들었거나, 아니면 그 지방에 유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태수의 딸이 약산동대를 찾았다가 그 기슭에 흐르는 구강에 빠져 죽은 원혼이 진달래가 되었다는 설화 내용을 알고 쓴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이 가실 길에 뿌려진 진달래꽃은 죽은 처녀의 원혼이기도 하지만, 보내는 시적 화자의 원망이 서린 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이 시에서 ‘영변에 약산 / 진달래꽃’은 그저 지나칠 구절이 아니라, 이 시의 핵심적 요소가 된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이 시의 해석에서 이 구절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약산동대에 얽힌 설화의 상호텍스트성 위에서 보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김학동, 『김소월 평전』, 새문사, 2013, 128쪽).
이와 같이 김학동은 『김소월 평전』에서 시 「진달래꽃」과 약산동대의 ‘진달래꽃’ 설화와의 연관성 문제를 다루었음을 읽어 보았다. 이와 관련하여 노춘성의 산문집 『인생 안내』(1938)에 실린 기행문을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약산에는 바위틈마다 진달래꽃이오, 도라지꽃도 많이 핀다. 선녀가 내려오기 때문에 아침까지 안개가 낀다고 하며, 그리고 옛날 어떤 수령의 외딸이 이 약산에 왔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후에 그의 넋이 진달래가 되어 이 약산을 뒤덮었다고 한다. 이처럼 이 약산은 전설과 민요와 정열로 묻힌 아름다운 승지이다. 북국의 한 모퉁이 철옹성에는 언제나 정열의 묻힌 민요가 이 산을 찬미하고 있다.
― 노춘성, 기행문 「약산동대」에서 (위의 책, 141쪽.)
노춘성의 산문집 『인생 안내』(영창서관, 1938, 7쪽.)에 실린 기행문 「약산동대」의 일부이다. 죽은 소녀의 혼이 진달래에 깃들었다는 의미이다. 애니미즘 화소가 녹아든 비극 결말이다. 즉, 새드엔딩이다. 이를 배경으로 권선징악의 해피엔딩 고소설이 있다. 「춘향전」을 모방한 소설이다. 이종정(李鍾楨)의 고소설 『약산동대』(광동서국, 1913)이다. 그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충청도 회덕군(懷德郡) 동면에 송성회(宋星會)라는 사람이 일찍 벼슬을 하직하고 고향에 내려와 부인과의 사이에서 늦게 아들을 얻으니, 이름을 경필(慶弼)이라 하였다. 15세에 경필이 영변의 약산동대를 구경하던 중에 마침 「열녀전」을 읽고 있던 한 소녀를 만나, 주점의 매파를 통해 상봉을 간청한다.
그 여인의 이름은 빙옥(氷玉)인데. 창기의 몸이어서 인연을 맺을 수 없다 하였다. 그 부모에게 정실(正室)로 맞을 것을 약속하고, 학업을 위해 신물(信物)을 교환하고 작별한다. 이때 영변 부사가 새로 부임하여 기생점고(妓生點考)를 시켰으나 빙옥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강제로 불러 수청을 요구한다. 그러나 빙옥이 수청을 거역하므로 형장을 치고 칼을 씌워 하옥한다.
이때, 경필은 학업에 힘써 알성과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를 제수받고, 평안도 암행어사가 되어 떠났다. 도중에 초동과 농부로부터 내일 본관사또 생일에 빙옥이 처형된다는 말을 듣고, 급히 약산(藥山)에 이르러 빙옥의 집을 찾지만, 장모의 푸대접을 받는다.
거지 행색으로 옥중의 빙옥을 만난 뒤 본관의 잔칫날 음식과 술을 얻어먹고 글 한 수를 짓는다. 그 뒤 암행어사 출두를 하여 빙옥을 구출하고 공사를 처결한 뒤 길일을 가려 빙옥과 화촉의 예를 올린다. 빙옥은 정렬부인의 직첩을 받고 어사는 예조참판에 올라 화락한 가정을 이룬다.
― 이종정(李鍾楨), 고소설 「약산동대」 줄거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약산동대를 근원 설화로 한 고소설이다. 공간 배경은 영변의 약산동대이다. 「춘향전」과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 즉, 모방 소설이다. 이는 주인공 이도령이 송경필로, 춘향이 빙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르고, 이야기 구조는 거의 동일하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가야대학교 강사.
저서 : 평론집 9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5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