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수 칼럼] 제2차 당항포해전 전투 지역 지명, 읍전포와 시구질포

시구질포는 마산합포구 진동면 요장리 주도마을(왜꼬지) 옆 섶굴개

지난번 칼럼에서는 제2차 당항포해전 전투 지역 가운데 하나인 진해 선창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또 다른 전투 지역인 읍전포(邑前浦)와 시구질포(柴仇叱浦)의 위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제2차 당항포해전의 경과를 기록한 충무공 이순신의 장계 「당항포파왜병장」에 따르면, 1594년 음력 3월 4일 조방장 어영담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의 전선 30여 척은 진해 선창에서 나오는 왜선 10척을 발견한 후 이를 추격하여, 진해 읍전포(邑前浦)에서 6척, 진해 시구질포(柴仇叱浦)에서 2척, 고성 어선포에서 2척을 각각 불태웠다.

 

‘읍전포(邑前浦)’는 지명의 글자가 갖는 뜻을 새겨보면 ‘읍치 앞에 있는 포구’라는 의미이다. 이 때문에 읍전포는 진해 선창과 위치가 같은 곳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해 선창에서 나온 왜선 10척 가운데 6척이 기슭을 따라 이동하다가 배를 버리고 도망친 곳이 읍전포다. 즉, 읍전포는 진해 선창과 그 위치가 전혀 다르다.

 

진해 선창이 있던 진동면 진동리 최남단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진동면 고현리 고현 마을의 포구인 고현항에는 읍전포의 지명과 대응하는 ‘읍전개’라는 구전 지명이 전한다. ‘浦’는 우리말 ‘개’를 훈차하는 글자로 널리 쓰였으므로 ‘邑前浦’는 ‘읍전개’의 차자표기로 해석된다. 18세기 후반 조선의 호구 현황을 기록한 통계 자료인 ?호구총수?에 따르면, 고현리 고현 마을의 조선시대 지명은 고현리(古縣里)이며, 고현항의 조선시대 지명은 내포리(內浦里)이다. 지명 ‘내포리’는 일제강점기에 내포가 고현으로 통합되면서 사라졌다. 고현리의 지명은 진해 관아가 진해읍성 터에 설치되기 이전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현리와 읍전개는 예전에 그 일대가 읍치였음을 말해주는 지명이다.

 

두 지명의 유래와 관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군명(郡名)조가 진해의 별칭을 ‘우산(牛山)’으로 기록한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같은 책의 산천(山川)조에 따르면 진해의 진산(鎭山)은 취산(鷲山)으로서 지금의 진동면 교동리와 인곡리 사이에 걸쳐 있는 수리봉에 해당한다. 우산은 진동면 고현리·신기리와 진전면 율티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고현리와 읍전개 지명이 전하는 고현리 고현 마을 북서쪽에 인접해 있다. 진해 고을을 상징하는 진산 취산을 놓아두고 우산이 진해의 별칭이 된 셈이다. 

 

즉, 진해의 별칭 ‘우산’은 ‘고현리’ 및 ‘읍전개’와 더불어 예전에 그 일대가 읍치였음을 말해주는 근거로 해석된다. 진해의 별칭 우산은 전라도 전주(全州)의 별칭 완산(完山)과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고려사』에도 우산이 진해의 별칭으로 기록된 점으로 보아 진해 관아가 고현리에 있던 시기는 고려시대나 그 이전으로 생각된다.

 

비록 지명 ‘읍전개’는 이를 기록한 문헌 자료를 찾기 어렵지만, 지명 ‘고현리’ 및 ‘우산’과 더불어 지명 유래가 거의 입증된다. 구전 지명 ‘읍전개’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그 지역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은상은 ‘이충무공전서’ 번역서에서 읍전포의 위치를 진해면 고현리(鎭海面古縣里)라고 주석을 달았다. 진해면은 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의 일제강점기 지명이므로 조선시대 진해와 관련은 없지만, 고현리를 언급한 점으로 보아 구전 지명 ‘읍전개’에 관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현리 고현항(조선시대 내포/읍전개) 일대 지도자료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제2차 당항포해전 전투 지역의 하나인 ‘시구질포(柴仇叱浦)’는 역사학계 안팎에서 그 지명을 ‘시굿포’로 통칭하고 있다. 차자 표기 ‘叱’이 조선시대 중기에 음절말 ‘ㅅ’ 표기로 사용되었다는 점에 대해 국어국문학자들의 의견이 대체로 일치하므로 ‘柴仇叱浦’의 ‘仇叱’은 ‘굿’으로 부르는 것이 합당하다. 한국고전종합DB,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등의 사이트에서 ‘叱’이 ‘ㅅ’ 표기로 사용된 사례를 검색해보면 ‘叱段(ᄯᅡᆫ)’, ‘叱分(ᄲᅮᆫ)’, ‘庫叱(곳)’, ‘佳叱(갓)’ 등 꽤 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이를 통해 ‘仇叱’의 음가를 다시 파악할 수 있다.

 

‘柴仇叱浦’의 ‘仇叱’은 그 음가가 제대로 파악되었지만, ‘柴’와 ‘浦’에 대해서는 이 두 글자가 훈차 표기인지 아니면 음차 표기인지 전혀 검토된 바가 없다. 즉, ‘柴仇叱浦’를 부르는 통칭 ‘시굿포’는 제대로 검토된 지명이 아니다. ‘시굿포’는 진동면·진전면의 연해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지명을 찾을 수 없어 그 위치가 아직 미상으로 남아있다. 아무래도 ‘시굿포’라는 통칭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고 이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柴仇叱浦’의 ‘柴’는 음차라면 ‘시’로 읽히고 훈차라면 그 의미인 ‘섶’으로 읽힐 것이다. ‘浦’는 음차라면 ‘포’로 읽히고 훈차라면 그 의미인 ‘개’로 읽힌다. ‘浦’는 ‘개’를 훈차할 때 사용되는 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浦’ 앞에 ‘叱’이 나오면 ‘浦’는 ‘개’의 훈차일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경남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 옥계(玉笄) 마을의 옛 지명 ‘外叱浦里(욋개리)’, 경남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 진동(津洞) 마을의 옛 지명 ‘亏叱浦(웃개)’, 전남 여수시 국동(菊洞) 국동항(菊洞港)의 옛 지명 ‘仇叱浦(굿개)’,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주 포구의 옛 지명 ‘北叱浦(뒷개)’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이들 지명에 나타난 ‘叱(ㅅ)’은 뒤따라오는 ‘浦(개)’가 된소리 ‘깨’로 읽히므로 추가된 사이시옷이다. ‘柴仇叱浦’의 ‘浦’도 마찬가지로 그 앞에 ‘叱(ㅅ)’이 나오므로 ‘개’의 훈차로 해석된다.

 

‘柴仇叱浦’의 ‘柴’를 ‘섶’의 훈차로 보는 문제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통해 입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북 익산시 춘포면 덕실리 시전(柴田) 마을은 ‘섶밭’이라는 구전 지명이 전한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안남도지지조서’는 평안남도 대동군 남형제산면 시정리(柴井里) 시정동(柴井洞)의 우리말 지명을 ‘섯우물(섶우물)’로 기록하였다. 비록 구전 지명은 남아있지 않지만, 지명 유래를 통해 ‘섶’을 ‘柴’로 훈차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마을 이름도 존재한다. 충북 제천시 송학면 시곡리(柴谷里)와 경기 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시곡동(柴谷洞)은 그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생긴 지명이라는 지명 유래가 전하는데, 본래는 ‘섶골’이나 ‘섶실’ 등으로 불렸을 것이다.

 

‘섶’을 ‘柴’로 훈차한 사례들을 통해 ‘柴仇叱浦’의 ‘柴’도 ‘섶’의 훈차일 가능성을 상정하면, ‘柴仇叱浦’는 ‘섶굿개’로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柴’를 음차로 해석한 ‘시굿개’는 이와 비슷한 지명을 진동면·진전면 연해 지역에서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섶굿개’는 이와 비슷한 지명이 이들 연해 지역에서 발견된다.

 

제2차 당항포해전 때 왜선 10척이 나온 진해 선창(진동면 진동리 최남단)에서 동남쪽 해안을 따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진동면 요장리 주도 마을 북쪽 골짜기에는 ‘섶골’·‘섶굴’·‘숙골’·‘숫골’·‘숯골’·‘숯굴’ 등의 구전 지명이 전한다. 현지 주민들의 사투리까지 섞인 까닭으로 그 지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발음된다. 이 골짜기가 섶이 많이 나는 곳임을 고려하면 그 구전 지명의 원형이 ‘섶골’ 또는 ‘섶곡’임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요장리 섶골/섶곡 일대 지도자료 출처: 국토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섶골/섶곡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현재 광암해수욕장이 들어서 있다. 비록 광암해수욕장 지역은 옛 지명이 남아있지 않지만, ‘개’ 또는 ‘개펄’로 불릴 수 있는 지리적 특징을 가지고 있으므로 ‘섶골개’나 ‘섶곡개’라는 지명이 어울리는 곳이다. 이 ‘섶골개’와 ‘섶곡개’는 위에서 살펴본 ‘柴仇叱浦’의 음가 ‘섶굿개’와 대응한다. 특히 ‘섶곡개’는 ‘섶’과 ‘곡’이 모음 조화 현상을 일으키면 구음이 ‘섶국개’로 변화하여 ‘섶굿개’와 거의 똑같이 발음된다. 흥미롭게도 섶골/섶곡의 현재 구전 지명 가운데 ‘섶골’·‘섶굴’과 ‘숯골’·‘숯굴’도 모음 조화 현상이 보인다. 임진왜란 시기 이곳 현지 사람들이 부르던 지명을 한자로 음·훈차하여 적은 것이 ‘柴仇叱浦’임을 유추할 수 있다.

 

‘柴仇叱浦’가 ‘섶굿개’임을 말해주는 근거가 한 가지 더 있다. 섶굿개 바로 옆에 있는 요장리 주도 마을에는 ‘왜곳지/왜꼬지’라는 구전 지명이 전한다. 이는 곶(串)의 지형을 가진 마을을 의미하는데, 임진왜란 시기 일본군이 이 지역에서 많이 죽어서 이러한 지명이 생겼다는 지명 유래도 전한다. 왜곳지/왜꼬지의 지명 유래는 임진왜란 시기 주도리와 인접한 섶굿개에서 전투가 벌어졌음을 말해주는 근거로 해석된다.

 

 

- 본 칼럼은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의 ‘동방학지’ 제210집(2025년 출간)에 수록된 논문 「제2차 당항포해전지의 위치 고찰」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이다. 

 

 

[이봉수] 

시인

이순신전략연구소 소장

https://myisoonsinxsz.zaemit.com/

 

작성 2025.08.07 10:20 수정 2025.08.07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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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