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인류애는 바닥난 지 오래다. 자신마저 속이는 허세에 찌들어 살고 위험한 삶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에 매몰되기 일쑤다. 부자들은 지나친 자식 사랑에 올인하고 빈자들은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자신들을 원망하면서 때론 파괴자가 되기도 한다.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이 그렇다. 어쩌면 물질이라는 만능키는 인간애를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모른다. 인간애도 없는데 인류애는 개나 줘도 안 물어 갈 것 같은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구 탓도 아니다. 국가 탓도 아니며 사회 탓도 아니고 개인의 탓도 아니다. 인류는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셋팅되어 있는지 모른다.
인류애를 충전하고 싶을 때 좋은 영화를 본다.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린 따뜻함을 꺼내 다 나눠주고 싶은 마음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그런 영화를 고르는 건 쉽지 않지만, 그냥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발견하면 서너 달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최근에 발견한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가 그 바로 그 영화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 영화다. 보고 있으면 저절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품위있고 재치 있고 인류애 충만한 영화다. 오랜만에 바닥난 인류애를 충전할 수 있었다.
길거리 농구를 즐기는 자말은 친구들과 동네 낡은 아파트에 사는 이상한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남자는 베일에 싸여 있었고 자말은 이상하게 그 남자에게 끌리게 된다. 호기심이 극에 달한 자말은 어느 날 밤 그 남자 아파트에 몰래 들어간다. 집안을 둘러보다가 실수로 가방을 놓고 나오게 된다. 베일에 가려진 남자 포레스터는 자말이 두고 간 가방을 열어보게 된다. 가방 속에서 자말이 쓴 수많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자말의 글은 평범하지 않았다. 뭔가 비범함이 묻어나는 글들이었다. 포레스터는 자말의 글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
다음 날 자말은 가방을 찾기 위해 포레스터의 아파트를 찾아가지만, 포레스터는 자말의 글에 대해 문법은 기본이고 사용한 단어들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냉혹한 비판을 한다. 은둔해 살고 있는 전설적인 천재 작가 포레스터는 지멀의 문학적 재능을 키워내기 위해 밑밥을 던진 것이었다. 포레스터는 자말에게 자신이 직접 글쓰기를 도와주겠노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포레스터는 지난 수십 년간 한 번도 자기 내면의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을 자말에게 열게 되고 자신의 세계로 자말을 받아들인다.
교내 테스트에서 자말의 문학적 재능이 드러나면서 맨하튼의 명문 예비학교에 농구 특기 장학생으로 스카우트된다. 그 학교에서 포레스터가 쓴 소설에 대해 레포트를 써 오라는 숙제를 받게 된다. 그 소설을 쓴 작가가 자신에게 글쓰기를 가르쳐 준 포레스터라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포레스터라는 걸 비밀로 해준다면 다시 글쓰기를 가르쳐 주겠노라고 한다. 문학을 가르치는 교수 크로포드는 자말의 문학적 재능을 의심하고 무시한다. 포레스터는 문학을 가르치는 크로포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자말에게 형편없는 교수에게 당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자말은 포레스터의 엄격한 지도하에 자신만의 문학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포레스터의 생일날 자말은 은둔하는 포레스터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야구장으로 데려와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크로포드 교수는 자말이 흙수저이며 흑인이라고 노골적으로 편견으로 계속 무시한다. 크로포드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던 자말은 포레스터의 집에서 쓴 에세이를 작문 대회에 출품한다. 그러나 자말의 작품은 표절 의심을 받게 되고 자말은 포레스터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나서 달라는 하지만 포레스터는 거절한다. 다시 생각한 포레스터는 학교를 찾아가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자말과의 우정을 통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포레스터는 가족의 상처와 비평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고향 스코틀랜드에 한 번 갔다 와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자말은 포레스터의 변호사로부터 포레스터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자말에게 상속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자말은 포레스터가 남긴 편지를 읽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편견을 가진 백인이 있지만 편견보다 사랑을 가진 백인도 있다. 포레스터를 통해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영화다. 포레스터를 연기한 숀 코너리의 깊은 호흡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어 가슴이 먹먹하게 만든다. 포레스터가 숀 코너리인지 숀 코너리가 포레스터인지 헷갈릴 정도로 몰입하게 만든다. 삶의 연륜이 주는 힘인가 보다. 대사들이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아 캐릭터의 단점들을 감싸주는 느낌이다. 자말에게 남긴 편지에는 포레스터의 진심이 묻어나는 글이 우리 마음을 울린다.
"친애하는 자말에게. 한때 난 꿈꾸는 걸 포기했었다. 실패가 두려워서, 심지어는 성공이 두려워서. 네가 꿈을 버리지 않는 아이인 걸 알았을 때, 나 또한 다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지. 계절은 변한다. 인생의 겨울에 와서야 삶을 알게 되었구나. 네가 없었다면 영영 몰랐을 것이다."
- William Forrester
[최민]
까칠하지만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영화를 통해 청춘을 위로받으면서
칼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공부하고
플로리스트로 꽃의 경제를 실현하다가
밥벌이로 말단 공무원이 되었다.
이메일 : minchoe29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