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들어가기
청록파 박두진 시인이 기독교 신앙 시에 천착한 점을 고려해 보면, 순수 서정시로 읽히는 시에도 기독교 사상이 내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두진의 제4시집 『하얀 날개』(1967)에 수록 발표한 시 「부활」과 친필 원고로 남긴 미발표 시 「부활」을 함께 읽어 보고자 한다. 시어, 이미지, 메시지 등이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두 작품은 유사하면서도 각각의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미발표 친필 원고는 현재 필자가 소장 중이다. 보존 상태는 좋지 않다. 200자 원고지 세 장을 잇대어 액자 속에 보존 중이다. 원고지 선과 칸의 붉은색이 발하여 겨우 시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전에는 강단 시인 김창근(1942~2021, 1970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교수가 별세하기 전까지 집필실에 소장하던 원고이다. 그 후 이 원고를 인수한 뒤 대학의 학보에 실었을 가능성을 추측했다. 김창근 교수가 28년간 근무한 동의대학교의 학보와 부산 여러 대학의 학보를 추적하였으나, 게재한 근거를 밝히지 못했다. 이쯤에서 박두진 시인의 미발표 시 「부활」을 세상 밖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박두진의 시 「부활」 읽기’라는 제목 아래, ‘발표 시 「부활」 읽기’와 ‘미발표 시 「부활」 읽기’로 구분하여 읽어 본다.
2. 발표 시 「부활」 읽기
박두진의 발표 시 「부활」은 시집 『하얀 날개』(1967)에 수록한 「부활」이다. 널리 알려진 시이다. 표층적 의미만 읽어 보면, 청록파 시인으로서 자연을 읊조린 순수 서정시로 읽힌다. 아래와 같이 읽어 본다.
씨앗은 땅에 떨어져
흙에서 다시 솟아나고,
바람에 불리어 낙화한 꽃잎은
따스한 바람에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
나풀대는 하늘
보드라운 햇볕에 은총하는
잎새들의 속삭임,
신록의 어린 꿈이,
3월의 녹색 꿈이
열린다. 結氷(결빙)했던 혈맥
밀폐의 思想(사상), 否定(부정)과 昻奪(앙탈)의 심장을
뚫고 나와
아, 팔팔댄다. 깃발로. 조용히
그리고 격렬하게
안으로부터, 씨앗으로부터, 꽃으로
불타는 불꽃으로부터
솟쳐 나는
생명,
뜨거운 4월로 폭발한다.
-박두진, 「부활」 전문
인용 시는 8연 구성이다. 4연과 8연은 한 행만으로 연 구성을 했다. 이를 꼼꼼하게 읽어 보면, 기승전결이 2번 반복하는 연시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읽으면, 4연과 8연은 결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시인의 의도에 맞게 8연 시로 읽어 본다.
1연의 “씨앗은 땅에 떨어져 / 흙에서 다시 솟아나고,”는 식물의 씨앗이 땅에 떨어지면 흙에서 다시 싹을 틔우고 태어난다는 자연의 생명 탄생과 죽음, 죽음과 재생의 반복을 의미한다. 이는 시의 제목 ‘부활’과 같은 의미를 지닌 자연 순환의 의미이다. 2연의 “바람에 불리어 낙화한 꽃잎은 / 따스한 바람에 다시 꽃으로 / 피어난다.”라는, 꽃잎이 꽃비로 내린 뒤 다시 바람에 흩날리어 피어난다며 생명 재생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는 주관적인 의미 부여이다. 씨앗이 아닌 꽃잎의 죽음에 재생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따스한 바람에 다시 생명을 얻는다는 아름다운 죽음을 의미한다. 이를 사람의 삶에 겹쳐 보면, 의미 있는 죽음, 영원히 기억할 죽음을 의미한다.
인용 시가 사계절의 순환과 함께 자연을 노래한 순수 서정시임에도 이를 1960년 사회 상황에 겹쳐 보면, 4연의 “3월의 녹색 꿈이”는 3.15 부정선거, 8연의 “뜨거운 4월로 폭발한다.”라는 시행은 4.19 혁명과 겹쳐 읽힌다. 이는 5연의 “밀폐의 思想(사상), 否定(부정)과 昻奪(앙탈)의 심장을 / 뚫고 나와”와 6연의 “아, 팔팔댄다. 깃발로. 조용히 / 그리고 격렬하게”라는 시행이 이를 암시한다.
표층적인 의미만으로 해석하면, 순수 서정시이다. 심층적 내재의 의미로 읽어 보면, 생명파 시인처럼 자연의 생명 의식이 녹아 흐른다. 청록파 시인들도 자연 생명 의식을 시 속에 다루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4.19 혁명의 시대정신이 녹아 흐른다. 밑바닥까지 더 깊이 들어가면 ‘부활’이라는 기독교 사상이 내재해 있다. 3연의 “나풀대는 하늘 / 보드라운 햇볕에 은총하는”이라는 시행이 이를 암시한다. 이는 박두진 시인의 돈독한 신앙심과 연결해 보면, ‘부활 신앙’에 맞닿아 있다.
3. 미발표 시 「부활」 읽기
박두진의 시집 『하얀 날개』(1967)에 수록 발표한 시 「부활」과 시어, 이미지, 메시지 등이 매우 흡사한 미발표 시 「부활」을 읽어 보고자 한다. 이는 친필 원고로 남아 있다.
땅에 떨어져
대지로 되돌아간 낙엽들이
꿈꾸는 흙 속의 잠,
완벽한 꿈의 잠,
이제사 그 흙 속에서 눈 뜨는
봄의 씨앗, 이제사
귀를 여는
뜨거운 봄의 씨앗
그 아프던 뼈의 상처
축축히 땅에 젖던
피의 기억은
날아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금 청청하게 살랑이는 마파람,
그 햇살들의 그 빛의
눈부신 억만 축복.
이제사 멀리서 바다 일어서는 소리,
멀리서 달려오며
깃발 흔드는 소리,
온천지 두둥둥둥
북 울리는 소리.
- 박두진, 「부활」 전문
인용 시는 5연 구성이다. 1연의 “땅에 떨어져 / 대지로 되돌아간 낙엽들이 / 꿈꾸는 흙 속의 잠, / 완벽한 꿈의 잠,”은 하강하는 낙엽이 대지에 회귀하여 소멸하는 이미지이다. 이를 더 자세히 말하면, 공기와 대지 이미지의 합일화이다.
2연의 “이제사 그 흙 속에서 눈 뜨는 / 봄의 씨앗, 이제사 / 귀를 여는 / 뜨거운 봄의 씨앗”은 탄생 혹은 재생하는 새싹을 눈과 귀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제사(이제야)’라는 경북 방언을 두 번 반복한다. 이는 기다림에 지친 재생, 더딘 재생의 강조이다. 3연의 “그 아프던 뼈의 상처 / 축축히 땅에 젖던 / 피의 기억은 / 날아가고,”는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반영한 것이라 해석이 가능하다. 6.25 전쟁 상흔과 4.19 혁명의 상처를 말하면서 휘발해 버린 피비린내 기억을 말한다. 인간의 망각 현상, 역사의 망각 현상을 상기하게 한다. 4연의 “아무렇지도 않게 / (……) / 그 햇살들의 그 빛의 / 눈부신 억만 축복.”은 밝고 맑은 날의 희망과 미래 지향의 역동적 생명력이 이어지는 축복을 의미한다.
결연에서 “이제사 멀리서 바다 일어서는 소리, / 멀리서 달려오며 / 깃발 흔드는 소리, / 온천지 두둥둥둥 / 북 울리는 소리.”라는 공감각적 이미지로 묘사한다. 이는 역동적인 생명력, 역동적인 순환과 재생을 의미한다. 이를 제목인 ‘부활’과 기독교 신앙을 결부해 보면, ‘부활 신앙’을 기저에 깔아 놓은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미발표 인용 시는 자연의 생명력을 노래한 순수 서정시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시대정신, 사회 현상 등과 겹쳐 읽어 보면, 발표한 인용 시처럼 다층적 의미로 읽힌다.
이와 같이 두 편이 쌍둥이처럼 닮았다. 1연 1행의 “땅에 떨어져”라는 시어는 똑같은 통사 구조이다. 그 외 ‘씨앗, 꿈, 뜨거운, 깃발, 햇볕(햇살), 땅(흙, 대지) 등’ 채택한 시어가 닮았다.
4. 나가기
앞에서 읽어 본 시 「부활」 두 편은 유사한 시어를 여럿 채택하여 서로 빼닮았다. 1연 1행의 “땅에 떨어져”라는 통사 구조는 똑같다. 이는 쌍둥이 시이다.
두 편 모두 박두진의 돈독한 신앙심과 연계하여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들은 신앙 시를 창작할 때 종교적 ‘신념화’를 녹여 넣는다. ‘신념화’를 통해 시인의 신앙심 의지와 확신을 고백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예수의 부활’을 믿는다. ‘창조 신앙’(창조론)과 ‘부활 신앙’이 핵심 교리이다. 이를 확신하는 종교적 신념 표현을 시에 녹여 넣기도 한다. 신앙 시에 기독교인만의 종교적 신념 표현은 당연하다. 특히 ‘부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성(전인적 인간, 유기체적 인간)에서 신성으로 승천한 신약 믿음의 출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능하다. 인간에겐 부활이 있을 수 없다.
박두진 시인은 ‘부활 신앙’을 자연에 빗대어 읊조린 듯하다. 다층적 의미를 장치한 것도 분명하다. ‘부활’이라는 제목만으로도 기독교 신앙이 내재해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대구과학대학교 겸임조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2권, 연구서 2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