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숙 칼럼] 올해가 가장 시원하다고요?

민은숙

습도가 높은 날들이 행진한다. 이런 날은 머리 감는 구부리는 동작이 굼뜨기도 하다. 그래도 머리는 감아야 한다. 얼추 마르면 머리칼을 두 손에 그러모아 검정 머리 끈으로 묶곤 한다. 그래서일까. 올여름에는 만 하루만 지나고 나면 두피에 물방울이 노니는 기분이 들곤 했다. 혹시 새치가 나오려는가. 흐르는 강물처럼 잡을 수 없는, 시간의 굴레에 스스로 갇힐 필요는 없겠다. 가뜩이나 습도와 온도가 합작해 불쾌 지수가 90퍼센트로 치솟는 불기둥을 머금은 8월의 고지가 아니었던가.

 

재활용 배출차 양손에 바리바리 든 채 아파트 주차장 모서리에 섰다. 이미 와서 분리 배출하는 굽실굽실한 긴 머리를 등 뒤에 늘어뜨린 주민은 플라스틱을 분리하면서, 비닐류를 넣으면서, 종이 상자를 던지면서도 입술로 자동 반복되는 늘어진 카세트테이프처럼 "아이고 덥다, 더워"를 연신 발산하는 중이다. 그녀의 중얼거림이 휴일의 이명을 두드리며 동조하라 다그치는 태양의 이글거림이 느껴졌다.

 

여름내 묶었던 머리카락이 불볕에 버티기 꽤 고단했었나 보다. 아침에 빗이 위에서 내려오는 일상에 어금니를 물고 빗과 실랑이한다. 뭔가 특별한 조치가 절실하다. 동네미용실을 찾았다. 

 

“올해 너무 덥지 않나요? 가스 불 켜기가 무서워서 요리도 못하겠어요.”

“이 더위엔 사 먹는 거 괜찮죠. 시원하지. 맛있지. 준비와 마감에서 해방되지.”
 

한 철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뜨거운 양철 지붕 위 고양이든, 비둘기든 백기를 번쩍 들 여름의 보자기는 바이어스 마감한 밑단 레이스처럼 하늘거리지 않는다. 낭만을 잃고 삐뚤어진 기후가 일그러진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주부들 일상의 대화에서 끼니 걱정이 빠질 수는 없는 법. 땡볕 아래 잔뜩 똬리 튼 한낮 더위에 끼니를 직접 준비한다는 것은 가족에 대한 사랑의 발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때, 머리를 후려치는 천둥소리가 미용실에 울려 퍼진다. 갑자기 미용실에 한겨울 칼바람이 봉인한 정적이 찾아왔다.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이랍니다. 불볕더위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이런, '올해가 가장 어립니다'는 말은 잠시 입술을 실룩거릴지라도 이내 수긍하게 된다. 열대야가 최고의 일수를 자랑한다는 올해가 아닌가. 이보다 더 높은 기온이 내정되어 있다는 것이 못내 슬프다. 내년 여름이 다가오는 게 두렵기까지 하다. 점점 상승하는 해수면, 빙하가 사라지고 나무가 서식지를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암울한 현상들이 늘어나고 있어 희망적인 메시지로 반박하기엔 근거가 빈약하다.

운장이 동쪽으로 놀러 갔다. 거대한 뽕나무 가지를 지나다 우연히 홍몽을 만났다. 

 

“하늘의 기운이 조화롭지 못하고, 땅의 기운이 막혀 자연 현상이 불규칙하며 사계절의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자연의 기운을 모아 만물을 길러보려 합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모른다,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척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홍몽을 삼 년 후에 다시 만난 운몽이 이번엔 붙잡고 늘어진다. 

 

“하늘과 같은 분이시여, 저는 내키는 대로 노닐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백성들은 제가 가는 곳을 따라다닙니다. 저는 백성들을 어찌할 수 없어 이끌고 다니는 형편입니다.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홍몽이 그제야 말했다. 

 

“자연의 섭리를 어지럽히고 만물의 실상을 거스르면, 자연의 이치가 보전되지 못한다. 그 재앙이 초목과 미물에까지 미치니 짐승의 무리는 흩어지고 새들은 밤마다 울어댈 것이다.”

 

운장이 어찌하면 좋을지 부디 한 말씀을 간절히 부탁했다. 훈몽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저 타고난 실제 모습 그래도 있게 두어라. 그렇다면 만물을 스스로 자랄 것이다.”

 

과연 우리는 자연을 타고난 그대로 두었는지 무기명 답안지를 내밀어본다. 멀쩡한 산을 깎고, 바닷물을 가두어 벌목과 개간으로 자연 본연의 형체는 찾아볼 수 없다. 최신형으로 변모한 낯선 상징물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연을 다스리고 정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물질문명은 한계에 봉착한 위기에 직면했다.

 

9월로 접어든 천변은 벌초하지 않아 무성한 녹지로 온통 초록의 물결이다. 어수선한 풀들의 향연에서도 잠시 멈추고 바람을 귓전에 스카프처럼 곁에 두는 그들만의 조화로운 질서가 있는 듯하다. 종이 저마다 옹기종기 모여 군락을 이루고 서로 아옹다옹하지 않는다. 제 구역이라 땅을 독점하려 드는 풀과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민은숙]

시인, 칼럼니스트

제4회 코스미안상

제3회 문학뉴스 &시산맥 기후환경문학상

2024 중부광역신문신춘문예

청주시 1인 1책 펴내기 지도 강사

꿈다락학교 시 창작 강사

문화재단 & 예술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이메일 : sylvie70@naver.com

 

작성 2025.08.20 09:22 수정 2025.08.2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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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