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과 같이
눈앞이 캄캄한 밤에는
시라도 써야겠다
- 김남주, <아우를 위하여> 부분
어제 강의 시간에 한 수강생이 말했다.
“저는 한평생 청빈하게 살아왔어요. 연구원으로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랫동안 ㄱ 연구소에서 일하다 정년퇴직하신 분이다. 그가 오로지 돈을 추구했으면 지금 어느 정도 잘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숨이 막혔다. 그가 쓰는 ‘청빈’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이제 사라진 숭고한 단어. 조선 시대에는 청빈한 선비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청빈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나? 나는 그의 안타까운 마음이 깊이 전해져왔다.
김남주 시인의 ‘아우를 위하여’라는 시가 생각났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취직도 하지 않고 시를 쓰는 형에게 아우는 마구 퍼붓는다.
식구마다 논밭 팔아
대학까지 갈쳐 논께
들쑥날쑥 경찰이나 불러들이고
허구헌 날 방구석에 처박혀
그 알량한 글이나 나부랑거리면
뭣한디요 뭣한디요 뭣한디요
그런 아우를 위하여 시인은 조용히 읊조린다.
오늘 밤과 같이
눈앞이 캄캄한 밤에는
시라도 써야겠다
중국 한나라 무제 시절, 흉노와 싸우다 패배한 이릉을 변호하다 사마천은 궁형(거세형)에 처해졌다. 사마천은 자살을 고민했으나, 끝내 살아남는다. 그는 그 이유를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안고, 반드시 글을 써서 내 뜻을 남기리라. 하늘과 인간 사이를 궁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통달하여, 나만의 사상을 세우리라.”
이렇게 하여 세상에 나온 책이 불후의 명저 ‘사기(史記)’다.
나는 전직 연구원 제자에게 말했다.
“글을 쓰셔요. 터지는 분노를 다 글로 쓰셔요. 그러면 청빈이 증명될 거에요.”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