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손길이 따뜻하지 않은 이유
가족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지만,
가장 쉽게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손길은 때때로 스치듯 지나간다.
장난처럼 등을 치고, 농담처럼 꼬집고,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그 손길에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족이 있다.
왜일까?
그 손이 따뜻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문제는 손에 담긴 의도와 권력의 감정 때문이다.
웃으며 건넨 접촉이지만, 그 속에는 무시, 조롱, 억압이 섞여 있었다.
물리적 고통이 작더라도, 반복되는 심리적 불쾌감이 쌓이며
가족 구성원은 그 손길을 점점 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말한다.
"이게 다 정이야. 우리 집은 원래 이렇게 가까워."
하지만 진짜 가까움은, 상대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은 접촉에서 비롯된다.
억지로 웃는 관계는 가까운 게 아니라, 두려운 관계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눌린 감정
“가족끼리 그러는 거지 뭐.”
이 한마디는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를 침묵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손길에 불쾌함을 느껴도 말하지 못한다.
불편하다고 하면 예민하다고 말할 테고,
기분 나빴다고 하면 너무 예민하게 군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들은 웃는다.
억지로.
체념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은 점점 눌린다.
이런 억압은 시간이 지나며 두 가지 결과를 만든다.
하나는 감정 무감각, 다른 하나는 폭발이다.
부부 사이에서는 냉담함이 쌓이고,
자녀는 자신이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사회 속에서 자신의 몸과 감정을 지키기 어려운 성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결국, ‘웃으며 참는 가족’은
소통하지 못하는 가족으로 변질된다.
웃음 뒤에 숨겨진 침묵의 체념
많은 아버지들은 말한다.
“우리 집은 유쾌한 분위기야. 다들 잘 웃어.”
그러나 그 웃음이 자유롭게 터진 웃음이 아니라면
그건 유쾌함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일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리액션을 본능적으로 안다.
아버지가 장난을 치며 건넨 접촉에 대해 싫다고 말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부모의 표정이 굳어진다는 걸 안다.
그래서 아이는 선택한다.
그냥 웃는 게 편하다.
하지만 그 웃음은 자율이 아닌 학습된 복종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는 나중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는 사람이 된다.
특히 배우자의 경우,
아내가 남편의 접촉을 거부하거나 불쾌하다고 말하는 순간
“왜 그래? 장난이었잖아.”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결국, 아내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가족은 침묵 속에서 웃으며 버티는 관계가 된다.
존중 없는 접촉은 사랑이 아니다
신체 접촉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그 접촉이 진짜 사랑이라면,
상대가 편안함과 존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손길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꾸 피하고 싶은 대상이 된다면,
그건 분명히 다시 돌아봐야 할 문제다.
진짜 사랑은,
상대방이 웃는 게 아니라 웃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진짜 유머는, 모두가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것이며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접촉은 의사소통이다.
존중 없는 접촉은 폭력이고,
동의 없는 유머는 침해다.
그렇기에 가족 간에도
신체적, 감정적 경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수다.
사랑은 표현되어야 하고,
그 표현은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가족은 웃음 뒤에 숨겨진 상처를 알아야 한다
웃음은 가족의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웃음이 불편함을 감추는 도구라면,
그건 언젠가 무너질 위험한 기반이다.
아버지의 손길이 따뜻한 추억이 되기 위해서는
그 손길이 상대의 감정과 경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
가족은 불편함을 참고 유지하는 관계가 아니라,
솔직함과 존중 위에 세워져야 한다.
오늘 하루,
가족의 웃음 뒤에 혹시 참고 있는 감정이 있지는 않은지,
그 손길이 진심으로 반가운 접촉이었는지
다시 돌아보자.
지금 바로 가족에게 이렇게 물어보세요.
“내가 가끔 장난으로 하는 행동이 혹시 불편했던 적 있어?”
이 짧은 질문이,
가족을 더 가깝게 만드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