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청계천이 지금처럼 오픈되기 전 헌책방들이 많아서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다. – 지금은 동묘 근처에 헌책방이 많다. -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가다 보면 다양한 종류의 새를 파는 곳, 조류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귀엽고 예쁜 새들의 울음소리가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롱에 갇힌 새들의 모습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장자는 새를 기르는 방식을 논하면서 “자기를 기르는 방식으로 새를 기르는 것”을 극구 지양하면서 “새를 기르는 상식으로 새를 기를 것”을 강조했다. 그것은 “그들의 기능을 획일화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일을 같지 않도록 한다(不一其能 不同其事)“ 라 했는데, 이러한 주장은 사물들이 각기 자기들의 방식으로 성능을 발휘하고 생성하면서 발전한다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조화로움을 얘기한 것이다. 사물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고 전면적으로 보려면 하늘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렇게 사물을 전면적으로 보는 것이 장자가 얘기한 도추(道樞)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아파트 앞 목련 나무와 느티나무를 보면 분명히 서로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시비(是非)와 피아(彼我)가 나눠진다. 그런데 그 곁의 아파트 표지석의 커다란 돌과 비교하면 분명 둘 다 나무로 보인다. 그것은 목련 나무와 느티나무, 즉 저것과 이것, 시비가 소멸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일가게의 포도와 복숭아는 분명 모양과 생김새도 다르지만, 과일이라는 상위 개념에서 보면 하나이듯 도추의 견지에 보면 그 하나는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피차가 구분되지 않는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대 교수 장파가 쓴 글이 생각났다. ‘상반상성(相反相成)이다. 동양철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이 말은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쌍방이 모두 같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인 관점이다. 예를 들어 서양은 유(有)를 내세우고 무(無)를 뒷배경으로 배치해서 무(無)를 한낱 유(有)의 보조개념으로 격을 떨어뜨려서 양자 간의 소통을 가로막지만, 동양은 서양과는 개념이 다르다. 무(無)를 앞세우고 유(有)를 그로부터 말미암는 것으로 자리하게 한다. 그래서 무(無)와 유(有) 사이를 가로막아 고립시키지 않고 언제나 소통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먹고 되먹임하는, 즉 상반상성의 길을 마련한다고 했다. 동서양 문화 정신의 차이 아닌가 싶다.
장자는 도추를 말하면서 “이것과 저것, 옳고 그름에 대해 벗어나, 도추의 자리에 있으라, 그것이 밝음이다. 장자가 도추(道樞)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 배려한다는 의미다. 지도리(樞)는 문을 열고, 닫을 때 핵심이 되는 축을 말한다. 이 말인즉슨 도추는 그 어떤 상황과 가치에 대해 문의 지도리처럼 받아주고 인정해 준다는 뜻이다. 이러한 도추의 철학적 배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편견과 아집의 논리를 깨야 한다는 논리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양한 가치와 사유들로 넘쳐난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와 사유들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을 곧 편견이나 내편, 저편 등의 대립을 초월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도추는 다양한 가치의 중심에서 모든 다양성을 받아주는 축이다. (道樞始得其環中以應无窮)
그렇다, 세상은 수없이 많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며, 그 가치 또한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결코, 하나의 가치로만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온갖 편견이 난무하고, 지역 차별과 출신성분을 따지면서 경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최근에 나타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차별 등, 이처럼 이것과 저것, 내 것과 네 것이 대립하고, 상반된 관점이 아닌 문의 지도리처럼 열고, 닫을 때 중심축이 되는 축처럼, 이것과 저것을 가르지 않고 편견을 깨는 인식의 틀인 도의 지도리 즉‘도추’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조화가 아닌 부조화, 일치가 아닌 불일치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장자는 도의 지도리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문과 문틀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삼십 개의 바큇살이 하나의 곡에 모인다.(三十輻共一穀.)”라고 했듯이 수레바퀴의 중심축(一穀)과 같은 것이 바로 도추이다.
<장자>에는 도추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쪽에서 보면 저것이다(是亦彼也), 저것은 그쪽에서 보면 이것이다(彼亦是也). 과연 이것과 저것이 확실히 구분되어 존재하는 것일까?(果且有彼是乎哉). 저것과 이것이 서로 대립하지 않고 화해하는 것, 이것을 도추라 한다(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