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 아름다운 빗줄기다. 앙상하고 시커멓게 말라 무겁게 지쳐버린 겨울 나뭇가지의 상처를 곱게 쓰다듬는다. 부드럽게 씻겨주고 검은 눈물을 기꺼이 닦아내고야 만다. 쉬지 않고 밤새 달래주더니 마침내 토라진 나무의 눈꺼풀이 빗줄기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묵묵히 모든 진액을 쏟아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빗물의 헌신에 동틀 무렵에서야, 나뭇가지마다 눈을 뜨기 시작한다.
행여 먼저 피었던 봄 꽃잎이 떨어질 새라 소리도 없이 사르르 내린다. 혹여 바람 한 점 불어 애써 고개 들려던 새싹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보드란 눈빛으로 나무를 바라봐 주고 용기 주고 있으니 온화하기가 세상의 으뜸이리라. 새 살이 돋아나는 기운을 불어넣어주느라 애쓰는 빗줄기의 성품은 젖먹이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하다. 내 영혼에도 흠뻑 단비가 내리는 듯 하늘을 우러러 두 팔을 넓게 펴고 축복의 빗줄기에 하염없이 젖어들고 싶다. 누군가의 몸살 났던 겨울이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저리 간절하게 공들여 주었던 기억이 있었던가. 마른 가지의 오랜 아픔을 눈여겨 봐주는 봄비, 해갈이 필요할 때를 아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언제부터인가 익숙하지 못한 봄을 맞으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는 이 시대에 곡우의 보살핌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거늘.
익숙하지 못한 봄, 봄은 왔으되 꽃이 필 수 없고 가지가 부러지고 점차 땅이 말라 소생할 수 없는 상처 난 봄이다. 차디찬 겨울의 터널을 지나 모내기 때에 이르렀으나 너무도 목마른 봄이다. 한참 봄꽃처럼 피어나야 할 나이에 온갖 폭력에 휩싸여 쉽게 고개 들 수 없는 우리 아이들이 맞이해야 하는 가슴 저린 봄이다. 곡우는 삼일을 내리 모양새도 변하지 않고 감싸며 씻기며 토닥여 주었건만. 앙상했던 나뭇가지마다 새 살이 돋게 하지 않던가. 회색빛 도시에서도 고개를 높이 들며 한바탕 푸르름으로 춤추게 하지 않던가. 가슴앓이 하던 나무들마다 마음껏 환한 미소 지으며 봄바람과 즐거이 지즐대게 해 주었건만. 햇살 한 줌 만으로도 밝게 빛을 뿜어내도록 살뜰히 씻겨주었건만. 우리는 우리의 샘물을 나눠줄 수 없는가. 한껏 고운 꿈 펼치도록 안락한 봄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익숙하지 못한 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연약해 보인다.
얼마 전 들었던 우스갯소리에서, 60대 남자는 밥을 달랬다고, 70대 남자는 외출하는 아내에게 일찍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고, 80대 남자는 단지, 아침에 눈을 떴다고 아내들에게 매를 맞았다며 씁쓸함을 안겨준 적이 있다. 매를 맞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웃어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시대, 이 어찌 익숙한 봄이라 말할 수 있으랴. 더욱이 솜털 같은 우리 아이들이 봄을 맞이하여 눈을 뜨려고 세상을 향해 기지개를 펼치는 때에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변의 폭력적인 상황들이 간담을 서늘케 한다. 폭력에 끌려 다니고 난도질당하던 여린 나뭇가지 같은 우리 아이들이 종국에는 땅에 떨어지고 마는 익숙지 못한 절망의 봄을 어찌하랴. 양심의 가책을 모르는 채 부도덕한 모습들로 새하얀 꿈을 짓밟고 있으니 한스럽기 그지없다. 청명한 햇살은 다 어디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가. 우리 아이들에게 내려줄 곡우는 어디에 숨어 두 눈을 꾸욱 감고만 있는가. 80대 노인도 아닌데 세상을 향해 눈을 떠야할 청춘의 봄에 매를 맞아 애달피 저무는 날로 울어야 하는가. 봄을 한탄하고 여름을 모른 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겨울처럼 죽어가야 하는 서러운 숨결에 눈물이 고인다.
어떤 아이는 친구들에게 버림받고 성매매 현장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타고난 학습능력 장애로 인해 따돌림 당하기기 일쑤다. 건강하고 발랄하며 웃음이 넘친다는 이유로 타 학생들로부터 질투의 대상이 되고 결국 범죄의 표적이 되었다. 남학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가난하고 불우한 처지에 놓인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웃음을 지닌 부유한 가정의 아이를 보자 가차 없이 흉기를 휘두르고 꽃을 꺾고 짓밟았다. 때로는 심심풀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이들도 비일비재하다. 좋은 옷을 입고 싶으면 남의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아 버린다. 언젠가는 외국으로 출장 떠난 가정집을 자신들의 아지트로 삼고 가출 청소년 들이 수개월을 유숙하며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기사를 읽기도 했다. 돈이 필요하면 약한 아이들을 위협해 집안의 돈을 훔쳐오도록 시키고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무참히 구타했다. 이뿐인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헐값에 어른들에게 팔기도 했다. 연령층도 다양해져 초등학생들의 성폭력 사례도 적지 않다. 우리 아이들의 절제되지 못하는 어둠의 행각은 어디까지일까.
80대 노인이 맞았던 매도 우리 아이들이 맞고 있는 매도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기에는 가슴을 불길로 베이는 것 같은 아픔을 감출 수 없다.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속절없이 추위에 떨며 고사해 버리고 마는 여린 나무들을 어찌하랴. 이것도 봄이라고, 원치 않고 익숙지 못한 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처지는 설움의 높은 담장에 있지 아니한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담벼락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곪아만 가는 우리 아이들의 봄에 해갈의 기쁨을 주고 높고 차가운 담장을 넘을 수 있도록 힘 있게 가지를 뻗쳐줄 곡우는 언제까지 게으른 걸음으로 하품만 하려는지. ‘안산 동산고 이야기’라는 책에서 보았던 “가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교실”은 단지 몽상이랴. 동산고는 왕따도 담배 피우는 학생도 비행청소년도 체벌하는 선생님도 촌지도 부정행위도 없다는데. 그럼에도 대학 진학률 전국 5위권에 진입하며 명문고 반열에 우뚝 섰다는데. 동산고 교사들처럼 수시로 아이들 지도를 위해 선생님 수련회를 갖고 기도하기를 힘쓰면 손 놓고 낮잠을 즐기는 우리의 베개가 우울증에 빠지는지.
곡우는 열매 맺는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절기 중의 하나이다. 이 기간에 내리는 봄비로 온 땅의 나무들은 한창 물이 오르며 대지도 충분히 촉촉이 적셔주어 모내기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처럼 곡식에 필요한 비를 내려준다 하여 곡우(穀雨)라 이름 지어 졌다. 과거에는 곡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곡우가 내리고 난 후에는 벼농사의 파종을 위해 죄인도 잡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곡우 기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땅이 세 척이나 말라 그해는 가뭄이 들고, 곡우 기간에 삼사일 가량의 단비가 내리고 난 후엔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한다. 2012년 4월 26일자 연합 뉴스에서는 봄비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분석한 연구결과 대기질 개선, 수자원확보, 산불 예방 등의 효과로 210억 원의 가치를 가진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다. 사회를 푸르게 변화시키고, 햇살 같은 인재를 양성하며, 가시덤불로 덮인 무덤 같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210억원의 가치를 지닌 달빛 같은 선생님과 곡우를 닮은 어른들은 유토피아에만 존재하는가.
동산고에서는 집을 나간 학생 때문에 고민하던 아버지가 담임선생님께 상담하러 왔다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며 평소 부끄러웠던 자신을 반성하고 발걸음을 돌린 적도 있다. 이 학생에게는 난폭한 아버지가 계신 집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도 따뜻한 선생님이 계신 학교는 머물고 싶은 곳이었으리라. 학생들이 금물결에서 노를 젓고 있는 듯한 동산고의 이야기는 현실이다. 동산고의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은 강한바람으로 체벌하며 쌓이는 것이 아니지 싶다. 상처 난 가지를 감싸주고 고운 시선으로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게다. 눈물을 닦아주고 용기를 주며 어린 가지가 꺾이지 않도록 도왔겠지. 소리 없이 손잡아 일으켜주는 선생님들 혹은 주변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동산고처럼 불량청소년이 사라지지 않을까. 더불어 학교폭력도 사라지겠지. 새 봄날의 역사를 위해 일어서라는 연둣빛 희망의 봄비가 아침을 노크해 주는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서 일어서라고 손 내밀어 주는 다정하고 따사로운 봄날의 미소 곡우, 온 대지를 두루 적셔주면 좋으련만.
지금 목마름을 달래줄 한 방울 빗줄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가슴을 찢고 갈라져 가는 논과 시름에 앓고 있는 밭, 멍들어가는 들판 위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 나무에 말없이 다가가 고운 손 내밀어 줄 곡우가 필요하다. 단 삼일만 빗줄기를 내려주어도 남은 날들을 스스로 건강하고 싱그럽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지 않던가. 신음하며 아파하고 설움에 찬 밤바람을 맞아야 하는 우리 아이들이 삶에 대한 비관과 낙담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당당히 일어서는 봄, 귀한 때에 단 삼일의 헌신이라면 마땅히 나도, 그대도 곡우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