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평곤 파랑새 - 약산소식지 허예주 기자
제주 올레길 10코스, 모슬포에서 송악산까지 걷기로 했다. 다리가 튼튼하지 않은 편이라 올레길 완주보다 중간에 끊기더라도 할 수 있을 만큼 걸었다.
지인 중 산티아고 순례 갔다 와서 무릎 수술 한 분이 있다. 가끔 내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힘이 들어도 무리해서 무언가를 할 때이다. 특히 여행 가서 남들이 간 유명한 곳을 짧은 시간에 다니다가, 몸에 무리가 와서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분도 아마 산티아고 완주에 목표를 두다 보니 아파도 꾸역꾸역 버티며 다닌 것 같다.
제주도 살 때도 완주보다는 걸을 수 있을 만큼 걷도록 항상 자신에게 말하고 또 했다. 내가 살았던 곳 반대편이라 가기 힘든 곳이었다. 그래도 욕심내지 않고 모슬포 버스정류장에서 송악산 버스정류장까지만 걷기로 했다.
하모항을 지나면 버스정류장까지 거리가 있다. 제주 올레길이나 제주 여행을 다니면 대중교통이 도시만큼 편하지 않다. 그리고 택시 응용소프트웨어를 써도 택시가 쉽게 오지 않는 지역이 많다. 개인적으로 지역 택시 전화번호 하나는 챙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제주도는 넓은 지역이고 버스가 통합되어서 다녀서 그렇지, 사실 여러 행정 구역이 있다. 가는 지역에 해당하는 택시 번호 하나쯤 있으면 급한 순간 택시 부르는 게 나을 수 있다.
알뜨르 비행장에 거의 도착할 무렵 뭔가 보인다. 커다란 사람 형상,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단발머리 소녀가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를 손에 들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이다. 제목은 ‘파랑새’로 최평곤이라는 작가분의 작품이다.
최평곤 작가님은 대나무를 주 소재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또 이 대나무는 동학 혁명에 쓰이던 죽창에서 생각을 얻었다고 한다. 대나무와 같은 자연 소재로 만들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기도 하는 친환경적 작품이다.
최평곤 작가님의 다른 작품 하나가 제주도 현대미술관에 있다. 가면 사람 깜짝 놀라게 하는 인사하는 사람이 건물 지붕에 있다. ‘여보세요’라 불리는 작품은 10년이 지나고 낡아서 새로 제작했다고 한다.
최평곤 작가의 ‘파랑새’가 알뜨르 비행장에 있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보았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강점기 수탈과 핍박의 역사이다. 일제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한반도 전체를 전쟁 대비 태세로 만든 유물 중 하나이다.
이런 것을 영어 사대주의자들이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라 부르며 관광 상품을 만들고 있다. 이런 역사를 알리는 건 좋은데 굳이 영어를 써야 할까. 그리고 ‘dark’의 어감이 진짜 이 아픔의 의미를 담아낼지는 의문이 든다. 한국에서는 다크가 다크 초콜릿이라든지 다크 서클로 많이 쓰인다. 이런 역사를 우리는 아픔의 역사라든지 비극의 역사로 말해 왔다. 그런데 굳이 어감을 다 살리지 못하는 영어를 가져와 표현할지는 의문이다.
알뜨르는 제주말로 아래쪽 뜰이라는 의미있고, 바다를 바로 앞에 둔 넓은 들판이다. 일본은 1945년 초 불리하게 상황이 돌아가자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한 무대로 상정해 조선인 징병자 1만5천여명 포함한 만주의 관동군 등 6만5천여명을 제주에 집결시키고 각종 중화기를 배치하는 등 제주섬 전체를 요새화했다. 제주 곳곳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는 알뜨르에 비행 활주로를 만들고 격납고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하려 했다.
이런 건설에 제주 주민들이 강제로 동원되었고, 지역마다 할당량이 내려졌다. 아버지가 일을 못 가는 상황이면 어린 자식까지 동원되어 일제는 이 비행장과 일대 시설을 완성하려 했다.
해방 후에도 제주 도민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1947년 3월 1일, 제주의 북초등학교에서 3·1절을 기념하는 집회가 열렸다. 평화롭게 진행된 거리 행진이 끝나갈 무렵 어린아이가 경찰의 말발굽에 치여 넘어졌다. 그런데 경찰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가버렸고 이에 제주 도민들이 항의했다. 사과만 했어도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서북청년단과 같은 단체를 이용하여 잔혹하게 진압했고, 이는 4.3으로 이어진다.
이곳 알뜨르 비행장은 4.3 당시 학살당한 사람들을 집단 매장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저 파랑새를 들고 있는 소녀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것이다. 파랑새는 희망의 상징이고 평화의 상징일 것이다.
제주 도민이 많은 것을 바라진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죽창을 들고 싸웠던 동학 농민들도 임금이 제대로 폭정 관리를 처리하고 사후 조처를 하겠다는 말에 해산했다. 우리 한민족들은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제주 도민들이 원했던 것은 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일제강점기에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조차 못해 준다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자격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