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 국회가 대법관 증원 문제를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섰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자는 법안이 발의되면서, 사법부가 처리해야 할 사건 적체를 해소할 수 있을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그러나 정작 법원행정처가 내놓은 대응 자료는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증원이 이루어질 경우 새로운 청사를 신축해야 하고, 그에 드는 비용이 무려 1조 4천억 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대법관 1인당 집무공간을 74평 가까이 잡아놓은 계산은 현실과 괴리된 사치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기존 청사의 공간 재배치나 일부 기능의 분산 배치 등 다양한 대안은 배제한 채, 오직 ‘신축’만을 전제로 거대한 예산을 제시하는 것은 논의의 물줄기를 왜곡시키는 행정적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여론에서는 차라리 서초동 청사를 매각하고 대법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사법 서비스의 지역 균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이전’의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효율성, 국민의 접근권, 국가적 비용 부담까지 면밀히 따져야 할 중대한 과제다. 섣부른 이전론이 실질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정작 시급한 문제는 대법관 숫자가 아니라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개혁이다. 사건의 홍수 속에서 대법관 수만 늘린다고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심리 방식의 개선, 상고제도의 정비, 중간심급의 강화 등 제도적 혁신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행정처는 사무실 크기와 건물 신축비용부터 거론하며 국민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사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개혁안을 내놓아야 한다. 대법관 증원은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 향상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출발해야지, 새로운 청사 건축 사업의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회 또한 정치적 계산이나 단기적 이해득실이 아니라, 사법 정의와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에서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대법관 증원 논의는 결국 사법부의 신뢰 회복과 직결된다. 법원이 국민 눈높이를 외면한 채 ‘황당한 비용 계산서’를 내민다면, 사법개혁의 정당성은 더욱 흔들릴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청사 신축 논란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사법제도의 근본 개혁이다.
논설위원 주경선
본사 발행인 겸 편집장
목사,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