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로몬 성전 건축, 하나님을 위한 영광인가 자신을 위한 영화인가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연 왕 솔로몬은 지혜와 부귀, 권세로 유명하다. 열왕기 기자는 그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받은 축복과 이를 통해 이룬 부와 영화에 대해 길게 기록한다. 하지만 역대기 기자는 이 모든 이야기를 생략하고 곧바로 성전 건축 이야기로 넘어간다. 이는 단순한 편집이 아니라 분명한 신학적 의도가 담겨 있다. 역대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과연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표현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영화로움과 국력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였을까. 이 질문은 오늘날 신앙 공동체에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로 다가온다.
지혜를 생략한 역대기의 의도 : 예배의 본질 강조
열왕기 기자가 솔로몬의 지혜와 영광을 강조했다면, 역대기 기자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려져 있기에 굳이 반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성전 건축을 서두에 배치해, 신앙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임을 부각했다. 이는 곧 “지혜로운 삶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삶”이라는 메시지다. 성전 건축의 서술을 통해 역대기 기자는 지혜가 곧 경건과 예배로 드러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영광인가 욕망인가
겉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성전을 건축한다고 했지만, 그 안에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었다. 솔로몬은 자신의 부와 국력에 걸맞은 거대한 성전을 꿈꾸었다. 그래서 두로 왕 히람에게 백향목과 기술자를 요청하고, 백성을 계수해 엄청난 노역을 동원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에게 경계하셨던 행위였다. 예배의 본질보다는 자신의 영화와 권세를 드러내려는 욕망이 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성막과 인간이 원하는 성전
하나님은 크고 화려한 성전에 갇히는 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초라한 성막에 임재하시며,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셨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은 성전을 짓지 말라 하시며, “내가 성전에 거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말씀을 온전히 붙들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높이고자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부와 국력에 어울리는 외형적 건축물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원하신 ‘순종과 예배의 삶’보다는 인간이 원하는 ‘화려한 성전’이 앞서게 되었다.
신앙 열심이 오히려 자기를 높이지 않는가
솔로몬의 이야기는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자기 욕망을 위한 열심일 수 있다는 점이다. 큰 건물, 화려한 예배, 눈에 띄는 활동들이 마치 신앙의 증거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 규모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함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보신다. 우리의 열심이 정말 하나님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선한 의도조차 죄된 본성과 결합하면 오염되기 쉽다. 역대하 2장의 기록은 바로 이 경고를 전한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역사 속에서 웅장한 유산으로 남았다. 그러나 성경은 그 건축의 화려함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성전에 갇히는 분이 아니며, 인간의 화려한 성취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은 오직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와 성도는 외적 화려함보다 내적 진실함을 붙들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씀이 여전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