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시가 왜 마침표를 생략하는지를 묻는다. 시는 왜 일상 문법의 규칙을 따르지 않고, 문장의 끝을 열어 둔 채 우리를 멈칫하게 하는가. 시의 문법은 일상의 문법과 다르다. 그 생략에는 감정의 리듬과 해석의 유예라는 시만의 고유한 언어 감각이 숨어 있다. 이 글은 그 감각을 따라가 본다.
마침표는 끝이 아니다
글을 쓸 때마다 마지막에 남는 고민이 있다. 마침표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저 문장을 마무리 짓는 작은 점 하나일 뿐인데, 때로는 그것이 글의 어조와 감정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시에서는 더 하다. 시인은 종종 이 작디작은 기호를 통해 닫힌 문장을 열어 두고, 열린 감정을 조용히 닫는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현대시에서 마침표는 정말로 ‘끝’일까?
최근의 시적 흐름을 들여다보면, 마침표는 더 이상 단순한 종결의 상징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의 유예, 다음 가능성의 암시, 해석의 입구처럼 새로운 얼굴을 한다. 닫힘이 아니라 이어짐의 예고, 결말이 아니라 독자에게 넘겨진 여백이다.
닫는다는 것의 역설
모더니즘 시기, 마침표는 절제와 고립의 기호였다. 시인은 낯선 언어의 구조 속에서 감정을 끊고, 단정한 침묵으로 문장을 맺었다. 간결함 속에 감춘 단절. 그 작은 점 하나가 말보다 더 무거운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시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인은 이제 마침표를 생략하거나, 의도적으로 반복하며 독자에게 해석의 책임을 넘긴다. 마침표가 사라질수록, 시는 열린 구조로 변하고, 독자는 그 빈자리에 자신의 언어를 채운다. 마침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의 다른 말이다.
고정에서 유동으로: 이론의 시선
문학 이론은 마침표를 어떻게 바라볼까.
구조주의 비평은 마침표를 텍스트의 골격으로 본다. 문장을 구획 짓고 사유를 정리하며, 의미에 경계를 세운다. 그러나 해체주의, 특히 데리다의 사유에 따르면 마침표는 임시적인 멈춤에 불과하다. 기호는 언제나 미끄러지고, 의미는 끝없이 지연된다. 마침표는 그저 다음 문맥을 열기 위한 문턱일 뿐이다.
디지털 시대의 시는 이 사유를 한층 더 확장한다. 화면 속 마침표는 링크를 열고, 페이지를 넘기고, 다른 감각의 세계로 이어지는 전환의 기호 역할을 한다. 클릭 가능한 마침표, 연결하는 마침표. 더 이상 멈추지 않는 마침표가 지금, 시 속을 걷는다.
여운으로 열리는 시
요즘 진짜 시인들은 마침표를 찍고도 문장을 열어 두는 법을 안다. 가짜 시인들은 모른다. 마침표 없는 시, 혹은 마침표만 있는 시는 이제 낯설지 않다. 시는 완결보다 여운을 택하고, 결정 대신 침묵을 남긴다. 독자는 그 여백 안에서 문장을 다시 읽고, 이야기의 결을 바꾼다.
문학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것에서 큰 변화를 시작한다. 마침표처럼.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 온 그 점 하나가, 문장의 구조와 의미를 바꾸고, 시를 읽는 방식을 흔든다.
다음에 시를 읽을 때, 마지막 줄에 찍힌 그 작은 점을 그냥 지나치지 말자.
그 안에,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신기용]
문학 박사
도서출판 이바구, 계간 『문예창작』 발행인
경남정보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 평론집 10권, 이론서 3권, 연구서 3권, 시집 6권
동시집 2권, 산문집 2권, 동화책 1권, 시조집 1권 등